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 유년기와 가족

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1

by 글곰

나는 똘똘한 아이였다. 어릴 적에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 머리가 좋다고 판단한 후 미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백과사전이니 전래동화니 세계명작이니 하는 갖가지 전집을 12개월 할부로 매년 한 질씩 사들였다. 당시 넉넉치 않았던 집안 사정을 고려하면 꽤나 과감한 결단이었다. 어린 나는 그렇게 들어온 책들을 죄다 탐욕스럽게 읽어치운 후, 다음해가 되어 새로운 전집이 올 때까지 수십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유치원에서도 나는 여전히 똘똘한 아이였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이해력과 기억력이 좋았다. 유치원 졸업 행사에서 나는 흥부전 연극의 흥부 역할과, 세계 패션쇼의 한국 남자 역할을 함께 맡았다. 단언하건대 그날 유치원 졸업 행사의 주인공은 나였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는 큰아버지가, 부산에서는 고모가, 시골에서는 할머니가, 그 외에도 여러 친인척이 제각기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오셨다. 그리고 졸업 후 나는 축하 선물로 당시 가장 비쌌던 골라이온 로봇 세트를 받았다. 유치원 졸업식은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은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괴이한 일이다. 고작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을 보기 위해 그 많은 친척들이 모여들었다니.


물론 다른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집안 어른의 생신과 겹쳤다든지, 우연히 친척 모임 날짜가 중복되었다든지, 아니면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나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참으로 곤란하게도.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에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증조할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셨다고 한다. 시골 구석에서 주역을 공부하셨고, 뭔가 잘 모를 책도 내셨다고 한다. 작은할아버지는 당신이 어렸던 시절에 증조할아버지를 모시고 서울까지 가서 한문학 전문가인 서울대 교수 모씨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매년 명절마다 반복해서 들려주시곤 했다. 그 외에는 그분의 대단함을 증명할 다른 에피소드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주 듣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정에 따르면, 네 형제 중 장남이었던 할아버지는 집안의 인맥을 죄다 동원하여 서울 모 호텔 공사 현장 함바집 사업권을 따낸 후 온 집안의 재산을 모조리 들이부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말아먹으셨다. 할아버지는 부친인 증조할아버지보다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홧병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직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된 나의 할머니는,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분이라는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동시에 자식 다섯을 건사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종종 어릴 때 술도가에 가서 술지개미를 얻어다가 밥 대신 먹었다거나 혹은 산에 올라가서 땔감을 해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다. 동네 유지쯤 되던 집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덕분에 거지꼴이 되어 버렸지만, 그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자식들을 모두 제대로 키워내셨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내가 태어난 도시로 올라오셨다. 당시 한창 발전하고 있던 공업도시였던 그곳에서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결혼을 하고, 나를 낳고, 나의 동생을 낳고, 다시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아버지는 마침내 독립하여 본인의 조그만 공장을 하나 가진 사장님이 되었다. 직원이 서넛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사장님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집도 단칸 셋방에서 13평짜리 주공아파트로, 그리고 다시 28평짜리 번듯한 아파트로 변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화려하게 번쩍이던 거실 조명등과 아버지의 뿌듯했던 미소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니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친 후 집안의 일을 거들며 동생들을 키워야 했다. 만 나이로 스물셋에 결혼했고 스물넷에 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종종 당신도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면서 살짝 외할아버지를 원망하시곤 했다. 동네에서 꽤나 괜찮은 축에 들었던 외가의 집안 형편을 고려했을 때, 어머니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한 이유는 그저 여자는 중학교까지면 충분하다는 외할아버지의 고루한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있으셨고 아들과 딸이 모두 머리가 좋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아니, 집안의 모두가 기뻐했다.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는 편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