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창업 결심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3부)

by 중현

강릉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줄곧 품고 다녔다. 새미를 만나기 전, 나 혼자 산다면 얼마만큼 자금을 모으고 어떠한 생활을 영위해갈지 대략적으로나마 계획을 세웠더랬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오면 실행으로 옮길 참이었는데 그때 경제활동으로 생각한 수단이 바로 '중고 책방'이었다.


2017년 가을 서점에서 서가를 둘러보던 중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란 책에 눈길이 갔다. 강릉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기 때문이었을까?! 진열대에서 한 권 집어 내용을 살폈다. 책은 도쿄 이케부쿠로의 준쿠도라는 대형 서점에서 일하는 저자 우다 도모코 씨가 오키나와 지점으로 전근 간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준쿠도 이케부쿠로 지점이라.' 어학교를 다닐 때부터 종종 들렀던 서점을 책에서 보니 새삼 반가웠다. 도쿄에서 지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오키나와 지점으로 자진해서 간 저자는 그 후 2년간 매장 운영에 매진한다. 그리고 파견 기간이 끝나갈 무렵 퇴사하고 오키나와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 넘치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곳에 아예 정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설시장 한편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헌책방 '울랄라(ウララ)'를 연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고 포근했다. 군데군데 작가님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담겨 있어 읽는 내내 킥킥하고 웃었다. 도중에 '탁' 하고 책을 덮은 다음 곧바로 계산대로 가 구매했다. 오래전부터 내가 꿈꾸던 세계가 책 안에 담겨 있었다. '바로 이웃나라에 나와 비슷한 꿈을 실현한 존재가 있을 줄이야. 어쩌면 나도 가능할지 몰라.'


새미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우리도 각자 능력을 살려 운영하면 좋겠다. 오빠는 좋아하는 책을 다루고 나는 한쪽에서 상담실을 운영하는 식으로 말이야."라며 까르르 웃었다. 그래 맞아. 우다 도모코 씨처럼 우리도 각자 능력을 살려 공간을 꾸미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새미는 건너편 방에서 아동, 청소년 상담을 운영하는 식으로 말이다. 왠지 꼭 불가능만은 아닌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걸리는 점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창업이라는 벽. 나나 새미나 지금껏 어느 회사나 센터에 소속돼 일해왔지, 직접 대표가 되어 사업을 꾸려나간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번역가를 전업으로 삼는 날이 오면 그때 모든 일은 스스로 책임지겠지 하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왔다. 내 나이 서른 중반. 누군가의 우산 아래서 비를 피할지 아니면 직접 우산을 들어야 할지 결정할 시기였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누군가 조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니 안심시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창업이라는 막막한 벽을 깨부숴줄 그런 사람이 말이다.


오죽헌 근처에서 '데자뷰 로스터리'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현욱 씨는 우리가 강릉으로 이주 오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다. 우연히 방문한 커피숍에서 따뜻하게 환대해주는 그를 보며 '저희가 강릉으로 이주하게 되면 인사드리러 올게요.' 하고 말하고 나왔다. 현욱 씨와 우리는 그 일을 계기로 2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서점 일에 지쳐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현욱 씨가 걱정 섞인 말투로 말을 건넸다. "중현 씨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새미 씨도요" "네, 요즘 좀 힘드네요." 우리 이야기를 들은 현욱 씨는 바쁜 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방법도 있다며 넌지시 창업을 권했다. "두 분이 가진 능력이라면 가게를 차리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 후로도 현욱 씨는 몇 번이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힘내라고. 어떠한 판단을 내리든 잘 해낼 거라고.' 말이다.


'창업'이라는 단어에 압도된 나머지 처음엔 현욱 씨의 말이 귀에 안 들어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그 단어를 곱씹고 가늠하고, 또 새미랑 대화를 나누면서 차츰 벽을 허물어 갔다. 한 사람이라도 지지해주는 이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미지의 영역이라 주저하며 손사래 쳤는데, 마음속으로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용기가 샘솟았다. 새미도 나를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결심을 굳혔다. '그래 한 번 도전해보자. 창업이라는 분야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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