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
태풍의 영향으로 제법 비가 온다. 회색빛 도시의 작은 상자 같은 원룸 빌라에 나는 산다.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것은 제법 큰 영화 스크린 같은 창문이 고작이다. 난 그 창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그 창을 통해 나는 오늘 억수같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본다. 그리고 반가운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충청도 어느 한 시골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장승처럼 서있었다. 집 주변엔 취향나무와 탱자나무가 서로 어울러져 울타리를 만들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그맣고 허름한 연탄 창고가 있었고, 그 옆엔 하숙방을 데우기 위한 아궁이들이 전봇대처럼 쭉 서 있었다. 그리고 집 중앙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그 주변으로 방들이 빙 둘러서 자리를 잡았다. 각각의 방들을 유일하게 서로 연결시켜주었던 것은 바로 처마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군불로 달궈진 방안에 앉아 처마를 거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스르르 눈이 감겼다.
시골은 온 동네가 나와 내 친구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갈 곳을 잃은 내 친구들은 삼삼오오 우리 집 처마 밑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의하곤 했지만 결국은 같은 놀이를 하곤 했었다. 비를 맞는 것이었다. 강시처럼 비 맞기, 비행기처럼 비 맞기, 자전거 타며 비 맞기, 기차처럼 비 맞기 등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날은 우리 모두 펭귄이 되기로 했다. 먹이를 찾아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는 펭귄. 우리는 펭귄처럼 손을 물갈퀴로 만들었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하나 둘씩 들어갔다. 어린 기억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은 바다 못지않게 신비롭고 스릴이 넘치는 곳이었다. 때론 억수 같은 빗물 때문에 숨쉬기조차 버거웠던 기억이 있다. 먹이 사냥을 마치고 둥지로 돌아오는 펭귄들처럼 우리들도 처마 밑으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저마다 흥분이 가득 찬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흥분의 열기로 인해 젖었던 우리의 몸은 어느새 말라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우리들은 그날 경험한 것을 나누었다. 억수 같은 빗소리가 어색할 정도로 우리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리들은 처마 밑에 모여 이런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며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나에게 처마 밑은 나의 소중한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었다.
오늘도 그때처럼 똑같은 비가 내린다. 영화 스크린 같은 창문을 통해 그때 같이 놀았던 그 녀석들이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떼 지어서 나를 향해 떨어진다. 나는 방문을 열고 계단을 황급히 내려간다. 밖으로 통하는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다. 그리고 두 팔을 날개처럼 핀다. 오늘은 비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