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41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육 개월 만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분이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움과 안쓰러움이 절반씩 섞인 목소리로 예약을 받아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분은 항상 그랬듯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오랜만이지만 반갑다고 하면 안 되겠다는 재미없는 농담을 건네 왔습니다. 저 역시 대답했습니다. 저도 다시 뵙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물론 진심이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또 오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상태가 좋아지고 약을 완전히 끊은 것으로 해피엔딩, 그걸로 완전히 마무리되었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겁니다. 하지만 삶은 영화나 게임이 아닙니다. 엔딩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은 몇 번이나 되풀이되곤 합니다. 마치 지금처럼 말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원 방문을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제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안 증세는 꽤나 심해졌지만 그게 심한 우울까지 가지는 않았기에, 그럭저럭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략 사흘 전, 글을 읽다가 뭔가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기껏해야 열 줄도 되지 않는 문장들 사이에서 제가 확인하려던 특정 내용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글자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틀 전, 지인 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간 곳에서 저는 자꾸만 다섯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지인들이 의아하게 여기며 말했습니다. 우리 네 명인데요. 그 순간 저는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일 더하기 삼은 사라는 아주 단순한 산수인데도 제 머리가 오답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확실했습니다.
원래 사람들은 겁이 나야 병원에 간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시 복약을 시작했습니다. 과거 효과를 보았던 에스시탈로프람과 벤조디아제핀입니다. 의사분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원래 진정제(벤조디아제핀)를 쓸까 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쓰는 게 낫겠다고 말입니다. 사실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결국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보다 의사의 판단이 훨씬 더 적절할 테니까요.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당분간 술을 못 마시겠네.
저는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을 여럿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걸 실천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더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구른 끝에 지금 자리에 도착해 있습니다. 무척이나 씁쓸한 기분입니다.
반 년 전에 올린 글을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우스꽝스럽게도 '우울증 졸업'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더군요. 피식 쓴웃음이 났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나 보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저는, 지금의 저 자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지요. 본문은 읽지 않고 그냥 창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 제목을 붙였습니다. 저 나름대로의 블랙 유머입니다.
다시 반 년이 지나고 나면, 그 때의 저는 어떤 처지에 있을까요.
지금보다 좀 더 나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