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 집안과 기대

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2

by 글곰

우리 집안은, 다시 말해 나의 친가 쪽 집안은 여러 모로 유교적 가풍이 극심하게 강했다. 명절이면 네 분 할아버지에 속한 자식과 손주들이 사오십 명씩 한데 모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설날에는 세배를 하기 위해 세 줄로 나누어 서야 할 정도였다. 제사나 명절에 빠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일 때마다 그걸 감당해야 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버지가 차남이었으니 원칙대로 하자면 어머니는 큰며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큰아버지의 꽤나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어머니는 본의 아니게 큰며느리 노릇을 해야만 했다. 우리 가족은 매년 명절마다 가장 먼저 시골로 향했고 가장 늦게 돌아왔다. 수십 명의 친척들이 모인 집에서 어머니는 수십 명의 세 끼 식사를 감당해야 했고, 차례상과 제사상을 차려야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대체로 어른들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저마다 하는 이야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요점은 같았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집안을 일으켜 세우거라."


나는 항변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콩알만하지만 어쨌거나 어엿한 공장의 사장님이었다. 큰아버지는 사업이 크게 성공해서 집안에 금고를 두고 사는 부자였다. 그 외에도 큰집에 모인 여러 친척들 중에는 방송사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내 생각에 그분들은 모두 훌륭했고 집안은 이미 다시 일어선 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서울대를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유교적 가풍이란 곧 선비적 가풍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위와 체면과 명예가 중요했다. 사농공상 중 사(士)가 으뜸이듯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에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장손은 아니지만 어머니와 마찬가지 이유로 어쩌다 장손 비슷하게 되어버린 내가 꽤 똘똘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집안의 기대주가 되어 버렸다.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는 건 딱히 좋은 일은 아니다. 기대는 곧 그 사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이다. 그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요령을 터득해야 했다. 예컨대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에 빠져들거나, 혹은 머리를 텅 비운 채로 진지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처에도 한계가 있었다.


집안의 기대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내 어깨에 올려놓여 있었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실존했다. 명절마다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소리 높여 칭찬했고, 누군가는 내가 서울대에 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누군가는 내가 판사가 될 것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내가 교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 안에서 나는 집안을 일으켜 새울 주인공이었고 사회적 명망이 높은 지위에 오를 기대주였다. 오죽했으면 나의 유치원 졸업식을 보기 위해 온 집안 친척들이 전국 팔도에서 모여들 정도였을까. 그런 기대감이 언제나 나를 휘감고 돌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짓눌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기대'란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때는 상관없다. 그러나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추락하는지를 지금의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대는 실망을 부르고, 실망은 좌절을 끄집어내며, 좌절은 우울로 이어진다.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다. 이 악순환이 내 집안 친척들의 잘못은 아니다.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가 맞지 않았고 무언가가 어긋났을 뿐이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대체로 그렇다. 아무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무언가 사건이 터지곤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나가는 덕담에 더 가까웠을 그 기대들이, 어렸던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무겁고 벅찬 아픔이 되어 마음 깊숙한 곳에까지 선명한 흔적을 남긴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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