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첫 출근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by 중현

새미는 이틀 전 처갓집으로 돌아갔다. 혹시 부부 싸움하다 홧김에 집을 박차고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아쉽게도(?) 아니다. 야탑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새미는 앞으로 반년 동안 기존의 상담 일을 마칠 때까지 매주 야탑과 강릉을 오간다. 인수인계하고 곧바로 강릉으로 올 수도 있지만, 갑자기 담당 상담사를 바꾸면 내담자 입장에서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적응하기도 어렵고 다시 처음부터 관계를 쌓는 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같은 상황까지 고려한 새미는 내담자가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인수인계하고 싶어 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겠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그렇다면 믿고 기다려야지.


오늘은 카페 첫 출근 날. 새 장소에서 새 직업으로 첫 발을 내딛는 중요한 날이다. 사장님은 오픈 시간인 8시 30분까지 오라고 했지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일찍부터 준비하고 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다 비운 식기를 싱크대 안에 내려놓는다. 안방에서 거실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걸어오다, 새끼손톱만 한 거미 한 마리가 벽을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했다. '오오 꽤 큰데?’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 거미를 보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었지? 꿈이 아닌 현실 세계였지만 집 안에서 거미를 발견하다니, 괜스레 기분이 들뜬다. 출근 첫날부터 복이 들어오려는 조짐일까?


오전 7시 40분,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집에서 매장까지 거리는 약 4km. 자동차로 10분 만에 갈 정도로 가깝지만 자가용은 새미가 타고 야탑으로 갔다. 하는 수 없이 어플을 켜 택시를 호출한다. 곧바로 진동이 울릴 줄 알았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어?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이 부근에 택시가 없다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액정 화면을 바라본다. 잠시 꺼림칙한 기분이 스쳐 지나간다. 아니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불안함을 애써 누르며 다시 한번 카카오 택시를 호출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아파트 단지를 내려오는 내내 앱이 조용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대로변으로 나와 주위로 둘러보자 아니나 다를까, 돌아다니는 택시가 없다. 그뿐이랴, 자동차 자체의 이동도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데. 동네 자체가 조용하고 한산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순두부 마을로 유명한 동네라 금방 잡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토록 적을 줄이야.

“2분 거리에서 택시를 호출 중입니다.”

“3분 거리에서 택시를 호출 중입니다.”

“5분 거리에서 택시를 호출 중입니다.”

“10분 거리에서 택시를 호출 중입니다.”


3~4번 더 눌러봐도 여전히 반응이 없다. 오늘따라 유독 택시가 안 잡히는 걸까? 아니면 시스템상 오류인 걸까?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올 낌새가 없고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구한 일자리인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야 한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로변으로 나가서 택시를 탈까? 유동량이 많은 만큼 택시도 돌아다닐 거야’ 그래! 강릉대로 쪽으로 나가자. 생각과 동시에 강릉대로 방면으로 몸을 돌렸다.


시간은 어느새 8시가 가까워졌다. 하지만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내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지나다니는 택시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빈 택시를 찾을 수 없었다. 한 대 두 대 초록색 불빛을 켠 택시가 빠르게 지나치는 모습을 보면서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도리어 이곳은 해변가와 너무 가까워 잡기가 힘든 것이다. 첫날부터 지각하는 상황을 그려본다. 최악이다. 마지막으로 달리기라는 수단을 고민해 본다. ‘첫날부터 땀범벅으로 출근하는 건 정말 싫은데…’ 가급적 최후의 수단은 안 쓰고 싶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잰걸음으로 안목 방향을 향해 걸었다


8시 정각, 안목 해변으로 향하는 회전교차로에 서서 뒤를 돌아본다. 끝내 택시는 못 잡았다. 이제 택시는 기대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꿇어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인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매장까지 거리는 약 3km. 달려서 오픈 전까지 도착해야 한다. 가방을 짊어진 데다 운동화를 신었지만 뛰는 데는 문제없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 왼발부터 내딛는다.

“후우후우... 하아하아...”


왼쪽으로 자동차들이 쌩쌩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나는 자동차 도로 옆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뛰었다.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가며 지면을 박찼다. 호흡을 가다듬을 새 없이 페이스를 올려 뛰었다. 차분하고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며. 왼손으로 가방끈을 잡아 흔들림을 최소화했다. 자전거 도로는 널찍해서 뛰기 편하다. 힐끗힐끗 시계를 보면서 페이스를 확인한다. 1km 기준 평균 속도 5분 30초. 이대로 라면 8시 20~25분 사이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중에 신호등에서 대기할 수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다른 생각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10분 즈음 지나자, 드디어 안목 사거리가 보였다. 신호등에서 잠시 대기 후 초록색 불이 켜지자마자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후아후아-' 페이스를 올렸다. 연달아 거친 숨을 내뱉는다. 매장에 가까워질수록 페이스가 올라간다. 300미터 200미터 그리고 100미터, 마침내 도착했다! 매장 오픈 시간 5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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