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이유가 하찮고 작다
사건의 발단은 '굴'이었다. 내가 얼마나 굴을 싫어하는지는 기회가 있다면 추후에 밝히겠다.
하지만 이것은 굴에 대한 사적인 감정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이러한 해산물은 오래두면 둘수록 위험하다. 그래서 이것을 왜 굳이 냉동실에 며칠씩 묵혔다가 오늘 국으로 끓였는지에 대해 논하다가 결국에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못난이 맞다. 그래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전투를 생활화한 사이어인이라면 이런 일은 다반사기 때문에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싸우는 시기가 12월 31일 연말인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나는 그냥 대충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나올 작정이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참으로 못났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한번 되짚어보라. 사람은 정말 아주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대판 싸운다. 내 아는 친구는 와이프랑 리모컨 위치로 이틀 간 말을 안 하고 살았다고 하며, 대학교 때 어떤 후배녀석은 룸메랑 전화벨 소리 때문에 싸웠다고 한다. 물론 데시벨의 문제가 아니라 벨소리의 종류 때문이었다. 거슬렸다나 뭐라나.
연말은 가능한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도 겨울잠으로 잘 버텼던 나다. 그런데 연말 연휴에 크게 한번 터뜨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으니, 조금 이따가 새해 카운트다운 때는 어찌해야 하나 싶다. 올해는 친구들도 안 모이는데 처량하게 거리를 한번 걸어볼까.
이번 한해도 시끄러웠던 것 같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방금 싸우고 나와서 그런지 생각나는게 싸움의 사례들 뿐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고, 그와중에 바그너 그룹이라는 용병집단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숙청인지 사고인지 모를 사고로 수장이 사라져 버렸다. 이 거대한 싸움으로 안 그래도 오른 물가가 더 오르고 월급을 받아도 이게 월급인지 배급인지 모를 정도로 삶은 점점 빡빡해졌다.
그러다가 이-팔 전쟁도 터졌다. 국제정세야 늘 그렇듯 정말 복잡한데 궁금해서 찾아보니 여기는 더욱 복잡하고 갈등이 오래되었다. 이 전쟁도 31일 현시점까지 진행 중이고, 이 때문에 결국에는 중국이나 북한 역시 '아 전쟁마렵다'하면서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 유명한 '50대50' 사건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것 같다. 가히 날먹이라 불릴 정도로 저작권을 낚아채고 소속 가수까지 데려가려던 사건이었다. 사실 제대로만 활동했어도 괜찮았을 이 그룹은 정말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앞길이 막혀버렸다. 한 명이 넘어왔다고는 하지만 그 네이밍으로 계속 가도 괜찮을지는 미지수다. 다들 좋은 이미지로 새 맴버 영입해서 계속 이어나가면 괜찮다고 하지만, 글쎄. 르세라핌의 사례처럼 한 명 거르고 곡 대박 터뜨리며 질주하는 것보다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피프티도 훌륭한 곡 하나 뽑아 냈지만 이들 말고도 정말 미칠듯이 데뷔하고 싶어하는 실력자들은 차고 넘치니까.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해서 내쪽은 아니지만 그나마 가까운 분야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서이초 사건과 작가 주 씨 자녀의 사건이 되겠다. 서이초 사건은 현 시점에서 교권이 얼마나 바닥 저변까지 내려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들 말한다. 이 사건을 비롯해 청소년 강력 사건이 터져나오는 요즘, 나도 모르게 꼰대적 문장을 내뱉게 한다. '요즘 것들'. 그리고 다시금 부끄러워지는 것이, 그런 요즘 것들을 양산해 내는 세대가 아마 나나 내 형님누님 세대라는 사실이다. 뭘해도 내 눈깔에 침뱉기다.
한 다리 건너 교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반은 맞고 반은 안타깝다고 한다. 실제로 요즘 부모들이 극성맞고 요즘 애들이 말을 갈수록 안 듣는 것은 사실이란다. 하지만 그것도 반에서 한둘이 그런데 그 한둘 때문에 1년이 괴롭다고. 마치 평소처럼 던전들어가서 파밍하려는데 이벤트몹이라고 레벨 99짜리가 떡하니 앉아서 잡몹도 못잡게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겠다. 입장권은 또 노가다해서 구해야 하기에 나가기도 아깝다. 정말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비단 그 선생님만 힘든 것이 아닐 것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멘탈의 강인함의 문제인데 사람이 죽어간 마당에 거기까지 감히 논하고 싶진 않다. 겪어보지 않아서 함부로도 말 못하겠다. 힘든 건 힘든 거다.
나는 침착맨과 함께 주펄도 참 좋아했고, 지금도 좋기는 하다. 이 사건은 최근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인데, 결국에는 상황과 특수교사의 발언의 뉘앙스를 파악하기 위해 법정에서 몇 시간되는 녹취를 전부 다 틀었다고 한다. 재판부도 한번에 결과를 내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싸움도 논쟁의 여지는 있어보인다. 그래도 선처를 바란다면서 한쪽에서는 소송을 준비했던 예전 모습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좋게 보진 않는 것 같다.
이런 싸움이 난무한 끝에, 올해가 더 우울해진 것은 故 이선균 배우의 소식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난 솔직히 이 배우가 열연했던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에게 아직도 감사를 느낀다. 내가 인생 살면서 듣고 싶었던 말, 내가 남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의 팔할을 이 인간이 해버렸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닮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지금 나온 정황을 보면 어떤 두 감방 동기 여인 사이에서 공사를 당한 꼴이 되어버렸다. 마약 투약 여부를 떠나 그의 죽음이 허무하고 어이가 없는 것이 이런 부분 때문이다.
언론은 이제 코로나 이후 그 어떤 질병이 도래해도 열 배는 부풀려서 '큰일났사옵니다 전하!'하며 다급히 목숨걸고 달려오는 사극의 전령마냥 외쳐댔다.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부터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에 이르기까지. 물론 항상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코로나라는 전세계적 팬데믹 탓에 강해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다. 뭐, 실제로 걸릴 확률이 적거나 증상이 치명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내가 앞서서 '부풀리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어떤 기사는 거의 지구 멸망급의 잠재력을 가진 바이러스 정도로 표현해서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스위트홈2 대본을 이 분이 쓰셨어야 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쌈박질'만 떠올려 보니, 그리고 시간이 또 흐르니 굴은 이제 아무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든다. 하루이틀 지난 굴을 먹는다고 전쟁이 나진 않잖아. 그걸로 국을 끓인다고 수억 대의 소송이 일어나진 않잖아. 그걸 그냥 냅둔다고 해서 누가 죽거나 하진 않잖아. 그걸 먹는다고 해서 그속에 세계 멸망급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지는 않잖아.
돌아보면 올해에도 비교적 조용히 살았지만 하찮은 싸움을 두어 번인가 했던 기억이 있다. 술먹고 친구와, 가족과 식사하다가, 직장 동료와 일하다가....... 싸움이랄 것도 없이 대부분이 날선 말을 틱틱 주고 받다가 푼 경우였지만 그러다가 상처도 받고 주기도 했다. 내년에는 더욱이 부드러운 혓바닥을 탑재하여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올바른 아저씨가 되어야겠다. 날선 말은 이곳 브런치글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