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꽃 피는 봄, 강릉은 지금 송홧가루 계절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2부)

by 중현

사락

책장 위 탁상 달력에 손을 뻗어 다음 장으로 넘긴다. 5월이다. 꽃샘추위로 몸을 바싹 움츠린 식물도 날이 따뜻해지자 하나 둘 잎을 틔운다. 새소리 또한 분주하다. 이른 아침부터 뒷산에 사는 멧비둘기의 지저귐이 동네방네 울려 퍼진다. 앞으로 바다, 뒤로 산이 위치한 우리 집은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위치해서 항상 서늘하다. 이주 초기에는 대청소를 한다며 앞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더랬다. 처음엔 시원하고 좋았지만 하루 종일 바람을 맞다 보니 결국 우리 둘 다 봄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톡톡히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봄을 기다린 건 비단 우리뿐만이 아닌가 보다. 나무들의 가지 끝에서 연녹색 새순이 돋아나고, 아파트 입구에 자리한 아카시아 나무도 앞다투어 꽃을 피운다. 그 향기가 어찌나 달콤하고 은은하던지. 자동차로 돌아다닐 때마다 창문을 열고 다닐 정도였다. 또 어느 날은 새미와 동네를 산책하던 중 길가에 흰 알갱이처럼 생긴 꽃을 발견했다. 수국처럼 동그랗게 모여 있는데 알알이는 더 작다. 사진을 찍어 검색했더니 당근 꽃이란다. '아니, 당근에 꽃이 피다니?!!' 주홍빛 채소의 형태로만 봐 와서 꽃을 피울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강릉에서 지냈기에 알 수 있었겠지. 서울이었다면 다른 것에 시간과 노력을 쏟을 여유 따윈 없을 테니 말이다. ‘어? 그 말은 즉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천천히 생활하고 있다는 말인 걸까?’


평소처럼 매장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새미가 차를 몰고 안목해변으로 왔다. 일을 마친 내가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자 새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말이다.

"여보, 저기 좀 봐. 하늘이 노랗고 뿌예"

"응? 뿌였다고? 파란 하늘밖에 안 보이는데 어디가??"

"조금 더 아래쪽을 봐봐. 모래사장 바로 위에 부분, 왜인지 흐릿하고 뿌였지 않아?"

새미 말대로다. 모래사장 위로 누렇고 뿌연 무언가가 떠다닌다. 하지만 이상하다. 미세먼지나 황사라면 더 광범위하게 퍼져야 하는데 말이다. 다른 곳은 전부 푸른 하늘 그대로고 모래사장 위에 국지적으로만 누런 상태였다. 둘이서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현상이 없었다. '저게 뭘까?' 결국 집까지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해답은 다음날 풀렸다. 매장 직원들에게 어제 본 바닷가의 현상을 이야기하자 그 수수께끼 현상에 대해 곧바로 알려준 것이다.

"아, 그거 송화 가루예요. 보시다시피 강릉에는 소나무가 많잖아요? 매년 5월 초부터 한창 꽃가루가 날릴 시기이거든요. 혹시 단지 내 바닥을 본 적 있나요? 콘크리트 틈새 사이로 노란색 가루들이 있지 않았나요? 그거 전부 송화 가루예요. 지금부터 시작해서 한 달 내내 가루가 날릴 거예요. 잘못하면 가루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답답하더라도 베란다 창문은 닫아두는 편이 좋아요."


'아, 그 노란 게 전부 송화 가루였구나. 모래사장 위 허공이 누렇고 뿌연 이유가 바로 꽃가루 때문이었구나.' 비로소 궁금증이 해결됐다. 그런데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고 이내 깨달았다.' 출근할 때 집안 환기한다고 앞뒤 베란다 열어 놓고 왔는데... 아이고야'

일을 마친 후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거실 바닥과 베란다는 이미 송화가루가 한 바탕 휩쓸고 간 상태였다. 검지로 바닥을 훍자 누리끼리한 송화 가루가 묻어 나왔다.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걸 언제 다 쓸고 닦지?!” 또다시 환경의 적응할 틈도 없이 톡톡히 신고식을 치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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