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준비지 최소한 국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한 단계
손오공이 원기옥 모으는 심정으로 연차 휴가를 모은 나는 거하지만 소소한 여행을 꿈꿨다. 바야흐로 여행 쿨타임이 찬 것이다. 롤(LOL: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며 싸우는 유쾌한 AOS장르 온라인 게임)에서도 궁이 차면 바로 바로 써 주는 것이 승리의 길이렸다. 거기다 이웃나라의 엔저는 온 세상의 기운이 일본으로 가라는 듯한 계시를 주는 것 같았다. 이거 쓰는 시점에 한일 야구를 저버렸지만, 뭐 알빠인가. 짜피 둘 다 잘하는 거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거. 난 내 알차고 희망차고 가성비 찬 여행이 중요하다.
하지만 게으르디 게으른 나는 여행 2주 전까지 비행기표는커녕 행선지도 못 정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난방도 고장 난 내 방 이불 속에서 남의 여행 Vlog나 보면서 손가락이나 빨며 일주일을 삭제해버릴 게 분명했다. 인생의 위기였다. 얼마 남지도 않은 젊음의 금쪽같은 7일여 남짓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 싶었다.
여행지야 어디든 상관은 없었다. 이왕이면 돈을 조금 더 써서 도쿄에도 한번 가 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안 가 본 곳에 가고 싶은데......."
사실, 같이 여행 준비를 하다가 회사 일이 바빠진 친구가 여행지 정할 때 지나가면서 한 마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것은 나의 사고를 조금씩 스며들다가 결국 내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렸다. 관서 대도시 위주로는 몇 번이고 다녀왔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라시야마 메밀 소바도 한번 더 먹어도 괜찮은데, 난바에서 술 한잔도.... 아니, 굳이 또 가나, 요즘 거기 한국인 많아서 거의 홍대 수준이라던데.
에라이~씨 그래서 정한 곳이 돗토리였다. 아는 친구도 있겠다. 사람도 적겠다. 무엇보다 안 가 본 곳이니까. 일본의 시골은 원치 않게 길 헤매다가 두어 번 겪어 본 적은 있지만(그땐 국제 미아 위기감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 자발적으로 가 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좋겠다고 생각했다.
돗토리로 말하자면 관서 지방의 대표 도시인 교토, 오사카에서 왼쪽 위로 더 가면 있는 곳으로 교토에서 3시간 정도 더 가야 있는 소도시이다. 자세한 사항은 검색을 통해 공부하며 핑거 프린세스 기질을 버려 버리는 바람직한 자세를 가지도록 하자. 위키백과가 이딴 글보다 훨씬 유익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역시 검색을 통해 공부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너무 간만의 여행이라 뭐가 뭔지 몰랐다. 단적인 예로, 마지막 일본 여행 때는 '포켓 와이파이'를 사용했는데 요즘은 eSIM이라는 신박한 개념이 생겨났다. 이해하는데 5분 정도 걸렸지만 체감 상 5시간은 기절한 느낌의 충격이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일본은 교통비가 살인적이니까 무언가 패스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패스가 있구나.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이 준비물을 미리 적으면서 촉박한 시간 동안 이것저것 준비를 해 봤다.
1. 항공권
2. JR 패스
3. 숙소
4. 로밍
5. 환전
6. 옷
7. 짐
8. 선물
9. 갈 곳, 먹을 곳 선정
항상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항공권부터 사면 게으르고 안이한 몸이 바쁘게 움직인다. 비싼 표를 날리기는 싫으니까 말이다. 친구가 해 준 명언이다.
목표 지점에 공항은 두 곳이 있었는데, '돗토리 시'와 가까운 돗토리 공항(일명 '코난 공항')은 국내선 위주이며 한국에서 직항은 없다.
요나고와 가까운 요나고 공항(일명 '요나고 기타로 공항')으로 가는 에어서울 항공편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에 세 번(일, 수, 금) 13시 20분 출발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오는 편 역시 15시 50분으로 고정이다.
