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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래는 파래 맛이 나고, 감태는 감태 맛이 난다

파래, 감태, 김, 매생이의 추억

by 김운

“파래는 파래 맛이 나고, 감태는 감태 맛이 난다.”

아내와 둘이서 밥을 먹으며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아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평소 같으면 싱거운 농담이라고 핀잔이라도 줄만 한데 웃어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내와 나는 파래와 감태가 어려서부터 매우 친근한 음식이다. 파래와 감태의 그 생김새와 색깔과 맛, 요리법 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연한 말을 하는데도 파래와 감태의 미묘한 맛의 차이를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파래지와 감태지가 오늘 아침 밥상에 나란히 올라왔다. 파래지는 시장에서 파래를 사 와서 아내가 손수 담그고, 감태지는 아내가 고향에서 식당을 하는 후배가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을 주문하여 택배로 왔다. 아내와 나의 같은 고향인 남쪽 바다가 있는 강진에서는 파래와 감태를 김치로 담가 먹는다. 김치 하면 배추김치와 무김치, 갓김치를 떠올리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의 대표음식인 김치에는 200여 가지의 김치 종류가 있다고 한다. 채소 종류를 소금물에 절여서 발효시킨 음식인 김치는 옛날에는 ‘물에 담근다’는 뜻으로 ‘지漬’라고 불렀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배추지, 묵은지, 오이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파래와 감태도 김치로 담가 냉장고에 두고 오래 먹을 수 있다.


파래지는 파래를 소금과 장으로 간을 맞추고 쪽파와 삭힌 고추를 조금씩 넣어서 담그고 냉장고에서 3일 정도 숙성시킨 후 먹으면 된다. 감태지 담그는 법도 같은데 양념이나 파 같은 부 재료를 많이 넣으면 오히려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치게 된다. 요즘 식당이나 인터넷에서 보면 파래지는 없고 파래에 식초를 치고 무를 썰어 넣고 무침으로 만들어 먹는 파래무침만 볼 수 있는데, 식초를 넣는 파래무침은 발효식품이 아니다. 파래지 와 감태지는 숙성이 되면서 파래와 감태의 향과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이 난다.


파래는 파래서 파래라고 했나. 파래의 색깔은 초록색에 가깝다. 파래와 비슷한 해조류에는 감태뿐 아니라 해조류의 대표 격인 ‘김’이 있고 요즘 들어 각광받고 있는 ‘매생이’도 있다. 김, 매생이, 파래, 감태는 해조류의 4 총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색깔이 비슷비슷하다. 제일 푸른색을 띠는 것이 파래이고, 김은 짙은 갈색 계통인데 언뜻 보아 검은색으로 보인다. 매생이와 감태도 파래와 비슷한 푸른색을 띠고 있다. 색깔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모양과 맛과 영양성분도 비슷비슷하다. 마치 얼굴과 성격이 닮은 고만고만한 4형제 같다.


이들 4형제는 비슷한듯하면서도 제 각기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가장 바다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것은 파래이다. 파래는 향이 강하고 약간 씁쓰레한 맛을 낸다. 식감도 가장 거친 편이다. 파래의 강한 향과 씁쓰레한 맛은 단 맛과 기름기에 맛 들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자극을 주는 맛이다. 이에 비해 감태는 씁쓰레한 맛은 비슷하지만 파래보다 향이 적고 식감이 매우 부드럽다. 그리고 자세히 맛을 음미하면 단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름을 달다는 뜻을 지닌 감태甘苔라고 하였다. 감태는 말려서 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도 하는데,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역시 감태지로 먹는 방법인 것 같다. 감태지는 주로 가장 추운 겨울인 1월에 생산되는 감태로 만들어 먹어야 좋다.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의 감태가 가장 부드럽고 모양이 곱다. 이 시기가 지나면 성장하면서 거칠어지고 맛도 떨어진다. 한 겨울에 냉장고에서 시원한 감태지를 꺼내 먹으면 입맛이 개운해지고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특히 기름진 고기나 비릿한 생선을 먹고 바로 감태지 한 젓갈만 먹어도 입안에 느끼함이 거짓말처럼 싹 가신다. 그러면 다시 고기를 먹어도 느끼함을 덜고 또다시 감태지를 먹고 다시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이다.


