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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Aug 15. 2020

비 오는 거리 천천히 걷기


재미없어. 지루해. 다음 회가 전혀 궁금하지 않아. 너무 뻔해. 조잡한 기교로 가득 차있어. 주인공이 무매력이야. 개연성이 없어. 작위적이야. 진짜 억지로 봤어.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기타 등등..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내가 주로 내뱉는 말들이다.

누군가의 산고 끝에 완성된 작품을 단숨에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혹평들.

기대가 크기에 실망도 큰 것일까. 아니면 질투와 시기가 만든 무차별 칼부림 일지도 모른다.


무려 천운이 더해져야만 가능하다는 편성.

그 전쟁 같은 경쟁에서 싸워 이긴 작품이라면 분명 반짝이는 그 어떤 미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걸 발견하고 깨우치고 내 작품 안에 녹여내야만 작가로서 발전이 있다.

하지만 끝끝내 모르겠는 작품들도 더러 있긴 있다.

그럴 때 용기가 절로 샘솟는다. 반대로 좌절도 찾아온다.

저런 작품도 되는데 왜 내건 안 되는 걸까.

이러다 영영 기회가 오지 않는 건 아닐까.

우울하고 힘든 나머지 심보는 점점 더 꽈배기가 되어간다.


올 초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하고 4월부터 지난달까지 작업실에서 대본을 썼다.

출근시간 전에 출근해서 퇴근시간 전에 퇴근하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정도 없이 6회까지 광속으로 내달렸다.

대본을 뽑을 때마다 회사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그만큼 의욕이 고취되어 점점 더 가속이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드백의 시간.


제작사에서 방송사 관계자의 피드백을 받는 동안, 나는 따로 친분 있는 감독님에게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솔직히 떨렸다. 보내고 나니 그제야 말도 안 되는 오타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써버린 부분들이 맘에 걸리고 내내 찝찝했다.

기대 반 걱정 반. 소심하게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나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며칠 뒤 감독님을 만나 대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행히 재밌다는 말씀과 함께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해주셨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역시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어. 이번 작품은 필이 왔다니까!

조금이나마 안도하며 다음 피드백을 기다릴 수 있었다. 살짝 기대까지 더해졌다.


근데 꼭 이럴 때도 반전이 필요한 걸까.

제작사에서 받은 피드백은 달랐다.

두루뭉술한 개념에 대한 말로 일축하며 그야말로 땡.

내가 쓴 글이 몇 마디 간단한 말로 가볍게 평가되는 건 누구에게나 치욕이다.

기분이 급격히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돈을 받고 쓰는 글은, 더구나 방송이 돼야만 그 존재 의미가 있는 대본 글은 누군가의 평가 몇 마디에 생사가 결정된다. 그 명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 글을 죽이는 흉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살리는 심폐소생기가 되기도 한다.

자기 확신만 가지고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늘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길을 잃고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기분이다. 막막하고 답답하다.


며칠 방황했다. 책을 읽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도 영 재미가 없었다.

연일 계속되는 비를 핑계 삼아 작업실도 나가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지만 마음은 점점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세찬 비를 뚫고 작업실에 나왔다.

아무리 조심해도 운동화가 젖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기분이 더 축축해졌다.


자,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제작사에서 전해줄 또 다른 피드백을 기다려야 한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현재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무력감이 나를 내리누른다.


멍하니 앉아 한동안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투둑 투둑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기분이 센티해졌다.

폭우로 고통받는 수재민을 생각 안 할 수 없지만 비 오는 창밖은 언제나 운치 있게 느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감정은 글을 쓰지 않고 허무하게 보내버린 시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일희일비의 삶을 살아가는지 절감하며 한심함에 혀를 차기도 했다.


주변 작가들의 경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 좀 놀아. 그 시간을 즐겨. 만끽해. 부럽다. 나도 빨리 쓰고 좀 놀고 싶다. 마음 편하게.

근데 정작 내 일이 되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 이틀 홀가분한 기분이 들뿐, 마음의 여유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불안 초조와 걱정 근심이라는 마음의 짐에 짓눌려 쉬지도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도 손에 잘 안 잡힌다. 뭘 해도 편치 않은 거다.


퍼붓는 빗속에 있을 때 운동화 젖는 게 싫어 종종걸음 친다.

어차피 쏟아지는 비를 그만 오게 할 수 없고 아무리 애써봐야 운동화는 젖고 말 것인데.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게 되었을 때 그제야 후회가 깨달음처럼 찾아온다.

어차피 젖어버릴 운동화 걱정일랑 던져버리고 마음 편히 천천히 걸을걸.

천천히 빗물 위를 걸으며 그냥 바라볼걸.

그냥 눈앞에 내리는 비를 똑바로 마주 보며 걸어볼걸.

어쩌면 운동화는 나에게 생각보다 더 큰 짐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이 시간, 난 무얼 해도 좋을 것이다.

또 무얼 해도 싫을 것이다.

무얼 해도 아무 상관없고,

그래서 무엇도 할 수 없는 시간.

오히려 글을 쓸 때보다 더 힘든 이 시간.


밖에 나가 좀 걸어야겠다. 젖은 운동화가 다 마르기 전에. 짐이 돼버리기 전에.

비 오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가만히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싶다.

그래도 되는 여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닐까.

별 거 아닌 일 별 거 아니게 하는 것.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세상이 한층 더 반짝거릴 것이다. 그간의 나의 노력도 반짝이는 결실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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