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2부)
사람은 살면서 직장을 몇 번 바꿀까? 국내외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근속 기간은 5.9년이라 한다. 의외였다. 우리나라 사회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갈망이 높아 일본처럼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일본의 평균 근속 년수는 12.1년이다). 그런데 도리어 자본주의의 본진인 미국과 엇비슷한 줄이야(미국의 평균 근속 년수는 4.2년이다). 미국처럼 경력을 쌓아 이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평생직장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지는 듯하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개개인의 이직 활동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참고로 내 이직 활동은 이번이 세 번 째다. 도쿄에서 4년, 서울에서 약 2년 그리고 세 번 째는 이곳 강릉에서. 앞으로 나는 이 같은 이직 흐름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며 살아갈까?
내가 일하는 카페는 안목 해변 커피거리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정문을 기준으로 1시 방향에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터미널이 있으며, 11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해안가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꼽으라면 단연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다. 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바다를 마주한다. 출근길 해안가 도로를 운전하면서, 점심거리를 사러 편의점을 갈 때도, 퇴근하기 위해 유니폼을 갈아입으러 옥상으로 올라갈 때도, 강릉에서 산 지 이제 겨우 한 달이지만 바다를 보는 일은 이미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오늘 아침은 연푸른 하늘과 줄무늬 모양의 구름이 나를 맞이한다. 곧이어 가슴을 시원하게 적시는 파도 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이주하기 전 로스앤젤레스(LA)의 베니스 비치로 놀러 간 적이 있다. 당시 해변의 청년들이 보며 참 너 나할 것 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중학생 즈음 앳된 얼굴의 학생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모습, 시멘트 벽에 그래비티 하는 흑인 청년, 손님이 줄은 선 와중에도 결코 느긋함을 잃지 않는 스타벅스 직원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그린대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2달 후에 내가 그들처럼 삶을 살아갈 줄이야. 이제는 그들의 영혼이 그토록 자유로웠는지 알 것 같았다.
안목까지 출근할 때는 항상 소나무 숲에 둘러 쌓인 해안 도로를 이용한다. 그 옆의 2차선 도로를 타면 더 빨리 도착하지만 해안도로를 고집하는 건 운전하는 내내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700년 동안 꼿꼿이 자리를 지켜온 해송 숲길을 지나면 왼쪽으로 넘실넘실 파도치는 바다가 보인다.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으면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바다의 모습을 감상한다. 그때마다 바다는 다른 색깔을 비친다.
"왠지 평소보다 바다가 짙푸르네?!"
"오늘은 하늘색보다 더 연해 보이는데??"
"저기 봐봐, 바다 앞 쪽은 연녹색이고 그 너머는 파랗게 보여!! 먼 곳은 수심이 깊어서 그런가 봐."
바다색이 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수심에 따라 햇빛의 반사 각도에 따라 대기 중 습도 차 그리고 밀물과 썰물에 의해서 수시로 바뀐다. 같은 장소임에도 아침과 밤의 바다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리라. 특히 강릉 바다는 유난히 연녹색을 띤다. 어느 기사에서 산호초로 인해 생성된 식물성 플랑크톤이 연녹색 바다를 만들어 낸다고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강릉 앞바다에 산호초가 많이 분포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직접 들어가 본 적도 없고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을 테니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뿐이다.
바쁜 시간대가 지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해변가에 서서 가만히 파도가 몰아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우르릉~ 쾅! 우르릉~쾅!'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씻겨 내려가듯 시원하게 밀려온다. 파도가 거센 날은 마치 천둥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수면 위로 솟구친 물결이 하강하면서 해수면과 부딪힐 때 내는 소리이다. '우르릉~ 콰아앙!' 처음에는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파도 소리에만 귀 기울였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시원하고 청량하던지.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잔잔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날이다. 주위가 조용하자 오늘따라 유난히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해가 저문 저녁,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평소처럼 2층 홀을 정리하는데 서울의 러닝 동호회에서 알고 지낸 동생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리 매장 모습이 찍혀있는 게 아니겠는가? 깜짝 놀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매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동생이 삼십여 미터 앞에서 두 팔 벌려 우리 가게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이고, 준태야. 이게 어쩐 일이야? 연락 좀 하고 오지! “
“아~ 형 마침 평창에서 연구원 보고회 하고 있어서요. 바다 보면서 머리도 식힐 겸 팀원이랑 같이 왔어요.”
“아 그랬어? 팀원들은 안 보이는데?”
“지금 바다 보고 있어요. 연락했으니 곧 이쪽으로 올 거예요.”
강릉으로 온 이후 반대로 주위 사람들한테서 연락을 받는 횟수가 늘었다. 안부 연락에 그치지 않고 직접 우리가 있는 곳까지 찾아온다. 평창, 속초, 동해에서 하룻밤 묵다가 우리가 있는 강릉까지 시간내서 와 주는 것이다. 사실 이주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걱정은 인간관계였다. 거리가 멀면 만나는 횟수도 연락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그로 인해 친구들과 사이도 소원해지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횟수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반대로 강릉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보다 진솔한 대화를 나눌 때가 많다. 여행지라서 그들의 마음이 풀어졌기 때문일까?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오롯이 그에게 집중했기 때문일까? 덕분에 평소에 말하지 않는 깊숙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안심했다. 우리의 목표는 앞으로도 주위 사람들과 친목을 다져가야는 것, 친구들과 은은하고 긴 우정을 이어가는 것이다. 가게 앞에서 준태와 이야기하는데 그의 팀원들이 하나 둘 가게로 다가온다. 문을 열어 매장 안으로 안내한다. '모처럼 동생이 놀러 왔는데 서비스 줘야지. 뭘로 줄까. 커피빵? 아이스크림?' 준태에게 음료 주문을 받으며 머릿속으로 무얼 선물하면 좋아할지 고민해 본다. 소소하고 소중한 인연이 흐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