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나 : 미숙한 어른이 되다

우울증과 나 자신의 이야기 5

by 글곰

그날부터 나는 매일 공부에 매진했다.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모의고사 점수가 가파르게 올랐다. 기초가 형편없이 부실한 영어는 무리였지만, 나머지 과목들은 모두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수능 점수가 잘 나와서 특차를 넣었고 서울대는 아니지만 연고대의 원하는 학부에 들어갔다. 물론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학부였던 덕도 있었다.


집안 어른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집안의 기대주가 서울대를 가지 못했으니까. 드러내 놓고 불만족을 표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아버지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서울대에 가지 못했다는 실망감과,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에 곤두박질쳤던 점수를 감안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기쁨이 합쳐진 모순된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다만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나의 여동생은 나와 세 살 터울이었다. 첫째이자 아들인 나와는 달리 둘째이자 딸이었기에 나만큼 애정이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분명 있었으리라. 하지만 단언하건대 동생은 나보다 여러 모로 나은 사람이었다. 철이 늦게 든 나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빨리 철이 들었고, 중학교 3년 동안 고등학생인 나의 모습을 고스란히 옆에서 보고 들었다. 공부하는 척 딴짓을 하고 있는 나를 기습해서 제발 철 좀 들라고, 어머니의 고생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잔소리하던 사람이 나의 여동생이었다. 그런 여동생을 그 당시에는 싫어했지만 지금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더 공부를 잘 했다. 그래서 내가 서울대 입성에 실패하자 집안 사람들의 관심 일부가 동생에게 쏠렸다. 전부가 쏠리지 않은 건 유교적 가풍이 극심한 집안에서 동생이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서울대가 한 사람은 나와야지. 작은할아버지는 명절에 동생을 보며 그렇게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동생이 남자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고루한 생각이 감춤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남녀를 그토록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작은할아버지의 손주들은 모두 합쳐 1남 6녀였다. 자못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동생에게는 위기였다. 실패한 나 대신 서울대의 기대를 짊어져야 할 처지였다. 아버지는 언제든지 다시 계산기를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나보다 좀 더 현명했고 나라는 반면교사도 이미 있었다. 그래서 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기숙사에 들어갔고 3년 내내 그곳에서 버텼다. 나중의 일이지만 상위 학과는 아니더라도 서울대에 충분히 들어갈 성적이 나왔는데 다른 학교를 선택했다. 내가 동생에 대한 질투심을 품을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시절은 즐거웠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벗어난 나는 자유로웠다. 앤디 듀프레인처럼 드디어 그 모든 기대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나를 향한 기대는 그대로였다. 집안 어른들의 레퍼토리는 그저 약간 변경되었을 뿐이었다. 서울대를 가는 건 실패했고, 법대를 못 갔으니 사법고시는 틀렸고, 대신 행정고시를 쳐서 고위공무원이 되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세워졌다. 물론 내 의사와는 일절 관계없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그럴듯해 보였던지 아버지도 거기에 합류했다. 가끔씩 아버지는 내게 전화해서 영어를 공부하라고 독촉했다. 행시를 치려면 영어가 필수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토플 책까지 구입했다. 그러나 그 책은 고스란히 재활용 쓰레기가 되었고 나는 교양영어 과목에서 F를 받았다.


실상 나는 행시를 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 행시는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반면 7급이나 9급 공무원은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심 진로를 정해놓은 상태였다. 물론 그런 결심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한목소리로 행시를 외치는 집안 사람들 앞에서 하급직 공무원 시험 이야기 따윌 꺼내봤자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서울대에 가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대신 나의 생활은 격렬하기까지 한 놀자판이 되었다. 나는 매일마다 게임을 비롯한 취미생활을 반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암묵적인 분위기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는 제대로 출석하는 것만이 내게 학비와 하숙비를 비롯하여 용돈까지 보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었다. 그 외에는 철저하게 놀았다. 내가 중앙도서관의 위치를 알게 된 건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첫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간 그녀를 짝사랑했고 그게 내 첫사랑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 나는 요령없이 그녀에게 고백했고,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는 내 고백을 받아들였다. 장거리 연애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작은 하숙방과 컴퓨터와 여자친구를 비롯한 모든 걸 가진 대학 초년생이 되었다. 부모님이 피땀을 흘려 번 돈을 성인이 된 내가 기생충처럼 갉아먹고 있다는 현실 인식은 전혀 없었다. 그 시절의 나를 지금 와서 평가하자면 도저히 좋게 말할 수가 없다. 나이는 어른이었지만 내면의 나는 여전히 덜 자란 아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당연하지만 내 첫 연애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나였다. 소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나는 미숙아에 가까웠다. 시험 성적표를 두고 노발대발하는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던 나였다. 불편하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대신 단지 침묵하기를 선택했다. 반면 어머니는 내가 말하는 것을 거진 다 들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설명하는 대신 그저 원하는 것만을 이야기했다.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고, 남을 제대로 설득할 줄 몰랐다. 의사소통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에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 그녀가 내게 작별을 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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