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가스인 염소(Cl)와 폭발성이 강한 나트륨(Na)이 만나면
독가스인 염소(Cl)와 폭발성이 강한 나트륨(Na)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첫째, 염소의 독가스가 나트륨을 녹여버린다. 둘째, 나트륨이 염소와 만나 폭발해 버린다. 정답은 ‘염소와 나트륨이 만나면 사랑에 빠진다.’이다.
염소(Cl)는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화학물질로서 독성이 강하며 신체에 닿을 경우 염산으로 변하여 심각한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농축된 염소 가스는 치명적인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트륨(Na)은 금속물질로서 물에 닿으면 열을 내며 폭발한다. 그러나 염소(Cl)와 나트륨(Na)이 만나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염화나트륨(NaCl) 즉, 소금이 된다. 염소와 나트륨이 만나면 서로를 녹여버리거나 폭발시키지 않고 화합하여 전혀 다른 성질의 소금이 되어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동물들의 생명의 필수 성분이 된다.
도서관에서 물리학 책을 읽다가 염소라는 물질의 성질이 어쩌면 나와 그렇게도 닮았는지 그 독한 가스에 친밀감을 느꼈다. 염소처럼 나의 본성은 혼자 있으면 고요한 호수처럼 조용한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건들지만 않으면 세상에 없는 평화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간혹 세상은 나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그럴 때면 얼굴색이 변하고 보이지는 않지만 속에서는 심술이 요동을 치며 뭔가를 녹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내 조용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녹아내린다. 결국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상처를 입는다. 바로 가족이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죄 없는 가족에게 돌려주곤 했다. 그러나 가족은 위험한 독가스 같은 사람을 가정이라는 안전한 용기 안에서 사랑이라는 물질로 순화시켰다.
내가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였다. 우리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 결합하기를 좋아하는 원자들처럼 천생연분의 원자를 꿈꾸고 있었다. 염소인 나에게 가장 훌륭한 원자는 나트륨이고 다음은 칼륨, 마그네슘이다. 아내는 성격이 순하며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에 내숭 떠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나트륨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금부부가 되었다.
나트륨은 다른 물질과 반응하기를 좋아하는 친화력이 좋은 물질이다. 혼자만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원자와 결합하여 화합물 형태로 대부분 바닷물 속에 존재한다. 폭발성이 강한 물질이지만 염소와 결합하기를 좋아해서 대부분 염화나트륨 형태로 존재하며 급한 성격을 버리고 소금으로 환골탈태하여 모든 생명체로부터 사랑받는 물질로 거듭났다.
살아갈수록 아내는 딱 나트륨을 닮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이다. 너무 솔직해서 거짓말할 줄 모르고 말을 적당히 돌려서 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도 금방 사귄다. 그리고 한번 친구가 되면 오래도록 연락하며 만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나트륨처럼 갑자기 폭발할 때가 있는 것이 유일한 흠이다. 그 폭발이란 것도 사실은 저 혼자 폭발하는 것은 아니어서 상대에 따라서 폭발한다. 물론 나 때문이다. 나 아니면 폭발할 일 없이 친절한 사람으로 남을 텐데, 나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지 않으면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
천생연분을 꿈꾸던 우리였지만 함께 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소한 다툼과 의견차이도 많았다. 아내는 사과와 같이 신 과일을 좋아하고, 나는 신 과일은 질색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참견하고 알려주어야 하고, 나는 자기들 알아서 하라고 한다. 아내는 이런 나를 무관심이라고 타박을 하고, 나는 자율성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아내의 지나친 참견과 잔소리는 대부분 소소한 다툼이고 어쩌면 사랑의 다른 표현이지만, 얌전한 척 은밀하고 응큼하게 조용히 저지르는 나의 엉뚱함은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독가스가 되어 평온한 가족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오랜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쓴맛과 불순물이 빠져나간 소금처럼 우리 부부의 삶의 모습도 점차 순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는 완벽히 결합된 소금부부를 꿈꾼다. 생명을 지속시키고 음식의 맛을 내며 부패를 막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처럼 우리 가족과 세상에 한 줌 소금이 되기를 희망한다. ‘Cl+Na=Love’가 되는 날 우리는 진정한 소금부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