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외로운 세계인, 규남 하백원

by 낭만지리 굴비씨

1. 화순 땅, 어느 외로운 천재의 서재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전라남도 화순의 깊은 산골 마을.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작은 서재의 창호지 문 위로 희미한 촛불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방 안에는 한 선비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붓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 1781-1844). 세상은 그를 시골의 이름 없는 선비라 불렀을지 모르지만, 그날 밤 그의 붓끝은 한양을 넘어, 중국을 지나, 저 멀리 아프리카와 남극 대륙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옛 성현의 말씀에 매달려 있을 때, 그는 홀로 푸른 바다와 낯선 대륙이 그려진 세계지도를 베껴 그리며 우주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작은 티끌 속에도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불경의 말씀처럼, 화순의 작은 방 한 칸은 그에게 무한한 우주였습니다. 그 외롭고도 장대한 항해의 기록이 바로 그가 남긴 지도, 《만국전도(萬國全圖)》입니다.


2. 가문에 흐르는 '다빈치'의 피


규남 선생이 유별난 돌연변이는 아니었습니다. 진주 하씨 명문가인 그의 집안에는 대대로 흐르는 특별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바로 '호기심'과 '실용'이라는 유전자가 그것입니다.


7대조 할아버지는 중국을 다녀온 사신을 통해 서양의 신기한 문물을 처음 접했고, 증조할아버지는 당대의 천재들과 어울리며 천문과 과학에 눈을 떴습니다. 특히 이웃에 살던 과학자 나경적과 함께 별을 관측하는 기구인 '혼천의'를 만들며 밤하늘의 비밀을 탐구하기도 했지요.


이런 집안 분위기 덕분에 어린 규남은 자연스럽게 '과거 급제'보다 더 재미있는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책상 위에서만 맴도는 공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편리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기술'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맥가이버' 쯤 되지 않을까요?


그의 손재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쇠를 두드려 스스로 자명종 시계를 만들었고, 아낙네들이 힘들게 물레질하는 것을 보고 더 쉽게 실을 뽑는 방적기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압권은 '자승차(自升車)'라는 자동 양수기였습니다. 가뭄에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낮은 곳의 물을 저절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기계를 설계했습니다. 백성의 땀방울을 닦아주고 싶었던 그의 따뜻한 마음이 빚어낸 발명품이었습니다.


3. 알레니의 지도를 만나다


하지만 이 발명가 선비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바로 '지도'였습니다. 1821년, 마흔한 살이 된 규남은 《태서회사이마두만국전도》라는 긴 이름의 세계지도를 완성합니다.


제목만 보면 "아, 마테오 리치(이마두) 신부님의 그 유명한 <곤여만국전도>를 베꼈구나" 싶습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학계에서도 그렇게 알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자들의 꼼꼼한 추적 끝에 숨겨진 반전이 드러났습니다.


규남의 지도는 마테오 리치의 지도와 달랐습니다. 대륙의 해안선도, 남극의 모양도, 심지어 지명조차 달랐습니다. 결정적으로 리치의 지도에 가득했던 신비로운 천문도나 전설 속 동물 그림들이 쏙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규남이 보고 그린 '원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범인은 마테오 리치보다 한 세대 늦게 중국에 온 또 다른 이탈리아 선교사, '줄리오 알레니(Giulio Aleni)'였습니다. 그가 쓴 지리책 《직방외기(職方外紀)》 속에 들어있던 <만국전도>가 바로 규남이 밤새워 베껴 그린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알레니의 지도는 리치의 지도보다 최신 정보를 담고 있었고, 더 실증적이었습니다. 상상 속의 땅 대신 실제로 확인된 바다와 육지를 그렸지요. 규남은 리치의 명성이 아니라, 알레니의 '정확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제목에는 당대 서양 학문의 상징이었던 '마테오 리치'의 이름을 빌려 썼습니다. 일종의 '브랜드 마케팅'이었을까요, 아니면 서학(西學) 전체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을까요?


4. 촛불 아래에서의 독대(獨對)


다시 200년 전 화순의 밤으로 돌아가 봅니다. 규남 선생은 그 귀한 서양의 지리책을 어떻게 구했을까요? 한양의 권세가들도 구하기 힘든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학문을 사랑했던 집안의 인맥을 총동원해 빌려왔을 것입니다.


빌려온 책이니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는 밤을 새워야 했을 것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먹을 갈고, 붓끝을 세워 지도 위의 구불구불한 선들을 따라갑니다.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해안선을 그립니다.


그의 붓이 지나가는 곳마다 낯선 세상이 열립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나라. 비좁은 방 안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지구를 유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지도를 그리며 위로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구나. 중국조차 거대한 지구의 일부일 뿐이구나. 내가 사는 이 화순 땅이 좁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로구나." 세상의 광활함을 깨닫는 순간, 역설적으로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위안이 되는 경험. 그는 지도라는 창문을 통해 답답한 현실의 벽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5. 적당함의 미학, 그리고 끝나지 않은 꿈


규남 하백원 선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그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입니다.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 이 잔은 술을 70% 정도만 채우면 괜찮지만, 욕심을 부려 그 이상 채우면 밑바닥 구멍으로 술이 모두 새어 나가 버립니다. 과학적으로는 '사이펀 원리'를 이용한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은 깊고 서늘합니다. "욕심내지 마라. 넘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평생을 실용적인 발명과 넓은 세상에 대한 탐구에 바쳤지만, 정작 자신의 벼슬이나 명예에는 욕심내지 않았던 규남 선생. 그의 삶 자체가 어쩌면 계영배와 같았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꿈꾸었던 자승차가 전국의 논밭에 보급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그린 세계지도가 조선을 개화시키지도 못했습니다.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는 여전히 변방의 고독한 지식인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패한 삶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순의 작은 서재에서 촛불을 켜고 우주를 꿈꾸었던 그 밤의 열정, 백성의 고단함을 덜어주려 고민했던 그 따뜻한 마음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만국전도》는 단순한 종이 지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꿈의 지도입니다. 2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그대들의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 그대들은 오늘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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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원의 세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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