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다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가 하는 말.
“아이 또 진밥이네!”
내가 하는 말.
“된밥이잖아!”
어제는 내가 밥을 했는데 진밥이 되었고, 오늘은 아내가 밥을 했는데 된밥이 되었다. 나는 진밥을 잘하고, 아내는 된밥을 잘한다. 아니다. 나는 진밥을 좋아하고, 아내는 된밥을 좋아한다.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밥을 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밥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좋아하는 밥이 된다. 어렸을 적에도 아버지는 진밥을 좋아했고 어머니는 된밥을 좋아했다. 간혹 아버지가 된밥이라며 한마디 하면 어머니는 내색을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하였다.
우리 집은 아침에 밥을 할 때면 일찍 일어나는 아내가 밥을 하고, 낮이나 저녁때 밥을 하게 되면 내가 하는 경우가 많다. 밥을 하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 아내를 도와주기 위해서다. 밥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설거지도 내 몫이고 집안 청소는 당연히 내 차지이다. 그런데 반찬을 만드는 것은 영 소질이 없고 재미도 없다. 아내는 반찬도 만들어서 해 달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반찬은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양념은 왜 그렇게 많고 얼마나 넣어야 간이 맞는지 종잡을 수 없다. 반찬 한 가지를 만들려면 들어가는 재료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아내, 어머니, 할머니들은 정말 위대하신 분들이다. 그 많은 반찬들을 매 끼니, 매 계절 준비하고, 만들고, 저장하고 대식구를 먹여 살렸으니 그 노고와 부지런함과 정성과 사랑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자취생활을 한 내게는 밥 하는 정도는 별로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그때는 진밥이니 된밥이니 가릴 겨를 없이 반찬 없이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먹고살만해서 그런지 요즘에는 밥이 조금만 입안에서 감촉이 다르면 한 마디씩 나온다. 밥이 질다, 되다, 찰지다, 맛있다, 뜸이 덜 들었다.
평소에 여러 잡곡이 들어간 밥을 먹는데 얼마 전부터는 쌀에 보리만 넣어서 밥을 해 먹는다. 보리쌀은 미리 보리밥으로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밥을 할 때 적당이 넣어서 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잡곡밥을 할 때와 쌀과 보리 혼합밥을 할 때 물의 양을 달리해야 해서 밥을 할 때마다 아내도 진밥을 할 때가 있고, 나도 된밥을 할 때가 있고, 중구난밥(?)이 되었다. 미리 만들어 둔 보리밥은 이미 밥이 된 상태이니 평소보다 물을 조금 덜 부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일단 쌀만 솥에 밥을 안치고 물을 손대중으로 붓고 다음에 보리밥을 얹어서 밥을 하면 적당히 중간밥이 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보리밥은 이미 밥이 된 상태이니 그 양만큼은 물을 붓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 집은 전기 압력밥솥을 사용하지 않고 가스불에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기 때문에 불 조절이 중요하다. 센 불에서 밥이 ‘칙칙’ 대며 끓기 시작하여 4분이 지난 뒤 가장 약한 불로 또 4분을 끓이면 아내도 나도 좋아하는 맛있는 밥이 된다. 이른바 4(분)+4(분) 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쌀과 보리 혼합밥은 내가 한 밥이 더 맛있게 되었다. 나는 이 비법 아닌 비법을 아직 아내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도 아내에게 잔소리라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진밥 된밥 정도가 심한 것도 아닌데 꼭 한 마디씩 해가며 밥을 먹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고 했던가? 때로는 조그마한 자존심 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 뒤돌아보면 참 못난 내가 멋쩍게 서 있을 때가 있다. 그런 나를 보면 내가 참으로 작아 보인다. 김수영 시인이 어느 시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모래야 나는 얼마나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그런데 나보다 더 참으로 작고 못난 사람들이 많다. 보고 싶지도 않는 그 사람들은 매일 내 앞에 나타나서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TV를 틀면 나오고, 신문에서도 보이고, 무슨 선거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고 명함을 준다. 큰 사람이 되어 큰일을 하라고 여의도 큰 집에 보냈더니 큰일은 하지 않고 맨 날 싸움질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며 패거리로 나뉘어 세상을 소음 공해로 가득하게 만든다. 차라리 된밥당, 진밥당으로 바꾸면 애교로 보아주기라도 할 텐데, 이름은 왜 그리 거창하게 짓는지. 내가 그곳에 간다면 4+4법칙을 적용하여 간단하게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집은 이제 평화가 찾아왔다. 적어도 밥 문제만큼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아내는 내친김에 나에게 밥을 맡아서 하라고 한다. 내가 해주는 밥이 제법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자신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나의 4+4 비법을 아내에게 전수해 주어야겠다.
된밥 진밥 논쟁거리가 사라졌지만 모든 것이 평온하지는 않다. 가정사, 세상사 모든 일은 언제나 시시비비가 넘치기 마련이다. 다음에는 무슨 일로 또 기싸움을 할지 모른다. 어디서나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고, 분열이 있는 법. 그러나 차이와 다름이 있기에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차이와 다름은 아름다운 질서를 만드는 재료이다.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 있기에 아름답고, 남자와 여자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의 조화로 아름다워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받아들여 새로움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더 아름다워지고 조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감히, 우리 집처럼. 아니, 우리 집 보리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