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14
부서장이란 대체로 게을러빠진 존재입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후천적으로 그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게으르다는 건 '생각을 덜 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독립된 구조의 사무실 안에서 제일 높은 존재가 부서장인지라 다른 모든 직원들이 눈치를 봅니다. 심기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지요.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시피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만 한 트럭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해도 면전에서 반박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반면 타당한 말이라면 필요 이상의 찬사를 듣기 마련이지요.
그러다 보니 부서장은 점점 더 자기확신에 빠집니다. 타성에 젖게 되고, 그래서 게을러집니다. 내가 하는 생각이 다 맞는 생각이고, 내가 하는 행동이 다 옳은 행동이라면, 고민 따윌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 간에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조직 내에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관할해야 하는 업무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집니다.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 폭넓은 영역 전체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죠. 그럼에도 부서장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는 이유는 있습니다. 대체로 부서장들이란 남들보다 좀 더 능력이 낫다고 인정받았기에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입니다. 조직 내에서 실패보다는 성공을 더 많이 겪었고, 그 과정에서 내렸던 판단이 틀렸던 때보다는 맞았던 때가 더 많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무의식중에 자신의 판단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런 확신이 때로는 독이 되는 거죠. 으레 해 오던 방식대로 일하려 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대처하려 합니다.
물론 부서장에게 있어 자기확신은 반드시 필요한 미덕입니다. 부서장은 본인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고, 대체로 결정이란 그 옳고 그름만큼이나 신속성 또한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니 자기확신이 없는 사람은 중간관리자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확신이 지나치다면 그건 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충분한 검토와 논의 없이 결정해서 밀어붙이다가 어디선가 미끄러지는 건 너무나도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공무원은 온갖 법령과 규정의 제어를 받는 처지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 부분을 놓치고 지나가면 나중에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요.
물론 인간적인 한계는 엄연히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중간관리자라고 해서 모든 걸 알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특정 업무의 세부적인 사항은 해당 업무의 담당자가 가장 잘 아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부서장이 존재하는 건 첫째로는 그 직원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위함이고, 둘째로는 그 직원이 체크하지 못하고 지나친 부분을 한 번 더 점검해 주기 위함이며, 셋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책임지고 수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부서장은, 하다못해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게을러져서는 안 됩니다. 책임이 있으니 말입니다.
항상 스스로를 의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나를 추켜세우더라도 내 판단과 결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죠. 직원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건 내가 정말로 훌륭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부서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있어서 이 부서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떠받드는 데 대해 다소 편집증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게을러빠진 중간관리자라 해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게을러빠져서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그냥저냥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정년 채우고 행복하게 은퇴하는 중간관리자가 여럿입니다. 그럴지라도 그건 단순히 운의 영역이지요. 내 밥줄을 운에만 맡긴다는 건 너무한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