1. 지각, 육아, 그리고 뜬금없는 고지도 생각
며칠 전의 일입니다. 전날 늦게 잠든 탓에 눈을 뜨니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했습니다. 허겁지겁 세수를 하고 서문시장에서 만 오천 원 주고 산, 제 처진 어깨만큼이나 축 늘어진 에코백을 메고 현관을 나서려던 찰나였습니다.
"아빠..."
부스스한 눈으로 첫째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옵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퇴근하면 잠들어 있고, 아이가 눈뜨기 전에 출근하는 날들의 연속. 언제 제대로 눈을 맞추고 놀아줬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미안함이 밀려옵니다. 아이는 저와 가방을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엽니다.
"오늘은 꼭 놀아줘야 해."
"응, 그럼. 주말에 꼭 놀자."
"아니, 지금. 유치원 가기 전에 같이 그림 그려줘."
시계를 보니 지하철 시간이 촉박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딱 10분만이다? 아빠 늦으면 혼나."
식탁에 마주 앉아 흰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눕니다. 아이는 꽃을 그립니다. 그리고는 저보고 따라 그리라고 합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눈은 시계를 향해 있지만, 손으로는 삐뚤빼뚤 꽃을 그립니다. 저는 무심코 빨간색, 분홍색으로 꽃잎을 칠하는데 아이는 무지갯빛으로 촘촘하게 색을 입힙니다.
"와, 꽃이 무지개색이네? 정말 예쁘다."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간신히 10분을 채우고 일어서려는데, 이번엔 둘째가 깼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둘째를 안아 올립니다. 따뜻하고 묵직한 아이의 체온. 1분, 2분... 아이는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시계바늘은 야속하게 돌아가고, 저는 체념한 채 지각 사유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참 뜬금없게도,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있는 그 순간 200년 전의 한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옛날 고지도를 만들던 사람들도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었을까? 아버지의 사랑이 이렇게 간절했을까?'
그러면서 갑자기 18세기 조선의 화가 정수영(鄭遂榮)과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줄줄이 소환되는 것입니다. 4대에 걸쳐 지도를 그렸던 집안. 그들도 저처럼 아이를 안고 어르며, 생계와 꿈 사이에서 고민했을까요? 지하철에 몸을 싣고 흔들리며, 저는 정상기 가문의 100년 역사를, 그리고 정수영이라는 한 남자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2. 나의 '부캐'는 무엇인가
요즘 '부캐(부 캐릭터)'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게임에서 본래 키우던 캐릭터(본캐) 말고 새롭게 키우는 캐릭터를 뜻하는 말인데, 이제는 일상 용어가 되어 '직업이나 본래 모습 외에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나'를 의미하게 되었지요.
저의 '본캐'는 박물관 학예사입니다. 유물을 관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저의 '부캐'는 무엇일까요? 낮에는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고지도를 연구하지만, 밤이 되거나 주말이 되면 저는 '방구석 음악가'로 변신합니다.
한때는 진지하게 음악에 뜻을 둔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냉정한 재능의 벽을 실감하고 깨끗하게 포기했지요. 대신 즐거운 생활 음악인으로 남기로 했습니다. 8만 원짜리 키보드와 낡은 기타, 그리고 노래방 앱만 있으면 주차장 차 안이 저만의 콘서트장이 됩니다. 익명으로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리고 조회수 100회에 일희일비하는 소심한 관종 음악가. 이것이 저의 확실한 부캐입니다.
이렇게 삶의 숨구멍 같은 부캐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조선 시대에도 그 누구보다 멋진 '부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자유로운 화가로 살았지만, 100년 동안 내려온 가문의 묵직한 가업인 '지도 제작'이라는 부캐를 운명처럼 안고 살았던 남자. 바로 지우재(之又齋) 정수영입니다.
3. 거인의 어깨 위에서 붓을 들다
정수영(1743-1831)의 삶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가문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증조할아버지 농포자(農圃子) 정상기(鄭尙驥)를 만나야 합니다.
물리학에서 물은 99도까지는 잠잠하다가 100도가 되는 순간 끓어오르며 기체로 변합니다. 조선의 지도 역사에서 그 '100도의 순간'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정상기였습니다. 이전까지의 조선 지도는 대략적인 모양은 갖췄으되 북쪽 지방이 찌그러지거나 거리가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상기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백리척(百里尺)'이라는 과학적 축척을 도입하여 한반도의 모습을 실제와 거의 흡사하게 구현해냈습니다.
