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3일 차 2017. 6. 16. 경남 삼랑진읍 생태문화공원–부산 금정산–부산 동래 (45.7km)
삼랑진읍 생태문화공원 낙동강변의 아침은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제는 밤늦게 도착해서 잘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광경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펼쳐졌다. 갑자기 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어 졌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조금이라도 이곳에서의 여유를 더 즐기고 싶었던 나는 평소보다 늦은 아침 7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다. 강변에는 아침 산보를 나온 사람도 여럿 보였다. 강아지를 끌고 산보하던 한 젊은이가 내게 다가왔다. 나의 얘기를 듣더니 놀라며 자기는 내년에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할 계획인데 이뤄질지 모르겠단다. 요즘같이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시대에 꿈마저 잃는다면 그들에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나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용기 주는 한마디라도 해주고 싶어 젊은 친구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그는 나를 보고 용기를 얻은 듯 했다.
나는 늘 꿈을 꾸며 살아왔다. 때론 허황된 꿈도 꾸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30년의 직장생활도 잘 해낼 수 있었다. 나에게 꿈은 희망이었다. 나는 지금 58살의 청년이다. 청년이라면 당연히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는 나는 그래서 늘 청년으로 살려고 한다.
삼랑진 낙동강 철교는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불린다. 6.25 전쟁 당시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인민군에 맞서 1950년 8월 국군과 미군은 이곳 낙동강 철교를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삼았다. 그때의 처절함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은 지금 이 다리를 베트남전 영화 속 다리인 콰이강의 다리라고 부른다. 나는 콰이강의 다리와 작별을 하고 낙동강 자전거 길을 걸으며 하루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길은 한강 아라뱃길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길과 걷는 길이 나란히 가기에 걷기에도 좋았다. 자전거 타기나 걷기나 모두 좋은 길이었다. 국토종단 13일 차에 나는 드디어 부산을 향해 아래로 걸었다.
낙동강은 본류의 길이가 525㎞로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이며, 우리나라 전체로는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총 유역면적은 남한 면적의 25%에 해당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곳의 낙동강은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과 합쳐져 흐르는 강으로 이 강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부산의 서쪽으로 닿은 후 바다로 흘러간다.
금요일 평일이라 라이더는 많지 않았다. 한 라이더가 내 배낭 써져 있는 임진각~부산역의 글씨를 봤는지 “대단하심더! 부산 다 왔어예” 하며 용기를 복 돋아 주었다. 삼랑진읍을 벗어나 양산시로 접어들면서는 낙동강은 더욱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낙동강 위에 구름다리처럼 걸쳐진 길은 환상적이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선녀처럼 넘실대며 걸었다. ‘이 맛으로 기다려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13일간 쌓였던 피로가 한방에 가시는 듯했다. 구름다리 왼쪽 절벽 위에는 경부선 철로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과의 조합이었다. 나는 가던 발을 멈추고 되돌아 걷고 또 다시 걷고, 몇 번이나 그렇게 걸었다. 그만큼 한번으로 지나치기 아쉬운 절경이었다. 이번 국토종횡단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손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곳 삼랑진에서 양산가는 낙동강구름다리 길을 꼽을 것이다. 이 길이 전국 자전거 길에서 환상적인 코스로 손꼽힌다니 그 또한 당연하다. 절벽을 끼고도는 기차, 낙동강의 한쪽을 휘감으며 걸쳐있는 구름다리.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내 몸에 몇 겹으로 걸쳐있던 가식의 꺼풀이 낙동강의 바람에 벗겨져 날아가 버렸다.
이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몇km를 걸었으며 어느 속도로 걷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오히려 더 천천히 걷고 싶었다. 나는 지금 낙동강의 일부분이 되었다.
낙동강 위 구름다리 길을 걸으며 고개를 들면 보이는 왼편 깎아지른 절벽 위 철길은 그 옛날 조선시대 사람들이 도성으로 가기 위해 걸었던 길이었다는데 그 험준한 벼랑길을 걸으며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을까 할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절벽 길이었다. 낙동강 황산지역의 험준한 벼랑 끝에 세워진 길이라는 뜻의 황산잔도는 1694년 이 길을 정비한 것을 기념한 황산잔로비를 봐도 역사가 꽤나 긴 것을 알 수 있었다.
경관이 좋아 가게나 화장실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이 길에서는 물과 먹거리는 스스로 챙겨야 했다. 거의 10km에 하나 정도 쉼터가 있었다. 나는 양산시 가야진사까지 신선이 되어 걸었다. 양산시 가야진사 쉼터에는 많은 라이더들이 쉬고 있었다. 나도 냉커피를 한잔하며 정자에 배낭을 풀었다. 낙동강은 앉아 쉬면 풍류였다. 나그네는 시조가락에 풍류가객이 되었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안도감마저 더하니 나는 가야진사 쉼터 정자에 그냥 벌렁 누워 버렸다. 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옛날 양주 도독부의 한 전령이 공문서를 가지고 대구로 가던 길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꿈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나 남편용이 첩만을 사랑하고 자기를 멀리하니 첩용을 죽여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전령이 사정을 딱하게 여겨 다음날 첩용을 죽이기 위해 용소에 갔는데, 실수로 남편용을 죽이고 말았다. 슬피 울던 본처용은 보답으로 전령을 태우고 용궁으로 갔다. 그 후 마을에 재앙이 그치지 않아, 사당을 짓고 용 세 마리와 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돼지를 잡아 용소에 던지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가야진사에 전해지는 전설의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