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3부)
"죄송합니다. 연장 없이 1월 1일까지 일하겠습니다."
개인 면담 자리에서 계약 연장 거부 의사를 밝히자 대표님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미 내가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대표님은 나를 붙잡기보다 덕담을 건네주셨다. 코로나 상황인 만큼 새로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고, 하지만 잘해 보라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업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찾아본 건 장소 물색이었다. 일반 카페와 달리 우리 공간에는 내담자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개별 상담실이 필요했다. 분리된 공간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 중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선 분리된 공간을 찾아보고 정 없다면 한 공간 안에서 파티션을 치거나 가벽을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 방음이 잘 안 되겠지. 가급적 그 방향으로 안 가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찾아다녔다.
장소는 초당으로 정했다. 초당으로 가게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2가지. 우리가 이 동네를 좋아한다는 점과, 또 우리가 강릉에서 가장 잘 아는 지역이 초당이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정보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 인구 유동성을 중심으로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활발히 돌아다녀야 매장으로 올 손님도 많아지니까 말이다. 맞는 말이다. 현욱 씨 또한 포남동이나 시내처럼 인구 유동이 많은 곳을 추천했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해보는 창업을 단지 유동성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섰다. 매출 잠재력이 덜 높아도, 사람들이 왕성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아는 동네에서 천천히 시작하고 싶었다.
알맞은 장소를 찾고 또 찾았다. 2주쯤 지나자 적당해 보이는 매물이 나왔다. 곧장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해 매장 내부를 보고 싶다고 전했다. 전에 동네 산책하다가 눈여겨본 장소였다. 가게는 편의점 옆에 위치해 10평 정도였다. 1층인데도 불구하고 월세가 저렴했다. 그런데 실제로 가게 안을 살펴보자 예상보다 공간이 너무 작았다. 우리는 카페에 책에 상담 공간까지 필요한데, 이곳은 카페 운영만으로도 꽉 찰 정도였다. 고개를 저으며 아쉬워하자 부동산 사장님께서 다음 매물을 안내해 주시겠다고 했다.
'네? 인터넷에 나온 매물은 이곳뿐이었는데? 또 어떤 정보를 가지고 계신 걸까?!' 사장님은 의아해하는 우리를 향해 근처에 북카페 하기 딱 알맞은 곳이 있으니 보고 가라고 말하셨다. 다만 2층에 위치해서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띈다는 말을 덧붙였다. 골목길을 돌아 어느 상가 건물 2층에 다다랐다. 1층에는 족발집 그리고 무인 슈퍼마켓이 시공 중이고, 2층에는 수학 영어 학원이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2층 전부 매장을 운영하거나 공사 중인 상태였다. 매물이 있을만한 공간이 없어 보였다. 설마 뒤에 있나?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건물을 살펴보자, 사장님께서 검지 손가락으로 2층 왼쪽에 구석진 공간을 가리켰다. "임대 공간은 저 끝에 있어요."
바깥에서는 유리창 2개만 보여서 내부 공간도 똑같이 좁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니 밖에서 본 이미지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널찍했다. 게다가 공간이 3개로 분리돼 있었다. '어떻게 3개로 분리된 임대 공간이 존재하는 걸까?' 부동산 사장님께 연유를 묻자 수년 전 상가 건물의 아내 분이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공간이었다고. 그래서 피아노 레슨 공간, 접수 공간, 원장실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상가 사장님네가 운영했다면 가능하지. 사장님 말에 납득하며 각각의 공간을 어떻게 쓸지 구상했다. 들어서는 입구는 카페 주문대, 왼쪽으로는 북카페 공간,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상담실 이렇게 운영할 수 있을 듯했다. 새미도 마음에 들었는지 사장님께 이것저것 질문했다. 우리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우리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이곳뿐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주일 후. 부동산에서 상가 사장님께 임대 계약 의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가계약금을 보냈다. 임대 시기는 2021년 1월부터 5년으로 잡았다. 부동산 사장님이 중간에서 조율해 주신 덕분에 시공 기간을 3주 정도 잡을 수 있었다. 1월 한 달 동안 공사를 진행하면 2월에는 오픈할 수 있겠지? 매장 도면을 그려가며 어떤 식으로 공간을 꾸밀지 구상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상상 속으로만 그리던 우리 매장을 갖게 된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꾸며질까? 하루빨리 2021년이 다가오길. 기대에 잔뜩 부풀어 오른 연말이었다.
상가건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