1757년, 영조 임금은 정상기의 아들이자 정수영의 할아버지인 정항령이 바친 <동국대지도>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내 나이 칠십에, 백 리의 땅을 손바닥 보듯 하는 이런 지도는 처음 본다!"
이후 정상기의 지도는 조선의 표준이 되었고, 이 위대한 업적은 아들 정항령, 손자 정원림을 거쳐 증손자 정수영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세상은 정수영에게서 제2의 정상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너도 네 증조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지리학자가 되어야지." 이런 말,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요? 마치 3대째 내려오는 곰탕집 아들이 "전 파스타가 좋은데요"라고 말하기 힘든 것처럼요.
하지만 정수영은 조금 다른 길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벼슬길에 나가는 대신 붓을 들고 강산을 유람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본캐)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렇다고 가업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든 살이 넘어서까지 지도를 베끼고 교정하는 일(부캐)을 놓지 않았으니까요.
4. 물 위에서 지도를 그리다
정수영은 화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지도쟁이의 DNA'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입니다.
이 그림은 한강과 임진강을 배를 타고 유람하며 그린 긴 두루마리 그림입니다. 보통의 산수화라면 아름다운 경치만 그렸을 텐데, 정수영은 다릅니다. 그는 강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 나루터, 산성, 사찰의 이름을 꼼꼼하게 지도처럼 적어 넣었습니다.
마치 증조할아버지 정상기가 자(尺)와 콤파스로 찍었던 지도 위의 점들을, 증손자 정수영은 배를 타고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고 그 점들을 선으로 이은 것 같습니다. 지도에는 없는 강물의 흐름, 바람의 냄새, 뱃사공의 노 젓는 소리, 그리고 강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속도까지 화폭에 담아낸 것입니다.
그에게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화가 정수영'의 감성과 '지도 제작자 정수영'의 이성이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차가운 이성의 지도였다면, 정수영의 <한임강명승도권>은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뜨거운 감성이 담긴 '인문학적 지도'였던 셈입니다.
5. 뿌리 깊은 물은 쉼 없이 흐른다
맹자는 "뿌리가 깊은 물은 쉼 없이 나아가 큰 바다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정상기 가문의 지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정상기라는 샘에서 솟아난 물은 정항령과 정원림이라는 계곡을 지나, 정수영에게 이르러 거대한 강물이 되었습니다.
4대, 100년. 한 집안이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한다는 것, 그것도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사명감으로 이어간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신경준이나 김정호 같은 천재들도 홀로 빛났을 뿐, 그 재능이 가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상기 가문은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지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가문의 철학이자 시선이었습니다.
정수영은 52세에 외아들을 잃는 큰 슬픔을 겪습니다. 대를 이을 아들이 사라진 절망 속에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긴 여행을 떠났고, 더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쩌면 그림은 그에게 슬픔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였는지도 모릅니다. 벼슬길도 막히고 아들도 없는 처지에서, 그는 스스로 붓을 들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6. 우리 안의 '부캐'를 위하여
다시 저의 출근길 지하철로 돌아옵니다. 아이를 떼어놓고 나오던 무거운 발걸음, 밥벌이의 고단함,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낡은 기타.
정수영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넵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가 부여한 역할, 즉 '본캐'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때로 버겁고 지루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속에 품은 '부캐'의 지도 한 장이 아닐까요?
정수영에게 그림이 있었고 지도 제작이라는 또 다른 자아가 있었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숨겨진 지도가 있을 것입니다. 퇴근 후 배우는 목공일 수도 있고, 주말마다 떠나는 등산일 수도 있으며, 저처럼 주차장에서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일 수도 있겠지요.
본캐의 삶이 흔들릴 때 부캐가 우리를 지탱해줍니다. 정수영은 200년 전에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붓을 들어 조선의 산천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멋진 삶을 우리에게 지도로 남겨주었습니다.
오늘 밤, 아이들이 잠들면 저도 조용히 제 부캐를 소환해봐야겠습니다. 에코백 속에 구겨진 악보를 펴고, 노래를 부르며 저만의 지도를 그려보렵니다. 정수영이 한강 물결 위에서 보았던 그 자유로움을 꿈꾸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