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공학으로 태어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물도, 식물도 예외가 아니다. 음악이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존재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그 역사가 겨우 백여 년 남짓이다. 개인의 스트레스는 때로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 일정한 수위를 넘어서면 우울증이나 자살, 범죄로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트레스 관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이 나에게 닥치면 우리는 쉽게 길을 잃는다. 때로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깊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보통 마음의 문제로 생각한다. 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이 말은 사실 사람보다 먼저 무생물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라틴어 stringere에서 유래했다. 눌림, 압박, 팽팽한 긴장 상태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학문 용어로 자리 잡은 곳은 심리학이 아니라 응용역학이었다. 정신의학에서의 스트레스는 1936년 한스 셀리에가 생리적 긴장 상태를 설명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반면 공학에서의 응력(stress)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17세기부터 개념이 등장했고,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에 의해 수학적으로 정립되었다.
응용역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 즉 응력은 간단하다.
물체에 외력이 작용할 때 그 내부에 발생하는 단위 면적당 힘이다. 콘크리트 기둥에도, 교량의 강재에도 이 힘은 존재한다.
공식은 단순하다.
σ = F / A
외부의 힘이 클수록 응력은 커지고, 그 힘을 받는 면적이 넓을수록 응력은 작아진다.
응력(應力, stress)이라는 한글 용어는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 19세기말 조선이 혼란과 격변을 겪던 시기,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서양 학문은 일본을 통해 들여왔다. 토목공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stress라는 단어도 일본에서 ‘應力’으로 번역된 뒤 우리에게 전해졌다.
흥미로운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음의 문제로 사용하는 ‘스트레스’라는 말이 사실은 물체의 힘을 설명하던 공학 용어였다는 사실.
가끔 나는 이 단순한 공식을 삶에 대입해 본다. 응력은 힘에 비례하고 면적에 반비례한다. 외부의 힘 F는 내가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세상은 늘 예상하지 못한 힘을 우리에게 가한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하나다. 면적 A를 넓히는 것. 여기서 면적은 물체의 단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 자신일 것이다. A를 넓히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사색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난다. 운동을 하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친구를 만나고 가족에게 기대기도 한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 된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그래서 해결의 방향도 나에게서 시작된다.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인 내가 의지를 놓아버리면 삶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현실은 공학 공식처럼 냉정하다. 어쩌면 우리 삶은 내가 쓰고 싶은 글처럼 늘 조금은 부족하고 어딘가 불편하다. 스트레스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글을 쓰는 일조차 때로는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긴장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은 과연 행복할까. 스트레스(stress, 應力)는 구조물에도 작용하고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외부 힘이 극한응력을 넘으면 콘크리트 구조물은 파괴된다. 사람 역시 마음의 한계를 넘어서면 무너진다. 응력은 계산하고 관리할 수 있지만 마음의 스트레스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인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 공식을 떠올린다.
σ = F / A
세상의 힘은 줄일 수 없을지라도 마음의 면적은 넓힐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