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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an 01. 2024

[일본 돗토리 7편] 돌아가기 싫어요

아쉬움 남기고 돌아오는 길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내 몸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분명 늦잠 잘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오전 6시에 눈이 확 떠졌다. 출근으로 단련된 몸이라 이건가. 무서웠다.

눈뜬 김에 한 번이라도 더 온천욕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내려갔다. 손님도 많지 않은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이니 프라이빗 온천은 비어있겠다 싶었다. 


빙고.

 

프라이빗 온천탕 중 오른쪽에 있는 구역. 왼쪽에 있는 방은 실내에 네모 난 탕이 있고, 여기는 노천이다. [출처: 아침이라 잠 덜 깬 iphone XS]


이곳에는 두 개의 프라이빗 온천탕이 있는데 이날 아침에 간 곳은 노천탕이었다. 더군다나 아침의 쌀쌀한 기운이 더욱 노천탕의 진가를 살리는 듯했다. 

나는 간혹 어르신들이 목욕탕에서 앓는 소리도 하고 시조도 읊고 하는 걸 이해를 못했는데, 이날 나는 깨달았다. 허리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시원함 때문에 나는 자칫 비명을 지를 뻔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꼭 해 봐도 괜찮을 경험이었다. 세상 신선놀음이라. 



아침 조식과 낮의 정원 풍경. [풍경은 아름답지만 찍는 손이 아름답지 않다며 투덜대는 iphone XS]


나는 일부러 조식을 추가했다. 필시 아침 먹을 곳이 마땅치 않을 거라 예상했고, 료칸 정식을 한 번 더 체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어제 저녁과는 또 다른, 보다 가벼운 느낌의 조식이 차려졌다. 그중에서도 모찌리토후일 거라고 생각했던 하얀 떡같은 음식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계란을 아주 살짝 삶은 것이었다. 터질 것 같으면서도 안 터지는 절묘함이 대단했다. 정말 상상 이상의 방법으로 요리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료칸에서 주는 유카타를 입고 뜰로 나와 금붕어를 구경했다. 이녀석들은 수년간 단련되어 왔는지, 인기척만 느꼈는데도 무서운 속도로 저 멀리서 쪼르르 헤험쳐 모였다. 모습이 슬쩍 보이면 먹이를 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무료로 잉어 먹이를 줄 수가 있다. 10여 알을 뿌려 주다가 저 멀리 작은 치어들이 끼지 못하는 것 같아 일부러 멀리 던져 주었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 나오자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어차피 역까지 5분도 안 걸리니까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한번 타 보기로 했다. 역시 왕의 대접은 끝까지 누려야지 싶었다. 므헤헤헤. 그렇게 왕 체험을 종료했다. 


서민이 되어 돗토리역으로 쫓겨난 왕은 그새 거렁뱅이처럼 허기가 져 떠나기 전에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부랴부랴 찾기 시작한다. 11시에 시작한다는 라멘집에 10분 전부터 밖에서 서성이면서 각을 보다가 조금 민폐짓으로 슬쩍 머리를 비집고 열었냐고 물어봤다. 안에서 기다리란다. 예스. 


라멘 힌마(らーめんひんま)는 정말 간단하게 라멘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라멘집이다. 특이점이라면 여기도 여기 나름대로 신기한 메뉴를 판다는 점이고, 밥이 무한 리필인 점이 또 매력인 것 같다. 소유 라멘을 시켰는데 맛은 보통 수준이었다. 사실 밥의 퀄리티보다도 나는 열차 시간 안에 세이프만 하면 되었기에 이점을 어필하며 사정사정했더니 정말 냅다 만들어 주셨다. 여기는 한국인 손님도 많이 오다 보니 본인이 직접 한국어를 찾아서 한국어 메뉴판도 만들었다고 한다. 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좋은 곳 같다. 횡단보도 타이밍만 잘 맞으면 역에서 3분이면 간다.   


라멘 힌마(らーめんひんま) 내부사진. 국물이 친절하고 사장님이 무한리필이며 밥이 진하다. [출처: 열차 놓칠까 초조한 iphone XS]


나는 전날 돗토리 마쓰에 패스 3일권이 만료가 되었기 때문에 따로 승차권을 사야 했다. 역에 들어가면 한쪽 구석에 표를 사는 창구가 안쪽에 마련되어 있다. 거기에서 원하는 역을 말하고 가장 빠른 표를 사면 된다. 앞서 소개한 JapanTransit 앱에서 미리 검색하여 알아 둔 열차 이름을 말하며 표를 샀다. 


