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지리산과 연애했다.
지리산은 난생처음이었다. 2박 3일 종주를 계획했지만 대피소 예약이 힘들어 당일 산행으로 변경했다. 오전 2시 30분에 공주 부모님 집을 나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어머님이 잠이 깨셨다.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일찍 나가?" 걱정이 섞인 말씀을 하시며 "어딜 가는데?" 연달아 걱정을 내뱉으셨다.
"날씨 괜찮은 서울로 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거짓말을 했다.
몰래 조용히 나오려는 나의 의도는 어머니에게 들켰고 난 어머니의 걱정을 가볍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주차해두었던 곳으로 가 차에 시동을 켰다. 칠흑 같진 않았지만 앞에 어두움이 시야를 가려 라이트를 켰다. 라이트 빛 끝에 사람의 물체가 보였다. 어머니였다.
"엄마.. 왜 나오셨어요?" 난 짜증이 섞인 소리를 냈다.
"이거... 배야.. 가서 깎아 먹어..." 어머닌 배 두 개를 봉지에 싸서 들고 오셨다.
"이런 거 안 먹어. 뭐하러 가져왔어." 이른 새벽 어머니의 정성을 어색하게 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가져가." 하시며 조수석 창문 틈으로 넣고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계셨다.
"왜? 얼른 들어가. 엄마.." 난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학교에 온 것과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어머니를 재촉했다. 하지만 어머닌 내 차가 어두운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계셨다. 어머니가 백미러에서 사라지는 순간 어머니의 걱정이 차 뒤에 길게 드리워졌다.
지리산으로의 출발. 이렇게 시작되었다. 공주에서 유성 IC로 진입하여 호남고속도로 지선에 진입하였다. 서대전 JC에서 안영, 산내로 이어지는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를 타다 산내 IC에서 통영 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통영 방향으로 질주했다. 간간히 차들이 보였지만 거의 독주나 다름없었다. 어두움은 빽빽한 정글처럼 짙었으나 자동차 불빛은 정글도를 휘둘르듯 빽빽한 어두움을 거침없이 뚫고 나갔다. 덕유산 즈음 왔을 때 안개가 시작되더니 함양 근처부터 안개가 짙게 끼기 시작했다. 터널을 몇 개 지나쳤는지는 모르겠다. 터널을 통과할 때면 경찰 경광등이 요란하게 움직이고 호루라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운전자의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했지만 너무 유치하게 느껴졌다.
"뻐꾹" "뻐꾹" 어디선가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터라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쫑긋 세워 자세히 들어보았다. "뻐꾹" "뻐꾹" 분명 뻐꾸기 소리였다. 함양터널이었다. 호루라기 소리 대신 뻐꾸기 소리가 나는 터널. 순간 머릿속에 지리산이 들어찬 느낌이 들었다. 상쾌했다. 졸음이 싹 가셨다. 아이디어가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청에 들어서면서부터 약간의 빗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예보에서 말했던 것보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주 적게 비가 내렸다. 이미 많은 대비를 하였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단성 IC를 빠져나와 중산리 쪽으로 차를 힘차게 돌렸다. 구불구불한 도로가 지리산이 지척에 있음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30분 즈음 달려왔을까. 드디어 중산리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 이른 새벽인데도 주차요원이 주차탑에 계셨다. 종일 주차권(5,000원)을 끈고 주차를 했다. 새벽 5시 20분경. 아직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비는 온 데 간데없고 하늘을 보니 구름이 거치며 별들이 맑게 반짝거렸다. 내 눈 앞에 지리산의 별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맞아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오리온자리까지 펼쳐졌다. 5시 30분 장비를 챙기고 산행을 시작했다. 헤드렌턴을 준비하지 못해 플래시는 어깨에 고정시킨 채 어두운 길을 비췄다. 바로 전까지 비가 많이 왔음을 질퍽이는 길을 발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군용 워커를 신었기에 물이든, 돌이든 거칠 것이 없었다. 자신 있게 길 위의 물을 해치며 한 발씩 앞으로 나갔다.