요일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직장인이라면 금요일 하루 휴가 내고 금~일요일도 괜찮을 것 같다. 나에겐 든든한 원기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일~수요일 3박 4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교토, 오사카 등지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JR 패스가 있다. 'JR 돗토리 마쓰에 패스', 보통 3일권이 적당하다. 버스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JR선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장단점이 있다. 일단 사 가지고 가는 것이 무조건 좋긴 하지만 나는 많은 덕을 못 봤다. 이걸 잘 활용하려면 여행 동선을 잘 짜야 한다. 후술하도록 하겠다.
사용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요나고 공항에서 내린 다음 냅다 열차를 타고, 내릴 때 산 것을 모바일로 보여주면 된다. 여기서 끝내지 말고 바로 JR 요나고역에서 기계에 QR코드를 찍고 표를 발권해야 한다. 발권한 날 기준으로 3일이다. 시간 개념이 아니라 날짜 개념이다. 모르면 휴대폰에 QR 코드를 띄운 다음 "Somebody Help me!"를 외치며 국제 미아가 되어보도록 하자. 누구든 도와줄 것이다.
이번 여행의 숙소 컨셉은 '시골 여행에서 그지에서 왕까지'로 정했다. 게다가 3박을 해야 했기에 모두 다른 곳으로 버라이어티하게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무난하게 멀티 먹고 선 호텔, 중반 게하, 최종 료칸 테크트리를 타기로 했다. 이 정도면 임요환도 무릎을 탁치고
포켓 와이파이라는 구시대 유물은 버리고 나는 신 문물인 eSIM이라는 것을 써 보기로 했다. 나는 처음에 실물 USIM을 공항에서 받아서 갈아끼우는 것인 줄 알고 바늘 꼬챙이부터 찾았는데, 그냥 이것 역시 QR 찍어서 설정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진화하고 계몽해야 한다.
eSIM은 휴대폰이 듀얼심 기능을 지원해야 쓸 수 있다. 나는 iphone XS 기종으로 겨우 턱걸이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인터넷 따위가 사람 피말리게 한다, 진짜. 찐으로 세상과 단절된 다소 아찔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코드를 일부러 틀리게 입력하거나 아침 공항 가기 전에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두고 나가 보도록 하자.
eSIM 설정 방법은 처음이 헷갈리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긴장하지 말도록 하자. 한국에서 설정하고 넘어가면 자동으로 활성화되고 그때부터 일수가 적용된다.
이악물고 문화수업같이 일찍 끝나는 날에 은행으로 김경호처럼 달려가 환전을 했다. 요즘은 트래블로그 같은 것이 생겨서 환전 우대도 받을 수 있다는데 나는 광고같은 거는 어림도 없으니 홍보는 안 하기로 하겠다. 그냥 자주 가는 은행 창구에 가면 환전 혜택 받을 수 있는 이벤트 참여해서 최대한 영끌환전하면 되겠다. 나는 1엔=8.60원일 때 환전했다. 역시 될놈될.
그지같지만 입던 옷을 입고 가기로 했다. 옷 사 입을 돈으로 게나 사 묵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용 가방 바퀴도 아직 달릴 수 있다고 하고, 상태도 양호해서 따로 사지 않았다.
지인이 있다면 여행용 가방에 여유 공간을 마련해 마음을 담아가도록 하자. 올 때 선물을 담아둘 공간도 포함해서.
대부분은 그곳에 가서 물어보긴 했지만, 나처럼 무계획으로 가진 말길 바란다. 미리 찾아보고 동선을 좀 빡세게 짜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예전처럼 뭔가 두근두근대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스리슬쩍 귀찮음과 긴장감과 설렘이 1:1:1 비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뭔가 간만의 휴가를 알차고 유익하게 보내야만 하는 숙제같은 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돗토리는 북적거리지 않은 부분이 좋았다. 어딜 가도 한산했으며, 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한 곳도 있어서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참 좋았다. 그렇기에 어설픈 일본어를 가져가도 일본 현지인으로 속이기가 매우 용이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는 것이 장점 중에 하나일 것이다. 다른 일본 번화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산물을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의 하나이다.
친구와 같이 여행가거나, 일본이 처음이거나, 활기찬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잘 안 맞을 수도 있겠다. 다음 편에서 설명하겠지만 이곳은 교통이 썩 좋은 편이 아닌 데다가 렌트 비용은 애초에 비싸기 때문에 많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2박 3일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조금만 부지런하고 사전 준비만 잘 되어있다면 유명한 곳은 충분히 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