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은 아니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by 권건후

지난 주말 1박 2일로 친구들을 만났다. 수십 년을 이어온 모임이지만, 이번에는 문득 예전과는 다른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일단 저녁 술병이 현저하게 줄었고, 자기주장이 강하게 난무하던 젊은 시절의 소란이 사라졌다. 논쟁이 아닌 절제되어 이어지는 담담한 대화가 우리의 성숙을 말한다. 담대한 주제가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것이 얘깃거리가 된다. 삶에 대해서 많이 겸손해졌다. 점잖아 보인다. 제법 어른처럼 보인다. 거울 속 잔주름이 익숙한 그 나이가 되었다.


십여 년 전 모임은 펜션이나 민박에서 부어라 마셔라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밤늦게까지 멈추기 어려웠다. 이제는 밤 11시 전에 호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그 시절은 MT처럼 큰 방 몇 개에 남자 방, 여자 방으로 나눴는데 이제는 부부마다 방을 배정받는 호텔로 변모했다. 어제는 무궁화 4개 호텔로. 나이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변했을 텐데 변한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공무원 퇴직 준비 중이거나 퇴직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친구, 해외 근무지에서 일시 귀국한 친구, 그냥저냥 회사원인 나 같은 친구. 지금은 부부만 참석하지만, 예전에는 애들까지 가족 단위로 참석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자라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만난다. 오래전부터 부부 동반을 큰 목소리로 외치는 친구가 있어 거의 시행령이 되었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 벌금까지 부과하던 시절도 있었다. 솔직히 그 친구가 공처가인지 애처가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이런 친구 덕에 수십 년 모임이 유지 되어왔다. 모임이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통기타를 즐기는 친구 덕분에 펜션이나 휴양림이 노래방이 되기도 했다. 낯선 투숙객의 합석과 합창이 자연스럽던 시절도 있었다. 공연 아닌 공연이 되면서 술 취한 옆 테이블에서 팁을 받기도 했으니. 지금의 잣대로 보면 무례한 소란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밤은 조금 더 낭만적이고 너그러웠다.


모임은 같은 학번 같은 학과. 같은 동네 자취라는 공통점으로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자취방 근처 마트 평상에서 막걸리와 민주화를 안주로 새벽까지 떠들던 청춘이 있었다. 시끄럽다는 주변의 꾸지람에 조용히 집으로 흩어지던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기억은 항상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질지는 몰랐다. 어쩌면 이런 게 짐작하거나 다짐할 일도 아니긴 하다. 그저 물 흐르듯 시간이 흘러왔다.


젊은 시절, 동종업계 공무원이었고 건설회사, 설계회사 또는 감리회사의 엔지니어였다. 20, 30대 직장생활 속에서 가끔 만나는 모임이 휴식이 아니었을까. 남에게 들키지 않고 꼿꼿이 지탱하는 자기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다른 친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개인의 삶이 이렇게 변했듯이 우리 세대도 변화의 중심에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건방진 세대가 우리라고 한다. 통계적으로 부모와 자식보다 학력과 경제력이 나은 세대. 자녀에게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하고, 후배에게는 설명이라는 이름으로 훈시한다. 절제하려고 다짐해도 고쳐지지 않는 불치병 같다.

386세대로 시작하여 686세대로 태권 브이처럼 변신 중이다. 훈련소 입대 전부터 화생방 교육을 받았고, 민주화를 갈구하던 1980년대를 20대로 보냈다. 요즘 세대를 보면 억울함이 없는 어른이어야 한다.

세상만사 일장일단(一長一短), 공과(功過)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존한다. 잘못이라고 지적받아도 억울해 말고 반성하고 수용하는 어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MZ 취업 문제를 접하면 행운의 시대를 살아왔다. 감사하고 겸손할 일이다.


사회 통념은 우리를 어른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진정한 어른은 아직 아니다. 우리 사회에 수십 년을 참여하고 간섭하고 저항하며 관계했다. 그래서 사회 문제의 절반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기도 하다.

주변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 원망하던 젊은이가 이제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바라던 어른의 모습과 나는 얼마나 닮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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