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는데? 아뇨, 없다니까요. 사람이.
이딴 무익한 글이 2편이다.
무익한 데다가 재미도 없을 게 뻔하니 뒤로가기를 방지하기 위해 여행 DNA를 자극하는 사진을 먼저 투척하기로 했다.
아, 참으로 알차고 뿌듯하다.
낮 비행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앞서 1편에서 말한 바, 에어서울 직항밖에 없고 시간은 거의 오후 1시 비행기로 고정이기 때문에 아침에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 중에 하나였다. 나는 예전에 사냥꾼처럼 이곳저곳을 타임어택하며 다니는 것이 이제 불가능한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돗토리도 일종의 모험이기는 했지만 좀 더 느긋한 모험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낮 비행기를 타고 보는 운해는 여느 때와 달리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잠에 들 요량이었으나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창만 바라보다 잠들었다.
요나고 키타로 공항(이하: 요나고 공항)은 한적했다. 비행기 대신 버스라도 가져다 놓으면 "아, 여긴 버스 정류장이었군요. 얏빠리."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대충 아는 한자와 히라가나를 읽어가며(그 와중에 친절하게 보이는 한글은 이악물고 외면했다. 나름의 단련이다.) JR 요나고 공항역을 향해 걸어갔다. 지인과는 오후 7시에 JR 돗토리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곳까지는 넉넉 잡아 1시간 30분은 걸릴 것 같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서두르기로 했다.
나는 미리 사 둔 JR 돗토리 마쓰에 패스를 발권하기 위해 역에 도달하자마자 역무원을 찾았다.
그런데 없다. 없었다. 어?
'나는 너무 도시에 찌들어 살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공항에 붙어있는 역이라면 무조건 큰 역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은 무인역이었다. 어머 히밤밤 망했네? 나는 무사히 작동이 되는 eSIM 덕분에 인터넷으로 부랴부랴 검색했다. 원래 무인역이란다. 하하... 하하하하.... 그래서 일단 열차를 타고 내릴 때 보여주면 된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열차가 올 생각을 안 한다. 나랑 같이 역에 당도한 중국인 모녀도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배차 간격은 보통 1시간이지만 다행히도 한 10~20분을 기다리니 열차가 뿌뿌거리면서 도착을 했다. 아.... 그제야 떠올렸다. 여긴 전철 개념이라기 보다는 열차 개념이구나.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싹 긴장하지 않으면 차 하나 기다리면서 동선 엄청 꼬이겠구나.......
고즈넉한 일본의 시골 동네를 구경하면서 가다 보면 드문드문 빈틈으로 거대한 산을 목격하게 된다. 다이센 산이라는 곳인데, 이 산은 관서의 후지산으로 불릴 만큼 위에는 만년설이 있을 정도로 높고 아름답다. 사진을 미리 안 보여주는 이유는 이 시리즈를 끝까지 읽게 하기 위한 큰 그림이다. 답답하면 검색하라.
JR 요나고역까지는 30분이면 도착한다. 여기서 또 난관이었다. 특급이든 일반이든 한 시간 뒤에나 열차가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야발적인 경우가. 나는 얼마나 서울의 편한 지하철에 찌들어 살았던가. 일단 나는 매우 곤란한 외국인임을 어필하면서 역무원에게 JR 패스 발권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JR 패스는 JR역에 있는 기기에 가서 QR 코드를 입력하면 발권이 된다. 처음이면 오래 얼타지 말고 역무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그리 어렵지는 않다. 세 장이 나올 텐데, 가장 작은 종이가 티켓이다. 특급이고 뭐고 JR 열차는 다 탈 수 있다. 역무원에게 보여주거나 개찰구에 넣으면서 여행을 하면 된다.
일단 나는 요나고역 근처 찻집에서 느긋한 '척'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역 앞이라 비쌀 거라고 예상했지만 날강도 수준으로 비싸지는 않았다. 자유석이기 때문에 조금 일찍 나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미리 줄을 서 있었다. 자유석은 일찌감치 사람들이 줄을 서는구나 싶었다. 마치 광역버스 탈 때 미리 자리 선점하기 위해 줄을 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리는 입석으로 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넉넉한 편이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티켓을 따로 구매할 때도 역무원이 자리 널널할 테니 지정석 말고 자유석으로 하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6시 40분 정도에 도착한 돗토리역의 풍경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부랴부랴 인근 호텔에 체크인하고 나와 지인을 만났다. 위의 사진 구도 바로 뒤쪽에 'TOTTORI'라고 쓰인 사진 스팟이 있는데, 손을 T자로 벌리고 사진 찍는 것이 국룰이란다. 찍긴 했지만 역광 때문에 내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가볍게 한잔하고 숙소로 돌아와 휴대폰과 이어폰에 밥을 주고 호텔 내부의 인공 온천(뭐.... 목욕탕이다.)에서 첫날 피로를 풀었다.
Green Rich Hotel Tottori Ekimae는 역에서 도보 3~5분 거리에 있는 신식 호텔이다. 후에 물어본 바에 의하면 건물 지어진 지 4년밖에 안 된 이 근처에서는 꽤나 괜찮은 호텔이라고 한다. 일본 화장실 답지 않게 그리 좁지도 않고 있을 거는 다 있는 깔끔한 호텔이었다. 내부 인공 온천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 조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조식은 미리 예약할 때 옵션 추가해 놓았다.
잠들기 전에 다음 날 동선을 짜야 하는데,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잠들어 버렸다. 얼핏 뭐 없어 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관광을 해야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다. 결국, 정말 어떻게든 되기는 했다. 첫째 날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