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강릉에서 지낸 첫날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by 중현

‘삐삐 삐삐삐~ 삐빅~! 탈칵!’

도어록 앞에 서서 부동산 사장님이 알려준 번호를 누르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집안은 한 달 전 계약할 때 본 모습과 변함없다. 반쯤 열린 방문, 텅 빈 공간, 소나무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바다까지 전부 그대로다. 하얀색으로 도배한 벽지만이 그동안 시간이 흘렀음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와~ 우리 집이다~ 우리 집!!”

옆에 있던 새미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신발을 신은 채 거실 안쪽까지 성큼성큼 걸어간다. 오늘은 정식 입주일 전날. 이삿짐이 도착하기에 앞서 집 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싶어 하루 일찍 왔다. 물론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말이다. 쪼그려 앉아 가볍게 바닥을 스윽 훑었다. 그러자 손끝에 싯누런 먼지가 한가득 묻어난다. 이전 임차인이 이사한 지 3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집안 곳곳에 먼지가 쌓인 것이리라.

“여보야, 이 먼지 봐봐.”

“꺄~ 더러워! 우리 어서 청소하자.”

우선 새미가 청소기로 바닥에 깔린 먼지를 빨아들였다. 거실부터 시작해 안방, 옷방, 손님방, 그리고 문틀 사이에 쌓인 먼지를 모조리 청소했다. 다음은 내 차례.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를 밀대로 쓱싹쓱싹 바닥을 밀고 다녔다. 거실의 절반 즈음 밀었을까? 청소포 한쪽 온통 검은 때로 뒤덮였다. 방향을 돌려 반대편으로 다시금 닦는다. 쉴 새 없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자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직 4월인데 이렇게 땀이 날 줄이야.


그러고 보니 귀국해서 집안 청소를 한 적이 있었을까? 아마 나서서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나 혼자 요리, 청소, 빨래 등 알아서 해야 했지만, 귀국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산 이후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무 데나 옷가지를 어질러 놓은 내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님이 호되게 꾸짖기도 했다. 그만큼 청소에 신경을 안 쏟고 지냈었다.

게으름쟁이인 나도 새미랑 함께 신혼집을 마련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가짐이 달라진 걸까? 도착하자마자 나서서 청소도구를 꺼내 거실을 청소하는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왠지 모르게 신난다. 바닥을 다 닦자 먼지에 가린 도배장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형광등 빛이 바닥에 비치는 듯하다. 아이고, 뿌듯해라. 다음으로 창틀 쪽 베란다로 향했다. 창틀 사이에 낀 먼지는 청소기가 들어가기 어려워 물티슈를 써서 직접 닦았다. 그런데 먼지가 눌어붙었는지 좀처럼 안 떼어진다. 특히 이음매 사이에 있는 때는 더 어려웠다. 손톱 끝을 활용해 긁어도 보고, 송곳처럼 얇고 뾰족한 물건에다 물티슈를 갖다 대 스윽하고 긋기도 했다. 조금씩이지만 묵은 때가 떨어져 나간다. 청소를 시작한 지 3시간여 지났을까? 시곗바늘을 보자 어느덧 9시를 가리켰다.

‘꼬르륵’ 소리가 뱃속에 울린다. 그러고 보니 점심 이후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다. 위장에서 밥 좀 달라며 아우성 칠만 하다. 다만 저녁 먹으러 나가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 하는 수 없이 배달 어플을 켜서 메뉴를 골라본다. “어디 보자 역시 늦은 시간에는 치킨인가? 교촌이 가까운데 반반 어때? “ 어플로 주문한 다음 청소도구를 거실 한쪽에 모아 놓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치킨도 좋긴 한데 굶주린 배를 만족시키기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슬리퍼를 신고 근처 편의점에서 두루치기 컵밥과 맥주 4캔을 사 집으로 왔다. 곧이어 ‘딩동~ 딩동~’ 하고 벨소리가 울렸다. 치킨이다!

배달 기사님께 음식을 받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아뿔싸!’ 식탁이 없다. 식탁은 2~3일 후에나 도착할 예정인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바닥에 신문지 깔고 먹어야 하나.’ 안절부절 거실을 서성이다가 우연히 청소기 박스에 시선이 닿았다.

“아하! 이걸 식탁으로 쓰면 되겠네! 크기도 딱이고 좋을 것 같아!!”

청소기 박스에 테이프를 감은 다음 한 바퀴 뒤집어 상을 만들었다. 가볍게 두드리거나 흔들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높이도 단단함도 둘 다 합격점이다. 이제 밥을 먹을 수 있겠어. 상 위로 치킨과 컵밥을 올린 다음 맥주 캔을 땄다. ‘딱! 푸슈우우우우’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건배를 했다. 꿀꺽꿀꺽 “캬아~ 이 맛이지!!” 하루 동안 바쁘게 보낸 시간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치킨 조각을 베어 문 후 서로 고생했다며 다시 한번 잔을 부딪힌다.


스무 살 때 나는 후에 강원도에서 살게 되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상상도 못 했을 터이다. 당시 나는 군 입대를 코 앞에 두고, 또 전역한 후에는 일본으로 유학 갈 생각으로 꽉 차 있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한국으로 귀국해 부모님 고향 가까운 곳에서 자리를 틀 줄이야.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말이다. 삶은 참 한치 앞길도 모른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제 막 시작한 강릉 생활. 이 또한 언제 또 뒤바뀔 수도 있겠지만, 흐르는 파도의 물결 따라 몸을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잊을 수 없는 강릉의 첫날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