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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ug 06. 2024

감동의 이별 편지

    아침 일찍 핸드폰이 울렸다. 경화 할머니의 전화. 할머니 학생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전화는 처음이다. 무슨 일이 있나 조심스럽게 받았다(지금은 2주간의 방학 기간이라 더욱). 항상 웃는 모습에 학습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한 경화 할머니. 앞으로 수업에 나오기 힘들 거라는 말로 입을 떼길래 뭔 일 있냐고 재촉하듯 물었더니 머뭇거리며 하는 말이 자녀 따라 외국에 가서 살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마지막 편지를 썼다며 나한테 보내고 싶은데 괜찮겠냐는 전화였다.

   카톡으로 찍어 보낸 편지글을 읽고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의 삶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글이었다. (틀린 글씨비문 일부를 수정했다)

 


                           <살아온 세월 >


    저는 늦깎이로 공부 배우고 있는 학생입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 로 태어나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열 살 때부터 부모님 따라 호미 들고 밭에 나가 김매는 데 따라다녔습니다. 밭에 나가 일하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꿩 새끼처럼 콩밭 고랑에 엎드려 숨어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시절이 다시 올까 무섭습니다.

    저는 학교를 못 다니니 글도 모르고 일 배우는 게 생활이었습니다. 한글도 모르고 육십 년 세월을 살면서 눈물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육십 중반에 손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손녀가 유치원 갔다 와 집에 오면 책을 읽더라구요. 그걸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 마음이 저렸습니다. 저는 그날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글도 모르고 눈뜬장님으로 살다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다음 날 밖에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아파트 편지함을 열어보니 주민센터에서 글 모르는 어머님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다는 종이쪽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주민센터를 찾아가 신청하고 공부 배우러 다녔습니다. 이제는 글도 읽고 쓰고, 영어도 배워 제 이름도 소개할 수 있습니다. Hi,  This is my grandmother. 공부를 하니 내 마음속에 맺힌 한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팔십이 다되어 고목나무에 봄날이 찾아와 글꽃이 피었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구요. 제가 노력한 만큼 배울 수 있더라구요.

    저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황혼에 접어들어 온몸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모든 게 다 감사합니다.



 *  팔십이 다 돼 가는 나이에 먼 나라에 가서 사는 게 어떨지 조금 걱정도 되었다. 외로움을 달래기엔 글쓰기가 최고라고 말하며 외국에서도 종종 글 쓴 걸 카톡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계속 할머니의 글쓰기 선생님으로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감동의 이별 편지는 그 어떤 글보다도 아름다운 글이었다. 이런 글은 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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