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 아버지와 회피

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3

by 글곰

나의 아버지. 유교적 가풍이 강한 집안에서도 특히 유교적 성향이 강한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아마도 본인의 직업이 너무 힘들었기에 자식은 몸이 편한 화이트칼라가 되기를 원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머리가 좋았고, 공부를 잘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가 된 국민학교 시절 내 성적은 체육을 제외하고 대부분 수였다. 아버지는 만족해했고, 어머니는 으쓱해했다. 그렇게 집안은 평온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가족을 태우고 차를 달렸다. 목적지는 대체로 박물관이나 문화재였다. 가족 나들이와 학습을 겸한, 아버지 나름의 가족을 아끼는 방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꽤나 과속을 즐겼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나는 그런 나들이가 싫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박물관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도 우리 가족에 큰 변화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숫기가 없고 얌전하며 다소 소심한 축에 드는 아이였다. 친구가 있었지만 수는 적었고 예체능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공부는 대체로 상위권이었고 그런 나를 교사들은 좋아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좋아했다. 그런 나를 집안 사람들은 좋아했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서 3등으로 들어갔는데 체력장에서 깎인 점수를 제외하면 공동 1위였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로, 나는 취미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항상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졌고 시간을 투자했다. 만화를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쓰고, 책을 보고, 게임을 하고,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TRPG에 손을 대고, TCG를 플레이하고, 기타 오만 가지 잡다한 것들에 신경을 기울였다. 반면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항상 소홀히 했다. 그래도 중학교 수준까지는 잘 돌아가는 머리만 믿고 점수를 딸 수 있었지만 보다 심도 있는 공부가 필요한 고등학교 교과의 난이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점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둘째로,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에 IMF위기가 터졌다. 아버지는 본인의 일에 대해 집에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역 공단 대기업에 납품을 해서 먹고 사는 소규모 하청업체의 상황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래부터 앓고 있었던 아버지의 신경성 난청도 부쩍 악화되었다. 아버지는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게 되었고, 급기야 소통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스레 아버지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여러 상황이 악화될수록 그 반대급부로 아들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셋째 변화는 아마도 첫째와 둘째가 결합한 결과였다. 아버지는 나의 시험 점수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내가 집안의 기대를,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점수는 점점 더 떨어졌다. 과거와는 달리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이 점점 더 괴로운 날로 변해갔다.


성적표가 집으로 날아들면 아버지는 온 가족을 안방으로 집합시킨 후 줄담배를 태우면서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수험생의 수와 나의 전국 석차를 계산하고,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대략 80만 명 중 5천등 안에는 들어가야만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게 아버지의 계산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는 긍정적일 때도 있었고 부정적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후자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절망감으로 얼굴을 찌푸렸고, 분노에 차 바닥을 두드렸으며, 자주 고함을 치고 항상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게 꽂힐 때마다 애꿎은 내 동생은 몸을 움츠렸다. 나는 대체로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침묵했다. 시간은 항상 느리고 힘겹게 흘렀다.




가끔 어머니는 조심스레 묻곤 했다.


"너는 왜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입을 다물고만 있니?"


그 질문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부를 못한 것이 잘못은 아닐진대, 내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도 잘못은 아닐진대, 성적표를 받을 때마다 나는 천인공노할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성적에 분노하고 절망했지만 나는 대체 무엇이 내 잘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 때 내가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아버지에게 잘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끊임없는 한숨과 분노보다 좀 더 나은 반응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물고 침묵만을 고수할 따름이었다. 아버지의 신경성 난청이 내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어차피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시니까. 그러나 실상 나는 회피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상황으로부터, 아버지의 분노가 터져나오는 상황으로부터,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황으로부터 나는 도망쳤다.


그리고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어떻게든 대응하는 대신, 종종 침묵하며 도망치곤 한다. 그것이 내 회피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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