중산리 코스는 거리는 짧지만 아주 힘든 코스라고 들었다. 처음부터 천왕봉까지 계속 올라가야 했다.
지리산 첫 산행, 일출을 보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웠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에서의 일출. 날씨예보는 이런 나의 의지를 무 자르듯 싹둑 잘라버렸다.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난 일출을 맞이하겠다는 계획은 접고 천천히 천왕봉까지 오르겠다는 계획으로 전환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난 새벽 3시가 아닌 5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이 흘렀다. 해가 떴는지 서서히 어두움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 해가 떴다고..." 급하게 머리를 하늘로 향했다.
"이런...." 깊은 한숨과 함께 하늘에서 뭔가 붉은 기운이 보이는 것이었다.
지리산은 이런 곳이었구나. 마음이 급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지리산을 처음 오르는 놈이 그 시간에 일출을 볼 요량으로 마음이 급해진 것이었다.
"오버 페이스, 조심해" 순간 이성이 나에게 귀띔해줬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지."
"정보보단 감을 따를 걸."
"비의 양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산을 오르며 나의 마음은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심장은 증기기관 연기처럼 피를 온몸에 뿜어내기 시작했다. 온몸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무릎이 약간 버거웠다.
쉬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쉬지 않았다. 쉬는 대신에 템포를 늦춰 천천히 한 발씩 한 발씩 올라가기로 했다. 숨이 턱턱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난 절대 쉬지 않았다. 산 아래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순간까지.
마음속에서 서로 다툼을 할 때 난 내가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 누군가를 가져야겠다는 마음, 뭔가 빨리 이루려 했던 욕심들.....
경사가 심해지고 숨이 차 오르면서 난 무장해제 단계에 들어갔다. 머릿속에,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았다. 너무 무거웠다. 다 내려놓고 내가 딛어야 할 발아래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지리산 아래의 풍경이 빽빽했던 나무들 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꺼냈다.
"찰칵찰칵"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쉬는 시간이었다.
해가 새벽하늘에 차 오르더니 운무가 뱀처럼 산 골짜기에 춤을 추었다. 장관이었다. 지리산은 내게 일출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 멋진 운무를 나에게 허락한 것이었다.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네의 춤보다 더 멋진 구름의 춤이었다.
이곳에서 거의 10여분을 쉬었다.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었던 것은 뭔가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였다. 물이나 음식을 먹기 위해 쉰 적은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을 때, 그 순간이 나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지리산은 가슴을 허락하고 부끄러워 숨어버리는 여인네와 같았다. 오늘 나는 지리산과 연애를 하는 기분이었다.
햇살이 나무들 사이사이로 얼굴을 하나둘씩 내밀을 무렵 구름의 군무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 좋은 경치를 뒤로하고 천왕봉을 향해 고단한 무릎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땀은 비 오듯 했고 이미 내 속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겉옷을 하나둘씩 벗어 배낭에 넣기 시작했고 불필요한 장비들 또한 배낭 속으로 들어갔다.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정상이 가까왔음을 주변 골짜기들과 저 멀리 산등성이들이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구름은 지리산 정상 주변을 잠자리처럼 맴돌았고 바람은 살랑살랑 내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흡사 하늘나라로 오르는 계단 같았다. 그 계단의 끝은 분명 천왕봉일 텐데 마치 하늘나라로 갈 것만 같은 착각이 들만 했다.
드디어 천왕봉. 정상이다.
천왕봉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난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구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상 주변으로 구름이 도적처럼 몰려오더니 마치 사냥감을 포위하는 것처럼 빙 둘러쌌다. 그러더니 금세 덮어버렸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구름이 정상 주변을 덮어버린 것은..... 순식간에 사계절을 느끼게 해줄 요량인지 싸늘해지더니 부슬비가 눈발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난 무인도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뿌연 안갯속에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혼자는 아니었다. 대략 20여 명의 사람들이 정상 주변에 모여들었다. 난 천안에서 왔다는 어르신과 지리산 산행 마라톤 도사인 어르신 두 분과 지리산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