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저 수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음, 저 수평선 너머에도 수평선이 있겠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아내와 나는 무심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콘크리트에 갇힌 회색빛 도시에서 눈알을 핑핑 굴리며 바쁘게 살아왔다. 서울에서 바다를 건너와 제일 먼저 제주의 섬 밖에 섬 우도 바다로 왔다. 어제는 먼 태고처럼 기억에서 가물거리고, 도시는 벌써 남의 일처럼 생경하다. 우리는 하릴없는 사람처럼 우두봉 등대 아래에서 오랜 시간 바다를 응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21세기가 시작되자 새로운 형태의 상거래가 생겨났다. 이른바 정보통신의 발달을 기반으로 한 전자상거래이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뚜렷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상품의 거래를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인터넷상에 개설된 상점에 올린 상품을 소비자가 구매를 하게 되는 새로운 방식에 매력을 느끼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20평 남짓 되는 사무실을 얻고 상품의 이미지를 만들어 등록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포장을 하여 택배를 보내고 고객 상담까지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점점 주문량이 늘고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아내와 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며 직장 동료가 되어 하루를 같이 보냈다.
전자상거래의 방식은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가 많은 편리함을 지니고 있어서 시장은 날로 확대되고, 우리의 사업 규모도 커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업무량은 계속 늘어갔다. 직원을 채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가족이 투입되어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였다. 두 아이가 동시에 대학을 다니게 되자 경제적으로 부담이 늘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우리를 든든하게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울고 웃으며 그때 가장 열심히 살았고 힘들었지만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나 좋을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소한 일에도 다툼을 하고 의견 차이로 마음이 비뚤어지기도 하였다. 아마도 좋은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해결해야 할 일들도 많아진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나는 점점 체력이 약해지고 아내도 고객을 상대하며 심신이 지치고 예민해져 갔다. 설상가상으로 전자상거래는 거의 모든 국민이 이용할 정도로 확대되면서 판매자 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졌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전투구가 시작되었다. 판매 수익률이 점점 떨어지자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방편으로 박리다매 방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업무량은 정비례로 늘어났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길가에 주저앉아 한참을 있었다. 체력이 고갈된 느낌이었다. 걱정이 많은 아내는 종합건강검진을 신청했고 우리는 같이 검진을 받았다. 아내는 대장에 생긴 용종을 떼어내었다. 의사는 나의 상태에 대해서 말했다. “몸에 특별한 문제는 없으나 크레아티닌 수치가 매우 낮게 나와서 안정과 휴식을 취해야 됩니다. 이 정도 수치는 사람이 죽어갈 때 나타나는 수치로 당장 입원을 하여 일주일 동안 쉬어야 합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죽어가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수치라고!’ 의사는 내 표정을 보더니 크레아티닌이라는 것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피로가 장기간 누적되어 더 이상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아니면 그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날로 처리해야 될 주문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노년이 저만큼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하여도 시간은 우리를 자꾸만 가자고 한다. 전자상거래는 또한 빠른 변화의 물결을 타며 세대교체를 요구하였다. 시대의 속도에 밀리고 경주는 더욱 힘이 부친다. 손익분기점을 향하여 그래프는 자꾸 내려가고 더 이상 버티는 싸움은 남은 인생을 소멸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폐업을 결정하자 제주도에서 회사를 다니는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 아빠 내려와서 좀 쉬었다 가세요. 비행기표 끊어 놓을게요.” 배낭에 등산화와 여벌의 옷만 가볍게 꾸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숙박은 딸과 함께 하면 되고 여행하는데 따른 이동은 대중교통인 제주도의 시내, 시외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차량을 빌려서 자유롭게 행선지로 떠나는 것보다는 버스에 몸을 맡기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었다. 낯선 마을의 정류장에서 따사로운 10월의 가을 햇살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면서 잃어버린 여유와 자유를 느꼈다. 배가 고프면 배낭에서 삶은 고구마를 꺼내 먹고 보온병을 열고 따뜻한 믹스 커피를 마셨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반복된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떠남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해방감이지만 그것조차도 일상으로의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5박 6일의 여행은 일상에서 멀어졌지만 여행이 끝나면 새로운 일상을 시작해야 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의 세상을 꿈꾸며 우리가 했던 질문은 무엇을 향하고 있었을까. 벅찬 현실과 굴곡진 삶이 있을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 속에서 행복을 발견해야 함을 깨달았다. 긴 침묵을 깨고 아내에게 물었다.
“바다와 무슨 얘기를 했어?” 아내가 말했다.
“바다는 아무 말이 없던데, 당신에게는 바다가 뭐라고 했는데?”
“바다가 나에게 말했어. 돌아가라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