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는 수업이다. 먼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떠오르는 느낌을 간단히 적게 했다.
"아이구! 내 얼굴은 떡판인디 워디 볼게 인남"
"오늘 화장을 안 하고 왔는디 큰일 났네"
자화상은 눈으로 보이는 걸 쓰는 게 아닌 마음으로 보이는 걸 쓰는 거라고 하니 대충 알아들었다는 표정인데 그래도 일단 외모에 치중하며 대략 난감한 표정들. 살면서 외모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살아온 시간들인 할머니들. 서로 눈치만 보며 글 쓰기를 주저하기에 할머니 얼굴의 움푹 파인 주름이 더 아름다운 거라고 했더니 글 잘 쓰는 정희 씨가 한마디 한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죠"
이 한마디에 모두가 와~~
옥상에서 떨어진 인절미 떡판 같다는 강순할머니, 실제로는 무척 예쁜데 글마저 겸손하다. 눈이 너무 커서 왕눈이라고 남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는 명선할머니, 시원시원한 얼굴에 말까지 조리 있게 하는 센스쟁이다.
"여자는 예쁘고 말이 적어야 하는데 나는 남자처럼 생겨서 내가 싫다"
안숙할머니의 글을 보고 나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나는 할머니들이 쓴 글을 대개 익명으로 설명하고 이름을 밝힐 때는 꼭 본인의 동의를 받는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외모를 여성의 틀로 고정하여 생각하는 걸 환기시켜 주고 싶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와 남존여비 사고가 만들어냈고 할머니들은 그런 사회적 환경에 암묵적으로 동화되어 살았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서 참고 인내한 시간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이제 얼마 안 남은 시간을 할머니들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안숙할머니 글을 보고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했다. 왜 여자가 예뻐야 하냐, 남자처럼 생겼다는 게 어떻게 생긴 거냐, 사람이 다른 거 그게 좋은 거지 등등. 평소 자존감이 강한 숙자할머니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할머니들이 자신을 여자니까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할머니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대에 어디 대든다는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나. 한국사회 성의 불평등 문제는 할머니의 문제, 여성의 문제가 아닌 남성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여성이 문제가 아닌 남성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탓해서는 안된다. 한국사회 속 남성, 나. 티비를 보다가 '저 여자 옷은 왜 저래?' '먹방에서는 여자들이 다 뚱뚱하네' 등의 말을 하다가 딸에게 혼난 적이 있다. 물론 과거 얘기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할머니들은 자신을 성으로 구분하지 말고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절대로 여성은 여성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수업 마지막에 평소 내가 한국의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할머니들이 아들이나 사위에게 집안일(특히 부엌일) 하게 시켜야 한다. 남편(할아버지)도 그런 모습을 먼저 보여주게 시켜야 한다. 할머니나 며느리들이 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걸 이제부터는 바꾸어야 한다. 명절 때도 부엌에는 아들이 있고 사위가 있게 시키세요. 아들에게 사위에게 어떻게 시키냐, 평생 부엌 근처도 안 가본 영감이 하겠냐며 며느리나 할머니 본인이 직접 나서기 때문에 한국의 남자들이 안 바뀌는 거예요. 내 목소리가 약간 격앙됐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오랜 시간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행해졌고 누군가는 그걸 겸손하게 내일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건 겸손이 아니다.
"선생님도 그럼 진짜 설거지도 하고 그래요?"
"당연하죠"
"요리도 하세요?"
"그런 거 한지는 오래됐어요"
나는 엊그제 처갓집에서 열무김치 담그는 장모님을 도와 열무 다듬고 절이고 했던 얘기를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지는 않았다. 할머니들이 정말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너무나 착한 우리의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