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 Y와 수다 01
"내 삶이 너무 구차해서 사는 게 민망한 거야"
그게 Y가 5년의 직장생활에서 중도하차 한 이유였다.
"분명 돈돈 거리는 어른은 되지 않으려 했거든. 시시해지잖아 사람이.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땐 사람보다 돈돈 거리는 게 불편했단 말야. 근데 알아? 이제 불편하지가 않아. 불편한 게 없어지니까 알게 된 거야, 아 여기가 내 바닥이구나."
Y는 옆 테이블에서 쳐다볼 만큼 크게 웃더니 투샷이나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클라이언트의 일을 대행해주는 회사를 다니며 온갖 일을 다 겪었다고 했다. 주말 출근이 일상이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데도 군소리 없이, 가장 높은 인사고과를 받으며 일했단다. 어딜 가도 적응을 잘한다는 Y의 장점은 5년 뒤 독이 됐다.
"월급이랑 커리어 계산을 때리니까, 갑질을 당해도 입 꾹 닫게 되더라. 팀장이란 새끼가 성추행을 해도 대응을 못해. 업계가 좁은데, 주니어인 내 이름이 그걸로 먼저 오르내릴까 봐.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약았지, 30년 같이 한 '나'를 담보로 판 느낌이었어 잠시였지만. 그 비참해진 '나'를 가둬놓고, 꾸역꾸역 다시 출근해서 광고주가 하라는 대로 일한 거야. 돈이 하라는 대로 한 거지. 그때 비루해진 날 달래고, 흙 털어서 같이 갔어야 하는데. '응 비참해진 건 알겠는데 지금 일단 돈이..' 이러면서 걜 뒷방에 처박아둔 거야. 그러니까 걔는 혼자 거기서 비참해 진채로 계속 그대로인 거지."
Y는 커피 잔을 몸 쪽으로 조금 끌어당기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 꿈 꿔본 적 있나 죽은 내 시체를 보는 꿈. 내가 어떤 문 밖에 서있는데 자꾸 불안해, 이유는 모르겠고. 차마 문을 못 열고 있는데 누가 와서 휙 문을 열어주더라고. 너무 쉽게. 문이 열리니까 보여. 그 캄캄한 공간 안에 죽어있는 게 나더라고. 나는 죽어 있는 내 얼굴을 보면서 울어."
한동안 그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내 안에 내가 없어서 감추는 데 급급해. 뭘 원하는지 뭘 위해 이러고 있는지 모르니까 계속 부족하고, 내가 하는 게 맞는지 틀린 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갑자기 어디서 누가 빨간펜 들고 와서 나 다 틀렸다고 찍찍 그어댈 것만 같은 두려움."
그러다 하루는 참을 수 없이 엉덩이가 근질거렸다고 했다.
"점심 먹고 3시쯤 됐을까. 뻔뻔하게 나를 찾는 메일 알림이, 카톡이 와. 뒤가 막 쭈뼛 서더라고. 자리를 박차고 하얗게 앉아있는 직원들 머리통 위로, 소리 빽 지를 뻔했다니깐. 도대체 다들 어떻게, 괜찮으시냐고. 이게 맞는 거냐고"
Y는 웃었고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이거 아니라고 답을 내리는 데 5년 걸렸다.”
짧은 침묵 후 Y가 말했다.
“퇴사 사유가 너무 거창하지?”
나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