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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un 01. 2024

청년 감성 퓨전 마약 치즈 떡볶이 달빛 야시장 포차 2

허수 판독기가 되어야 하는 골치아픈 세상

최근에 모 유튜버가 수능 대비 학원 등에 쳐들어가서 대학 합격권에 가까운 '실수'와 거리가 먼 '허수'를 가리는 콘텐츠를 보면서 참 재미있게 잘 풀었다는 생각을 했다. '감별' 콘텐츠는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흥미롭게 다가온다. 어떤 것이 진짜일까. 내 생각은 이런데 전문가의 생각과 일치할까. 그러면서 그런 나의 생각과 판단조차 감별하는 멋지고 무서운 콘텐츠.


앞선 1편에서 소개한 내 오랜 친구 '참치맨'이 만약 유튜브를 한다면 식당 감별만큼은 정말 기가막히게 할 것이다. 나는 그와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하다못해 점심 한끼를 하려고 치면 40분 정도는 그 동네를 이잡듯이 둘러보는 것이 거의 루틴이 되어 있었다. 


"여기 괜찮은 것 같은데?"

"음....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좀만 더 둘러보자."


이러고 5분을 더 걸어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내면,


"여기는 어때? 사람들도 꽤 있고 가격도 괜찮네."

"음, 아냐, 저어어기까지만 더 가 보고."


여기에서 모질게 "대충 먹자 쫌!" 이렇게 끊어 본 적은 별로 없다. 결국 좋은 곳 찾아 들어가서 합리적으로 맛있는 것을 먹고 나오니까. 공복인 덕분도 있겠지만 크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본업이 요리라서 그다지 태클을 걸기에도 뭐하다. 


이렇게 식전 산책은 괴롭지만 일치하는 가치관이 있다. '맛없고 드릅게 비싸기만 한 것을 먹으면 짜증난다'는 대원칙이 우리의 공감대와 유대감을 굳건히 다지고 있으니 말해 뭐하나. 요즘은 나이 들어 좀 덜 까다로워졌지만 나름 허수를 가려 가며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 




4. 마약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정말 몇몇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를 접하면 놀람과 실망을 겪는다고 한다. 정말 마약이 들어 있는 줄 알고 대마라도 섞었나 싶어 먹었다가 그냥 양호하게 맛있는 코리안 푸드라는 것을 알고 안심을 하면서 마음 한켠으로는 실망을 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러다가 태국에서 대마가 합법화되자 정말로 음식이나 음료수, 과자에다가 대마를 섞는 것을 보고 "와, 이게 진짜지?"라고 내뱉고 말았다. 얘네는 진짜로 넣어버렸네.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 특징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를 음식 메뉴 이름에 넣기 시작하자 정말 한 때 홍대 거리 간판에는 '마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술집에 있는 메뉴에는 이 단어가 계속해서 등장했다. 술과 친한 사람이라면 교회, PC방보다 더 자주 보는 단어가 아마 마약일 것이다. 


요즘들어 한국에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정적인 이 '마약'이라는 단어를 음식점 이름이나 음식 이름에 못 쓰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쌩뚱맞게 '진짜 마약'이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약 청정국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마약 소비국이 된 것을 보면 영화 '극한직업'에서 신하균이 역할을 맡았던 이무배의 대사가 정말 현실화된 것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교육원에 오는 학생들이 잠깐 출국했다가 다시 한국 돌아올 때 요즘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출입국에서 보다 빡세게 마약 단속을 하기 위해서 유학생들도 빡세게 잡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약 유통을 할 때 유학생들을 통해 많이들 한다고 하니 우리 학생들 괴롭힌다고 무작정 불평할 수도 없다. 


여럿 불편하게 만드는 마약이 한 때는 정말 하찮은 안주 메뉴 이름에 줄곧 올라갔었다니. 그때는 가끔 이런 메뉴를 어쩔 수 없이 시켜 먹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이야.... 이딴 맛에 마약이면 도대체 얘네들이 생각하는 마약은 뭐 담배 한 개비 정도 되는 건가.'


5. 치즈


사실 음식에서 치즈만큼 치트키가 또 있나 싶다. 예전에 알바하던 술집에서는 파전 위에 모짜렐라치즈를 듬뿍 뿌려서 오픈에 넣었다 나갔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안주에는 '치즈 옵션'이 있었다. 치즈 파전, 치즈 닭갈비, 치즈 떢볶이 등등. 앞서 언급한 '퓨전' 키워드와 더불어 거의 모든 음식에 치즈가 들어가자 나는 가끔 생각하곤 했다. 이러다 일 끝나고 새벽에 국밥집에 밥먹으러 갔는데 '치즈 순대국'이라도 나오면 정말 끔찍하겠다. 


치즈를 참 좋아했던 나도 치즈가 조금 무서웠던 계기가 있었다. 어떤 뉴스에서 진짜 치즈와 '뭔가'를 섞은 가짜 치즈를 비교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는데, 그때 이후로 한 동안 치즈 섞은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치즈 퐁듀? 어후. 


외국에는 치즈가 참 종류별로 많았다. 맛도 다양하고 식상하지 않았다는 점이 참 좋았다. 우리나라도 치즈가 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6. 떡볶이


떡볶이에는 개인적으로 참 안 좋은 추억이 있는데, 그래서 넣은 키워드는 아니다. 이 음식도 워낙 다양한 버전이 나왔었기에 넣어 봤다. 기필코 그렇다. 


