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차 대구-청도] 청도로 가는 길 (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1장 청도로 가는 길 (2)


11일 차 2017. 6. 14. 대구 경북대학교-경산시–경북 청도읍 (44.5km)


남천면을 지나 나는 다시 25번 국도로 걸었다. 오늘 목적지 청도읍까지는 20km가 채 남지 않았다. 오후 시간에는 걷기에 좀 지루하더라도 쭉 뻗은 청도까지 이어진 25번 국도를 빨리 걸어 저녁 6시 전에 도착하여 일찍 쉬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오늘 야영 계획인데 청도읍 야영할 곳을 정하진 않아서 일찍 도착하여 적당한 장소를 알아봐야하기도 했다. 오후 1시가 넘어가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아침에 샀던 김밥 두 줄을 간식처럼 걸으며 먹었더니 그것도 점심으로 괜찮았다. 어떤 때는 식당에 앉아 쉬는 시간도 아깝긴 하다. 오늘 점심은 자연스레 그런 시간을 절약한 셈이었다. 점심이나 저녁을 식당에서 해결할 땐 핸드폰이나 보조배터리 충전도 또 하나의 목적인데 충전은 어제 대구의 사우나에서 밤새 다 했다.

25번 국도는 여전히 한낮의 사막처럼 강열한 태양과 도로의 지열로 뜨거웠지만 경산시를 빠져나와서는 좌측에는 태봉산, 우측에는 동학산, 저 멀리 앞에는 안산이 있어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여 있는 도로를 걷는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연이어 이어진 산들이 멀고 가까이서 겹치듯 펼쳐지는 그림은 그나마 넓고 길게 뻗은 25번 국도를 걷는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한참 만에 주유소가 하나 나와 쉬고 있는데 주유소 사장이 말하길 이곳은 대구, 부산 사람들이 트레킹으로 많이 찾는단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비슷했다.

첩첩히 산으로 둘러싸인 청도 가는 길


여기는 출발지 경북대학교 인근에서부터 31km 지점. 시간은 오후 3시 반. 대구 시내를 빠져나오며 경산시까지는 대략 한 시간에 3.8km로 걸었고 경산시 지나 25번 국도를 걸을 때는 한 시간에 4.5km로 걸어온 셈이었다. 아무래도 번잡한 대도시 시내를 지날 때는 신호등도 많고 차량도 많고 해서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남은 15km는 지금 속도로 걸으면 저녁 6시 전에는 청도읍에 도착할 거 같았다. 시간은 넉넉했다. 배낭에서 빵을 꺼내 먹으며 걸었다. 주유소에서 먹는 물도 보충했기에 충분했다. 나는 첩첩히 겹친 산들의 아름다운 경치도 사진 찍고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걸었다. 이 넓은 도로에 오가는 차들도 거의 없어 크게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른 들 누구하나 뭐랄 사람도 없었다. 이런 길이 나기 전엔 청도는 아마도 깊은 산골 마을이었겠다. 그 정도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사위가 산이 둘러싸여 겹겹이었다.

지금 온도는 33도. 오후의 햇빛이 따갑다. 나는 동반자를 불렀다. 내 그림자. 이놈은 어떤 땐 내 뒤를 쫓다가, 어떤 땐 내 옆에 나란히 가다가, 어떤 땐 나를 앞서 질러가기도 한다.


“피곤하지 않니”

“아니. 넌? ”

“난 좀 피곤한데 늘 네가 곁에 있어 좋아, 고마워”


이렇게 얘기하며 걷다보면 그림자는 어느덧 나의 오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림자 친구


청도읍 도착 7km 전 소싸움경기장에 도착했다. 소싸움은 청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정도로 청도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와서 보니 주말만 경기가 열리기에 경기장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망설이다가 경기장 옆의 사무실에 가서 사정 얘기를 했더니 팀장이 손수 안내를 해주면 경기장 안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휑한 경기장 안이었지만 나는 두 마리의 투우를 봤고 관중들의 함성 소리도 들었다. 둘 중 누군가는 이겨야 끝나는 세상, 승자만이 웃는 그런 세상이 주말마다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승자만 기억한다. 그래서 패자는 더욱 슬프다.

투우


청도군은 소싸움경기장 운영에서는 패자가 된듯했다. 이걸 운영하면서 계속되는 적자로 가뜩이나 재정이 취약한 청도군에서는 계속 운영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 중이라는 팀장의 말이었다. 듣고 보니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자체가 홍보성 수익사업이 전시성 운용에 그쳐 지역 특성에 맞는 콘텐츠나 아이디어 고갈로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도 소싸움 경기장


청도읍에 도착하니 저녁 6시 7분. 해는 아직도 서쪽하늘에 걸쳐 있었다. 나는 오늘 대구를 출발하여 여기까지 44.5km를 4.3/1h(쉬는 시간 제외)로 걸었다. 이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여유라는 놈이 갑자기 긴장에서 나를 풀어놨다. 서너 시간의 저녁 여유는 나에겐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저녁밥을 짓기 전에 청도 읍내 구경부터 나섰다. 청도읍은 청도군청이 있는 소재지지만 작고 아담해 보였다. 읍내 인구가 만 명 조금 넘는다니 그럴 만도 했다. 청도군 전체 인구가 4만 3천 명(2017.1 주민등록인구통계) 정도라니 청도읍에서만 사는 사람들이 적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읍내는 조용했다. 읍내를 돌아보기에 30분이면 족했다. 나는 읍내의 느림이 좋았다. 여기는 모든 게 느렸다. 사람들 걸음걸이조차도.

청도읍 하천변 공원은 조성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깨끗했다. 하지만 식수나 화장실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하천변 공원 둑을 올라와 가까운 식당에서 식수를 얻었다. 식당 주인이 날 보며 깜짝 놀란다. 정말 걸어왔냐며 몇 번을 물었다. 아마도 이렇게 걸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은 내가 처음일 거라나.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순간 내가 영웅이 된 느낌이 들긴 했다. 식당 주인이 물도 맘껏 가져가고 식당에 딸린 안집에서 샤워도 하라는데 염치가 없어 세수만 하고 물만 담아 야영지로 다시 왔다. 청도의 인심이 나의 맘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청도 읍내를 구경하며 마트에서 사온 먹거리로 밥을 지었다. 이제야 해가 넘어가는지 서쪽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공원 하천변을 혼자 걸었다. 크지 않은 읍내라서 그런지 저녁 산보 나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이니 누가 보면 꼭 바닷가에 놀러 온 차림이었다. 나는 혼자만의 편안함에 취해 공원 여기저기를 한참을 거닐었다. 어둠이 깔리고 공원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걷냐고. 나는 이번 도보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물었을 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청도 읍내는 밤 9시가 넘자 대부분이 불이 꺼졌다. 청도 읍내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하천변 공원이 25번 국도와 인접해 있어 가끔씩 자동차 소리가 들릴 뿐 사위가 조용했다. 나도 지금 자야 했다. 여러 생각이 떠오르면 고독해지고 그럼 또 왜 걷냐고 나한테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청도읍 강변공원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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