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 어머니와 기대

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4

by 글곰

가끔 아버지는 묻곤 했다. 네 성적이 정말로 최선을 다한 결과냐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실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나 나름의 반항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핑계일 뿐 내가 게으른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 한 번, 딱 한 번 아버지에게 호소하듯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저를 칭찬한 게 몇 번인지 아세요? 딱 한 번이에요. 전교 1등 했을 때, 그 때 단 한 번이라고요!"


악을 쓰는 듯한 내 외침에 아버지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아버지를 피하게 되었다. 공부도 마찬가지로 때려치웠다. 대신 여러 가지에 몰두했다. 공부만 아니면 뭐든 좋았다. 밤부터 새벽까지 게임을 한 후 바로 등교했다. 학교에서 오전에는 엎어져 자고 오후에는 무협지와 만화를 읽었다. 시험 성적이 개판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내 고등학생 시절은 의외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괴로운 일은 의식적으로 피하고 즐거운 일만 했으니까.


반대급부로 내 성적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입시에 가장 중요하다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내신에서 내 영어 점수는 가였고 수학은 양이었다. 명절마다 여전히 집안 어른들은 내게 공부 이야기를 꺼냈지만, 과거와는 달리 아버지는 못마땅한 침묵과 찡그림으로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완전히 엇나가지 않았던 건, 내 소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머니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밤 11시까지 학생들을 붙잡아 두었는데 어머니는 중고로 구입한 경차를 몰고 매일 밤 나를 데리러 왔다. 그러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거짓말을 주워섬긴 후 편하게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간식을 내주셨다. 나는 그걸 먹으면서 공부하는 척 시간을 보내다가, 가족들이 모두 잠들면 나는 컴퓨터를 켜고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어머니가 일어나셔서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날 때 컴퓨터를 끄고 자는 척을 했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씩 생각했다. 내가 양심이 있으면 이러면 안 되는게 아닐까 하고.




우리집은 딱히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정해진 생활비를 받아 쓰셨다. 대체로 시장에 가서 장을 보았고 옷은 오래 입었다. 가끔씩 경양식집에 가서 오천 원짜리 돈까스를 먹을 때, 어머니는 천 원을 더 내서 비후까스를 먹을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곤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 당시 많은 부모들이 그러했듯 아들과 딸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딸보다는 아들에게 더 많이 신경을 기울였다.


나는 농구를 하지도 않는 주제에 리복 샤크 농구화를 사 달라고 했고, 집에 점퍼가 있는데도 떡볶이 단추가 달린 코트를 입고 싶다고 했다. 그저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어딘가 조심스레 간직해 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내 소원을 들어 주셨다. 그리고 가끔씩 내 옷을 사야 할 때면 우리가 살던 도시에 하나밖에 없는 조그만 백화점으로 가서 샀다. 어머니의 지론은 옷과 신발은 좋은 걸 사서 오래 신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실 나의 농구화와 코트는 나의 철없는 투정을 어머니가 받아주신 것에 가까웠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기대도 있을진대, 어머니는 나의 기대를 대부분 충족시켜 주셨다.


그건 비단 나에게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기대에 부응하는 데 익숙한 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전형적인 옛날식 주부이기를 원했고 어머니는 그렇게 했다. 집안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맏며느리 역할을 기대했고 어머니는 십분 부응했다. 어른들은 종종 말하곤 했다. 아버지가 결혼을 잘 했다고.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결혼을 잘못 한 게 아니냐고. 명절 때마다 마지막까지 시댁 식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느라 정작 당신의 친정에는 가보지도 못한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처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찾아가지 않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대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어머니에게 있어 아들과 딸은 애정의 대상이자 자랑거리였다. 내가 어릴 때 집에 찾아온 손님들은 아들딸이 공부도 잘 하고 말도 잘 들어서 좋겠다며 인사치레를 하곤 했고, 그 때마다 어머니는 으쓱해지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어머니도 분명 나에 대한 기대가 있을 터였다. 그랬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고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내가 그런 기대를 이미 만족시키고 있다고 여겼다. 그건 흔들림 없는 믿음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한 기특한 아들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내 성적이 꼬라박을 때도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내가 언젠가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흡사 신앙과도 같은 무조건적인 신뢰에 가까웠다.


반면 아버지의 기대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고, 난도가 매우 높았으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마다 치러야 하는 대가는 끔찍했다. 그건 매우 큰 차이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아버지는 화를 내실 테지.

기대에 부응한다고 해도 그저 당연하게 여기실 거고.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머니는 슬퍼하실 테지.

기대에 부응한다면 기뻐하실 거고.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결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갑작스레 다시 공부를 손에 잡기 시작했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학교에서 복도를 걷던 도중 고개를 들자 '수능 D-78'이라고 적혀 있는 판이 보였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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