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피곤한 나날, 예민해지는 신경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3부)

by 중현

"손님, 책 이렇게 뒤집어 놓고 가시면 안 되세요!"

"죄송하지만 환불 문의는 구매 후 7일 이내의 책에 한해서만 가능합니다. "

"아니, 제가 빵이랑 음료 나갈 때 물티슈 빠트리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잖아요."


그동안 나는 서점에서 일하면서 손님을 향해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응대해 왔다. 이따금 당황스러운 요구사항을 문의하는 손님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가급적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다. 거슬렸다 못해 미워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내게 문의가 들어와도 시큰둥하게 대꾸할뿐더러 급기야 실수 한 손님을 향해서는 짜증을 내며 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동료 직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매장 규칙을 어긴 직원을 발견하면 다가가서 왜 매뉴얼대로 안 했는지 다짜고짜 따졌다. 그동안 내 최고의 강점은 안정감이라 생각했다. 누가 뭐라 하든 욱하지 않고, 뒷말도 안 한채 묵묵히 내 할 일 해 나가는 것. 그랬는데 지금은 마치 누가 건들기만 하면 터질듯한 시한폭탄처럼 변해 버렸다. 나를 향한 직원들의 거북한 시선이 쏟아졌다. '재는 도대체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거야?!' 나도 매일 치솟는 화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새미가 나를 말렸다. '평소와 달리 예민한 상태이니 바로바로 감정을 표출하지 말고 차분하게 정리한 후에 행동해보자고.'말이다. 새미의 말에 따르면서 속으로 곱씹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거지? 나도 모르는 새 미쳐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시간을 거슬러 약 반년 전부터 일들을 회상했다.


3월 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직원이 일을 그만뒀다. 개인적인 이유였다. 다른 부서도 아닌 같은 도서 담당이 빠진 것이다. 둘이서 해야 할 일을 혼자 도맡아야 했기에 타격이 컸다. 원래대로라면 빠진만큼 인원을 채워야 했으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새 직원을 채용하기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았다. 서점 직원의 일은 실로 다양하다. 도서 주문, 도서 수령, 매입 작업, 반품 작업, 책 홍보, 기획, 작가와 미팅, 입고 문의 대응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떠올려도 이 정도였다. 게다가 점장님과 함께 시청, 도서관, 학교에 납품할 도서도 많아지면서 담당해야 할 업무가 크게 늘었다.


봄에는 여차저차 버틸만했다. 하지만 성수기인 여름이 다가오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일주일에 2~3번, 책 6~7박스씩 물류센터에서 가져와 밴딩을 풀고 입고 작업을 진행했다. 평소에는 2층 사무실에서 진행하지만 1층 직원이 도움을 요청하면 곧장 내려가 카페 일을 돕는다. 가끔은 인원이 부족해 1층에서 매입 작업을 하기도 한다. 카페 일 보며 동시에 책 매입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당연히 서가에 책을 진열하는 시간이 늦춰졌다. 매입 외에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들어온 책에 대한 홍보도 하고, 기획도 새로 짜야하며, 새로 들어온 메일도 살펴야 했다. 게다가 대표님과 따로 회의까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직원들과 말 한마디 안 섞는 날도 종종 생겼다.


날이 갈수록 여유가 없어지고 그에 비례해 피로가 쌓여갔다. 신경이 곤두서고 날카로워졌다. 마침 예민해질 때 사람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책갈피가 없어 그대로 책을 뒤집어 놓은 채로 화장실로 향하는 손님, 도서 구매 후 일주일 지난 시점에 환불하러 오는 손님, 그리고 책에 기름이 묻지 않도록 음료와 빵이 나갈 때 물티슈도 같이 넣어야 하는데 그걸 까먹은 동료 직원. 결국 쌓이고 싸여 폭발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번역 일까지 맡았다.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일본어 능력을 살려 번역가가 되는 게 꿈인 나는 종종 일본어 번역회사에 지원했고 종종 일감을 따냈다. 글을 다루는 건 재밌었다. 하지만 서점 일과 병행하다 보니 피로가 켜켜이 쌓였다. 번역 일감이 있을 때는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작업했다. 잠을 못 잔 스트레스 때문에 두피 곳곳에 여드름이 생겼다. 피곤함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서점 일과 번역 작업,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욕심을 부린 탓일까. 둘 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서점에서도 전보다 업무에 소홀해졌다며 대표님과 점장님께 한 소리 들었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속상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눈치 보며 하다 보니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일하고 싶었다.


마침 대표님과 계약 기간 연장 여부에 대한 일정이 잡혀있었다. 정규직 계약 종료는 내년 1월 1일까지 였다. 앞으로 2개월이 남은 시점. 계약 연장을 할까, 아니면 내 일을 새로 꾸려볼까? 마음속에서 자꾸 그만두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전 09화34) 선자령까지 금방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