겨울이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매생이 국이다. 매생이가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인 강진은 완도와 바다를 같이 하고 있는 곳으로 완도 고금도 바다에서 채취한 매생이를 겨울이면 국으로 끓여 먹곤 하였다. 지금은 매생이가 많이 알려져서 양식재배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김양식장에 붙은 매생이가 김의 품질을 나쁘게 한다고 하여 버리는 천대받았던 해조류였다. 그곳 지역의 일부 사람들만이 그 맛을 알고 그것을 채취하여 별미로 먹었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매생이국은 매생이에 굴을 넣고 부재료는 거의 넣지 않고 간을 맞추어 끌이고 참기름을 약간 두르고 먹으면 된다. 매생이국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국이 식어갈수록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솥에서 막 나온 매생이국을 먹다가 입천장이 덴 적이 많았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뜨거울 때 먹느라 자주 데곤 했다. 매생이국은 뜨거워도 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겁 없이 먹다가 입천장을 홀딱 벗기고 만다. 매생이국은 걸쭉하게 끓여야 맛이 있는데 걸쭉한 매생이의 밀도 때문에 잘 식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운 사위에게는 솥에서 막 끓은 뜨거운 매생이국을 내놓는다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미웠으면 입천장을 홀딱 벗기고 아파하는 사위를 보고 고소해했을까.


겨울이면 파래, 감태, 매생이, 김을 먹으며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간다. 파래는 바닷가 바위와 돌에 붙어있고, 감태는 뻘밭에서 자란다. 50여 년 전, 내가 어렸을 적 마을의 아낙네들은 썰물이 되면 장화를 신고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파래와 감태를 일일이 손으로 채취했다. 한 겨울 추위에 얼굴이 빨갛게 얼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바닷물에서 건져 올린 혹독한 노동의 대가代價로 얻어진 이들 해조류는 그 수고로움과 뛰어난 맛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당시에는 식재료로써 대중화가 되지 않았기에 헐값으로 팔 수밖에 없었다. 매생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김은 귀하고 고급 식재료 취급을 받아서 김 재배는 꽤 쏠쏠한 수입이 되었다.


초, 중등학교 시절에 외갓집 삼촌(외숙)은 김 양식을 하고 있었다. 김 양식은 남자가 배를 타고 나가 김 양식장 말뚝을 박고, 김발을 세우는 등 힘든 일을 하지만 대부분 부부가 같이 일을 나가거나 모든 가족이 함께하는 일이 많았다. 바다에서 김을 채취하여 오면 외숙모는 맨손을 찬물에 툼벙 담가서 물김을 떠서 사각형 김 틀에 부어 한 장 한 장 수작업으로 김을 만들었다. 이것을 양지바른 곳 햇볕에 말리고 다시 한 장 한 장 뜯어내어 100장을 한 톳으로 하여 공판장에 내다 팔았다. 지금도 살아계신 외숙모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을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4남매를 기르고 가르친 눈물겹게 아름다운 손이다.


아내가 담근 파래지는 지금은 식당에서도 구경할 수도 없는 맛이다. 고향에서 온 감태지 역시 고향 옛 맛 그대로이다. 갖은 식재료와 양념으로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자연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순수한 맛이 점점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자연 그대로의 맛, 바다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음식이 이 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또한 음식에는 정이 있다. 우리는 음식을 맛으로만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파래 한 줌, 감태 한 줌을 얻기 위해 차가운 바닷물에 수도 없이 담갔을 시린 손들. 할머니, 어머니가 만들어준 옛 맛 그대로 이어져서 이제는 아내가 만들어 주는 추억과 사랑이 담긴 파래지와 감태지, 그리고 입천장을 데이며 먹었던 매생이국 한 그릇은 오래된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는 시장에서 매생이 한 덩이 사가지고 와서 입천장이 데도록 매생이국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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