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귀국 여행기
“한국 올 거면 영주권까지 따고 들어 와.”
지난겨울, 부모님 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을 때였다. 다가오는 봄에는 모든 짐을 정리하고 귀국하겠다고 전하자 아버지는 아직은 이르다며 몇 년 더 일본에 남으라고 말하셨다. 곧 있으면 집으로 돌아간다며 한껏 기대에 부푼 내게, 아버지의 단 한 마디 말로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은 채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돌연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일었다. ‘또야 또!’라고.
아버지는 매번 이런 식이다. 대학교를 재학하는 동안 농촌으로 봉사활동 갈 때도, 마라톤을 취미로 삼을 때도 그랬다. ‘도움도 안 되는 활동을 뭣하려 하냐. 공부랑 일이 중요하지 지금 다른 데 한눈팔 때냐.’라고 트집을 잡으며 걸핏하면 내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나는 내가 느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가족과 공유하고 싶을 뿐인데, 아버지 눈에는 그 모습이 심히 불안해 보였나 보다. 내가 튀는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으려 했다. 이번 귀국 이야기도 일본에서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로 인해 돌아갈 결심을 세웠는지에 대해서, 아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현실 상황에 따라 조언해 주었을 뿐이다.
실리만을 놓고 보면 아버지의 말이 옳다. 영주권을 따 두면 몇 년마다 비자를 갱신할 필요가 없어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이직도 자유롭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창업도 가능하다. 체류 비자를 지녔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주권을 순조롭게 취득할 때의 이야기이다. 영주권을 신청하려면 일본에서 10년 이상 거주해야 하며 동시에 일본에서의 재직 경력이 5년(납세 증명) 이상 필요한데, 조건이 부합한다 해서 반드시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본 법무성에서는 교통위반 범칙금과 세금 납부 등을 꼼꼼히 살피면서 발행 여부를 엄격하게 따진다. 실제로 대학교 선배님들이나 주변의 한국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10년 보다 더 걸린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1년 더 일한다 해도 영주권이 나올지 어떨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쿄에서 9년을 지내면서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동안 혼자서 잘 버텨왔으나, 이제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라톤이나 등산 같은 자기 계발도 좋고 업무 성과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동안 차디찬 허허벌판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영주권이 아닌 온기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 터놓고 지낼만한 따뜻한 공간 말이다. 일은 한국에서도 금방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사항으로 삼았다. 식탁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들어 아버지께 답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요.”라고.
도로 길은 평탄했다. 오전에 드문드문 내린 비도 그쳐서 날이 갠 상태. 혹여나 젖은 곳이 있을까 봐 기어를 두 단계 정도 내려 천천히 달렸다. 나는 지금 요코하마 방면으로 향하는 중이다. 지금 지나는 칸나나도오리(環七通り)는 예전에 요코하마 사무실에서 일할 때 이따금 다녔던 거리이다. 종종 영업용 자동차를 몰고 가와사키, 후타고 타마가와 부근에서 일하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그대로 집으로 퇴근했다. 그곳을 이제는 반대로 거슬러 내려간다. 마음속으로 이유 모를 아쉬움과 시원 섭섭한 마음이 동시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전날 과음한 탓인지 페달의 무게가 버겁다. 몸 또한 엉기적엉기적 천근만근처럼 무겁다. 숙취의 영향도 있고 패니어에 한가득 짐을 실어서인지 평소보다 속도가 더디다. 패니어 한쪽에 티셔츠, 조끼 타이즈, 양말, 팬티를 싣고, 반대쪽에도 책과 수첩 연필, 화이트보드, 생일 선물로 받은 향수와 세면도구 등을 넣었기 때문이다. 남는 게 시간이라 넉넉하게 채워 넣었는데 아무래도 좀 과한 듯했다. 1시간 넘도록 칸나나도오리를 지나다가 카미우마(上馬)에서 왼쪽 246번 국도 방향으로 길을 꺾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도츠카구(戸塚区)에서 살고 있는 두현이네 집. 내비게이션이 246번 국도로 향하는 편이 목적지까지 더 빨리 도착한다고 해서 선택했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평온하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하나 둘 산책하러 거리로 나와 있다. 마스크를 쓴 사람도 드문드문 보인다. 아마도 꽃가루 알레르기(花粉症) 때문에 쓴 것일까?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유모차를 끌고 옷가게와 잡화점을 다니는 부모님들, 맛집 앞에 줄을 선 사람들, 벚꽃 아래에서 같이 사진 찍는 커플 등 언제나와 같은 주말 풍경이다. 그중에 노란색 자전거와 패니어를 찬 어느 자전거 여행자에게 시선을 향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저마다의 일로 바쁘다. 나 역시 그렇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널찍한 국도보다 좁고 골목길이 자주 나온다. 자연히 헤매는 횟수도 늘어난다. ‘이쪽 골목으로 가면 될까? 아니네, 다음번 골목이었어.’ ‘다음 골목에서 왼쪽으로 돌면 되겠지? 아! 공사 중이야 더 돌아가야 해 이런!’ ‘반대 차선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주위에 육교만 있을 줄이야? 할 수 없이 직접 끌고 가야지 뭐.’ 숙취는 없어졌지만 자전거는 여전히 무거웠다. 아마 패니어에 가득 실은 짐 때문이리라. 짐들의 무게는 자연스럽게 다리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피로가 쌓였는지 왼쪽 정강이 뒷부분이 움찔거렸다. 조금 전 큰 오르막길 하나를 넘었는데, 그때 무리하게 밟아서 그런 걸까?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다독였다. 여행 첫날이라 주행 거리를 50km 정도로 짧게 잡았는데, 다행히 지금 내 컨디션에는 딱이었다. 오후 1시에 출발한 지 7시 무렵에 두현이가 알려준 집 앞에 다다랐다. 6시간 만에 도착. 여행 첫날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