사실 술 한창 먹던 시즌에 3차쯤 되면 문 연 곳도 별로 없고, 아무 술집이나 가면 항상 떡볶이 메뉴가 있었다. 포차의 떡볶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레토르트 냄새 폴폴 풍기는 무미건조한 떡볶이. 하지만 다행히 맛을 온전히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냥 자주 보여서 짜증이 났던 것일 수도 있다. 


떡볶이는 사실 정말 딥한 음식이라 생각한다. 종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름 연구하고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시도해 봤다는 반증일 것이다. 나름 저렴하다는 인식 때문에 가성비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한국 대표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맛도 챙겨야 하겠다. 하지만 아직도 메인 메뉴 사이에 끼어 넣는 경우가 있어서 솔직히 보기 싫다. 


공들여 메인 반열에 올린 메뉴가 맛이 없는 경우도 있다. 난 이런 집은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앞선 키워드 '치즈'와 같이 올라왔다가 본전도 못 찾는다. 아니 왜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을 무려 두 개나 섞었는데 맛이 없지? 그래서 생각한다. 얘네들도 그냥 남들 다 하니까 끼워 넣어진 애들인가. 결국 그런건가.


7. 달빛


달과 관련된 것에는 보통 'Luna'라는 단어를 쓰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Lunatic'이라고 했을 때 달과 관련된, 뭔가 낭만적인 느낌의 단어라고 추측하며 알고 있었는데.... '미치광이, 광기'라는 뜻이란다. 오, 이런... 아마 보름달을 보면 변하는 늑대인간이라든지 주로 밤에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는 옛날 이야기, 전설 등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굳이 옛날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홍대 길거리에도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술에 쩔어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상통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와는 별개로 달빛은 은은하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 오밤 중에는 영감이 충만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달빛하면 우리는 몽환, 낭만 그리고 더 나아가 로맨스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기에 수많은 주점들이 간판에 초승달이나 보름달을 달아놓고, 가게 이름에 달빛을 넣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달을 숭배하는 것마냥 비슷비슷한 간판들이 들어서는 것자체가 일종의 광기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막상 들어가 보면 감성 충만한 플레이팅에 가격 또한 광기여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8. 야시장


조금 오래 전에 친구가 일하는 바에 가 보려고 녹사평 역에서 내린 적이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는 와중에 내려다 보이는 이태원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뭔놈의 야시장이 그리도 많던지. 내가 처음 경험해 본 야시장은 홍대에 '동경야시장'이라는 매장이었다. 당시에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간단하게 한잔 할 수 있는 훌륭한 곳이었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흠이긴 했지만 그 시간대에 가성비는 나쁘지 않았다. 이 야시장이 시리즈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날 이태원에는 국가별 야시장 시리즈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 국가의 이 도시에 야시장이 실제로 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조합도 눈에 띄었다. 


여행 경험이 있는, 또는 여행지에서 여행뽕을 최대로 자극할 만한 의외의 키워드가 '야시장'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땅, 노지에 아무렇게나 다닥다닥 들어선 테이블에서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여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느끼며 한잔 하는 맥주는 솔직히 기가 막히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수많은 OO야시장 시리즈는 '야시장이고 싶은' 가게일 뿐이었다. 영리한 마케팅이었지만 그만큼 허수인 가게도 많았던 시리즈.


9. 포차


야시장과 이 '포차'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가성비와 탁 트인 공간일 것이다. 거의 함께 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근처 포차에서 2, 3차를 간단히 하고 막차를 타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가볍게 즐길 만한 곳이었다. 그러다 유명한 포차를 찾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포차에는 뭐가 맛있다더라. 어디가 제일 싸다더라. 


번듯하게 부동산 임대차계약을 하고 실내에서 차리는 술집에도 '포차'라는 이름을 달고 장사하는 분들이 어느 순간 늘기 시작했다. 메뉴는 같았지만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시절도 이제는 7~8년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이 '포차'라는 이름 앞에 '청년 감성 퓨전 마약 치즈 떡볶이 달빛'이라는 전혀 조합이 안 될 만한 친구들이 어깨동무하며 안주 퀄은 떨어뜨리고 가격만 높여 주머니를 털어갔다. 나는 사장님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불같이 타올랐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한국에서 유독 심한 '유행병'에 헛웃음이 나오고 마는 것이다.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모르지만 요즘도 꾸준히 떠오르는 키워드는 돌고 돈다. 사람들은 '흔해 빠진' 것을 싫어하기에 나만 알고 싶은 가게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유니크하다고 생각이 들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고, 입소문탄 그 가게의 어느 특징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리즈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 시리즈는 다시 '흔해 빠진'것이 되어버린다. 


예전만큼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술약속이 잡히면 또 다시 깊은 고뇌에 빠지고, 검색 삼매경에 빠진다. 옛날에는 검색창에 '맛집' 대신에 '존나'라고 검색하면 꽤나 괜찮은 곳을 찾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안 먹힌다. 요즘은 전체적으로 음식 퀄이 올라가서 왠만하면 실패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씁쓸하게 계산을 마치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만다. '아이고, 반갑다 허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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