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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pr 02. 2023

런던 런던 런던

이 도시는 나에게는 모든 게 마지막 시간이다

    남은 내 인생에서 아마도 영국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국은 멀게 느껴지는 나라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 런던, 어제 밤늦게 도착하여 좀 피곤했지만 동트기 전 일어나서 런닝으로 런던의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6시 반, 런던 타워는 어둠을 벗으며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1066년 노르만 왕조 초대 왕이 되어 강력한 영국을 만든 윌리엄1세가 만들었다는 요새 런던 타워는 템즈강을 끼고 있으며 넓이가 7ha로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넓다. 198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런던을 찾는 방문객이 가장 먼저 찾는 명소다.

런던 타워

    두 발로 어둠을 걷으며 런던 타워를 돌아 달렸다. 아침 제법 찬 기운이 느껴졌지만 지금 달리고 있는 이곳이 런던이라는 사실에 템즈강의 강바람조차 부드럽게 다가온다. 해외에 나가면 도착 다음날은 런닝으로 그 도시의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마라톤을 시작한 50대 초부터 이어온 나의 좋은 습관이다. 특히 처음 닿는 도시에서 십몇 킬로미터를 뛰며 도시 전체를 미리 느낀다는 것은 달리기를 통해 나만이 얻을 수 있는 뿌듯함이다. 도시의 첫인상을 두 발로 달리며 느낀다는 건 일반적인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뭐랄까 이른 아침 도시 전체를 내가 소유했다는 뿌듯함? 아무도 없는 거리를 내가 먼저 밟으며 아침을 연다는 행복감?

이렇게 달릴 때 기록은 필요 없다. 눈에 더 많은 걸 담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달리며 런던 타워 앞의 타워브릿지로 향했다.

타워브릿지

    1894년 만들어진 이 다리는 빅토리아식 개폐식 다리인데 런던 템즈강에 놓여있는 수많은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 산업혁명으로 도시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배로 이곳 템즈강을 건넜다고 한다. 나는 타워브릿지를 건너며 템즈강에 넋을 잃고

잠시 달리기를 멈췄다. 너무 빨리 달리면 아름다운 이 모습들을 놓칠 거 같았다. 이곳은 런던이다. 언제 다시 와 보겠는가.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곳이 내 시간에는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맘이 울컥해진다. 어느새 어둠은 걷혔다. 감상에 젖어 있는 나를 두고 많은 런던 달리미들이 지나쳐 달렸다. 그들은 매일 이곳을 달리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앞만 보고 달렸다. 나도 모르게 내 두 발은 그들과 동행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런던 도시의 아침 출근길

     타워브릿지를 돌아와 런던 타워를 지나쳐 도로가를 달렸다.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적했다. 런던은 템즈강을 따라 달리는 길이 한강처럼 쭉 이어져있지는 않다. 그래서 강변을 달리다 도로가를 달려야 했다. 한적한 도로가는 빠르게 달렸다. 다시 강변에 접어들었다. 조금 천천히 달렸다. 강변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감성을 맘에 새기기 위해서다. 어느덧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이제 두 다리와 몸이 충분히 예열이 되었다는 뜻이다. 조금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어 천천히 달리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

워스터민스터 사원이 앞에 보였다. 커다란 종루가 빅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빅벤

   맞은편 강변으로 달리기 위해 다리를 건너 달리기 시작했다. 런던의 명물 2층 버스가 출근길을 달리고 있다. 가까이 보이는 런던아이는 런던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듯 큰 원형을 뽐내고 있고.

이층버스와 런던아이
달리미 김쫑

    강변을 끼고 달리다 강변에 인접한 건물이 있으면 강변길은 거기서 멈추고 가까운 도로가로 나와 달려야 했다. 어찌 보면 템즈강변은 강과 삶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템즈강변의 경치

   이제 템즈강변을 완전히 벗어났다. 목적지인 푸트니브릿지까지는 강변에서 조금 떨어져서 도로가를 달렸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서는 강변의 달리는 길이 길게 이어져있지 않아 인접한 도로가를 달리며 런던의 아침 일상을 두 눈에 담았다.

아침 정원

    어디나 아침은 분주하다. 아침은 희망이기에 활기차다. 거리에 활력이 느껴졌다. 나의 두 발은 10km를 넘기고 있었다. 목적지인 푸트니브릿지 까지는 아직 7km이 남았다. 조금 숨이 찼지만 이 정도는 한국에서 늘 뛰는 거리다. 런던의 아침 상쾌함이 더하니 기분이 좋아 두 발이 달리기를 재촉하는 듯하다.

런던의 아침 출근길

    하나둘 가게 문이 열리고 스쳐보며 빠르게 지나쳤다. 달리는 맘이 즐거우니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달리는 것이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달리는 데 목적은 없다. 두 발로 뛰며 몸으로 느끼고 두 눈으로 보면 이국의 감성을 느끼는 거 그 이상도 없다. 두 발이 건강하니 비싼 교통비 없이 무료로 얻는 것들은 덤이다.

    런던의 아침을 두 발로 시작한 나는 이미 런던을 두 눈에 많이 담았다. 그래서 런던에서의 남은 시간이 더 여유롭게 다가왔다. 내가 어디에 있든 달리는 이유다.

런던의 아침,17km 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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