이름하야, 슈퍼 마쓰카제 5호! 


거의 뭐, 슈퍼 히어로나 우주 발사 로켓 이름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여기 특급 열차들은 다들 이런 네이밍인가 싶다. 우리나라의 '무궁화 호, 새마을 호'처럼 토속적이고 뭉글뭉글한 맛은 없다. 여기 열차들은 당장에 어디 쳐들어가서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해 갖고 지구를 지킬 것만 같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실상 달리는 폼이 빠르다기 보다는 개를 스킵하니까 특급인 같다. 그래도 40분 이상은 더 빠르니까.   


요나고 공항행 버스와 요나고 공항 내부 모습. [출처: 집이다! 집에 간다! iphone XS]


요나고 역에 도착해서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공항에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아주 일찍 도착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조금 여유롭게 가기 위해서 열차와 버스 중에 뭐가 빠를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요나고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끝까지 가면 정면에 버스표를 파는 건물이 있다. 여기에서 표를 사고 번호에 맞게 가서 기다리면 된다. 내가 기다린 곳은 아마 7번이었을 것이다. 10~20분을 기다리자 만화 캐릭터가 잔뜩 그려진 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던 같다. 


다이센 산의 모습. 왼쪽부터 버스에서,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찍은 모습. 멀리서 봐도 만년설의 모습이 잘 보인다. [출처: 졸고 있는 iphone XS]


사실 도착하면서 계속 신경 쓰였던 거대한 산이 있었는데, 이 산은 '다이센 산(大山)'이라 한다. 한자명이 이렇게 심플한 것도 참 재밌었다. 큰 산! 와! 

돗토리 서부쪽의 옛날 이름이 '호키'여서 '호키후지'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요나고 쪽에서 바라보면 후지산과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렇다 한다. 차만 있었다면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을 정도로 웅장해 보였다. 마치 제주도 갔을 때 멀리서 한라산이 보이는 느낌이려나. 


공항에 도착하니 역으로 한국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다들 도착해서 어디어디 갈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공항 내부에는 작은 피아노가 있었는데, 어린 아이가 어떤 이름 모를 곡을 쳐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 보니 어느덧 출국 절차가 시작됐다. 


이륙한 뒤에 저 멀리 보이는 다이센 산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또한 아련한 추억이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이이이이이이이씨이이이이이이이이이 휴가가 끝났드아아아아아아아아아 ㅠㅠ 망했어망했어망했어망했어돌아가기 싫어 으아아가아가가가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여태까지 여행했던 패턴과는 전혀 다른 탠션으로 기획하고 다녀 온 돗토리 여행. 그지에서 왕까지, 여유 제 1원칙으로 다녀온 여행은 망할 거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많이 망하지는 않았다. 급하게 짠 여행 치고는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온 느낌이 컸다. 다만 아쉬웠다면 사전 조사가 조금 더 잘 이루어졌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돗토리 여행을 기획하는 당신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1. 직항 비행기 편 날짜가 고정되어 있다. 원하는 요일에 갈 수 없을지 모르니 감안해야 한다. 


2. 열차 대기 시간이 극악이다. 우리나라처럼 3~5분이면 오는 지하철을 생각해선 안 된다. 15~30분 배차 간격인 중앙선과도 비비지 마라. 전철 개념이 아니라 열차 개념이기 때문에 약 1시간 간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정확한 시간 체크를 위해 JapanTransit앱 같은 것을 미리 설치하고 동선을 계획해야 한다. 


3. 차가 있는 지인이 있다면 영혼을 꺼내서라도 섭외하라. 


4. 돗토리 사구는 볼 만하다. 


5.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번화가 느낌을 기대한다면 오사카나 교토로 갈 것.


6. 돗토리시와 요나고시 사이에 온천 에리어가 있다. 온천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온천마을에 가 보길 추천한다. 물론 나는 못 가 봐서 오늘도 땅을 치고 후회 중이다. 


7. 맛집 투어도 괜찮을 것으로 보이지만 교통편이 녹록치 않다. 계획 잘 짜야겠다. 




무엇보다도, 한적하고 사람 없는 곳에서 여유를 즐기기에 참 좋은 곳. 늘 똑같은 일본이 지겹다면 꼭 가 보라.


끗.





*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돗토리와 가까운 이시카와 현에서 7.6지진이 났다고 하여 가슴이 아프다. 다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진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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