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

그런 게 있으면 슬럼프가 아니지

by 자몽수


드라마를 쓰겠다고 다짐하고 예능 작가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한동안 예능 프로가 재미없어서 보지 않았다.

그리곤 줄곧 드라마만 찾아봤다.

하루에 미니시리즈 열여섯 편을 전부 다 본 적도 있다.

머리가 띵하고 눈도 아팠지만, 그만큼 열정이 넘쳤고 또 드라마가 재미있었다.

근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때 난 예능 프로를 안 본 게 아니라 못 본 것이었다.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너무 상세히 잘 알다 보니,

일반 시청자가 되어 편하게 웃으며 즐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즐기던 것이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일은 전과 같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드라마가 재미없다.

그리고 예능 프로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예능 프로를 보는 건 나에게 커다란 힐링 가운데 하나이다.



반면 드라마를 생각하면 밀린 숙제처럼 마음이 무겁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 내 부족한 작품과 비교가 되어 자괴감에 빠져들고,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면 운칠기삼의 영역을 재확인하며 시기심에 배알이 꼴려 스스로 소인배임을 자인하게 된다.

드라마를 그냥 편안하게 즐기면 되는데 자꾸 분석하려 들고,

그게 피곤하면 그냥 안 보면 되는데,

그럼 또 뒤처질까 억지로 챙겨보고,

이런 악순환이 재차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드라마라는 것이 지긋지긋해진다.

나는 왜 이런 삶을 택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깊은 자기 회의에 빠지게 된다.

글도 안 써지고 대본이나 책의 활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슬럼프라는 말로 자기변명 내지는 비겁한 합리화를 시작하게 되고,

결국 무기력이 찾아온다. 주기적으로. 마치 감기처럼..


하지만 감기에 특별한 약이 없듯 해답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잘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가슴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진솔한 글 한 줄에서,

갑자기 떠난 여행 중에 만난 자연의 눈부신 풍경 앞에서,

친한 친구와의 맥락 없는 수다 속에서,

또는 예기치 않게 들어온 작업 의뢰라든지..



슬럼프와 무기력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때그때 달랐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감기가 다 나으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맑은 정신으로 다시 보면 망작이라고 여겼던 나의 작품도 꽤 그럴듯해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다시 쓰면 된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여기며..

서툴고 조금 부족할지라도 끈기 있게!!


글은 자신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문제를 만나고 답을 찾고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떠안은 채 풀어가야만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지 모른다.

슬럼프와 무기력이라는 불청객이 수시로 예고 없이 나를 찾아올지라도

그때마다 지치지 말고..

그저 가장 나다운 속도로..

비록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언젠가 분명히 다다를 그 어딘가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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