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20일 차 2017. 6. 29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횡성읍–강원도 횡성군 정금초등학교(44.1km)
사우나에는 두세 명밖에 없어 편한 잠자리였다. 어제 이곳에 도착해서 느꼈던 성취감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국토종단 중이라던 청년은 아직도 꿈속이었다. 그의 여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걷는 건 도전은 아니다.
우선 아침을 먹어야겠는데 주변에 식당도 안보여 할 수 없이 어제 갔던 편의점으로 갔다. 컵라면에 김밥. 이미 익숙한 메뉴가 되었다. 요즘 편의점 먹거리도 괜찮아서 편의점의 아침김밥과 컵라면은 그렇게 적은 양은 아니다. 맛도 괜찮고. 하지만 몇 끼를 연속해서 그렇게 먹을 순 없다. 오늘 아침 김밥은 퍽퍽하게 느껴졌다. 억지로 먹었다. 걸어야 하니 그렇게라도 먹어야 했다.
횡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원주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어제의 극심했던 피로는 간밤의 사우나 휴식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오늘 걸을 거리 44km를 적당히 안배하니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나는 국토횡단 6일 차를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방향으로 걸으며 시작했다. 아침 7시 도로는 한산했다. 출근하는지 가끔씩 자가용이 보일 뿐이었다. 원주시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이 시간에는 집을 나서야 하겠지. 문막읍에서 원주시내까지는 20km 정도 되니까.
문막 읍내를 벗어나니 완전 시골농촌이었다. 옥수수 밭이 많았다. 강원도 옥수수는 찰지기도 하고 요즘은 간식거리로도 인기가 많다. 옥수수 밭을 둘러보던 농부아저씨는 요즘 낮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아침 일찍 나와 일한다고 했다(나는 그 한낮을 매일 걷고 있다). 문막은 강원도 내륙보다 열흘 이상 빨리 옥수수를 수확하는데 올해는 가뭄이 심해 잘 영글지를 않았다며 걱정했다. 곡식도 먹어야 산다. 나도 먹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내 어린 시절엔 고구마와 옥수수는 쌀 대용의 음식이었다. 지금은 간식이지만 그땐 밥 대신이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쌀계"란 게 있었다. 쌀 한 가마니를 타기 위한 계였다. 12달을 조금씩 돈을 부어 자기 순번이 돌아오면 쌀 한 가마니로 받는 것이었다. 계 타는 날이 되어 쌀 한 가마니가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큰 무쇠 솥에 흰쌀밥을 지었다. 어머니는 쌀을 아끼기 위해 고구마를 가마솥 한쪽에 묻어 같이 밥을 했는데 난 내 밥공기에 얹힌 고구마 대신 흰쌀밥을 더 달라며 어머니에게 생떼를 쓰곤 했다. 그만큼 쌀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집 텃밭에 심어 놓은 옥수수는 누구나가 따 먹어도 되는 동네의 인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옥수수 밭을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그만큼 시골인심도 사나워졌다.
지정로를 따라 걷다가 지정초등학교를 좌측에 두고 나는 우측으로 걸었다. 이 길은 조선 후기 문신인 조엄의 묘가 있는 곳이라 조엄로로 불리지만 정확한 지명은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다. 아침 시간에 조엄로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건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간다는 기대감이 컸다. 나는 2,3km를 더 걷다가 대규모로 진행 중인 원주지식기반형기업도시개발구역을 앞에 두고 좌회전하여 걸었다. 10km 정도 걸었는데 발걸음이 가벼우니 어제의 피로는 잊어도 될듯했다. 나는 섬강을 옆에 두고 꾸불꾸불 이어진 시골 국도를 따라 걸었다. 단아한 모습의 교회가 보였다. 이런 곳의 시골교회는 하나님도 도시보다 더 너그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의 현판을 봤더니 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였다.
걷다 보면 대개의 마을 입구에는 수 백 년 된 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런 나무 밑에는 쉬는 의자도 있어 나그네를 쉬고 가라고 붙잡았다.
나는 잠시 쉬어 갈 겸 오래된 고목나무 옆의 정자에 앉았다. 꽤나 수령이 있어 보이는데 보호수로서 800년이 되었다고 써져 있었다. 800년 동안 이 나무는 수많은 인간들을 봐왔을 테지. 나는 갑자기 나무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큰 어른 같이 그 자리 그대로였다. 우직함이랄까, 성실함이랄까, 나무는 배울게 많은 어른이었다.
지정면 월송리의 송정로를 따라 걷다가 섬강을 건너는 옥계 대교를 건너니 호저면이다. 호저면 매호리 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을 벗고 편하게 앉아 쉬었다. 이곳이 문막읍 출발지로부터 17km 지점이고, 점심때도 되고 해서 나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갈 생각이었다. 내가 쉬고 있는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구판장인 듯, 식당인 듯한 게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잠시 쉬고 있자니 할머니 한분이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할머니는 소 닭 보듯이 날 쳐다보며 아무 말도 안 했다. 나에 대한 무관심은 좋으나 이런 땐 할머니의 무관심이 괜히 서운했다. 머쓱해진 내가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원주 시내 병원에 간다며 시내 병원 가면 전부다가 시골 노인들 판이라며 아프지 말고 죽어야 하는데 한다. 버스 올 시간이 다가오는지 노인 둘이 저쪽에서 걸어서왔다. 다 나 같은 노인들이라고 할머니가 또 한마디 한다. 이곳 노인들도 한평생을 고생하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그렇게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좁은 자리도 비켜줄 겸 일어나 맞은편 구판장으로 들어갔다. 여기 구판장은 꽤나 여러 가지를 다 구비하고 있었다. 냉장고에 시원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구판장이라는 글씨 밑에 된장찌개 김치찌개라는 작은 글씨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갔을 것이다. 식사가 뭐 되냐고 물었다. 김치찌개는 뜻밖에 맛있었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김치찌개를 만들 때 김치찌개는 비계 맛이라며 고기보다는 비계를 더 많이 넣었다. 김치찌개의 비계는 씹히는 맛도 없고 비계에서 나온 기름으로 국물도 느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살코기를 살 형편이 안 되니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맛에 익숙해져 지금도 김치찌개는 돼지비계가 듬뿍 들어간 걸 최고로 여긴다. 나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 비계 덩어리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아내는 건강에 안 좋다며 비계를 아예 넣질 않았다. 지금 먹은 김치찌개는 내 어머니의 것이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잘 먹었다는 말을 몇 번을 해 주었다.
구판장 식당을 나와 한 시간 반 정도 걸어 호저면의 섬강 장현교를 건넜다. 건너서 좌측 길로 드니 섬강 자전거 길이었다. 지정면을 지나 옥계대교를 건너 옥저면으로 걷기 전 섬강을 타면 자전거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 길이 직선 길이라 거리도 짧았다. 하지만 만약 그길로 왔다면 돼지비계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도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사람의 냄새를 맡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문막읍을 출발해서는 섬강 길이 아닌 시골 국도를 따라 걸어왔다. 강원도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강원도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강원도를 깊이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느낀 것은 우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활력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강원도 시골 대부분은 인구가 줄어 폐교가 많고 인적도 드므니 마을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국토종단 때 충청도, 경상도 시골마을에서 느낀 한가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문막읍을 지나며 강원도 내륙으로 들어가는 나는 쇠락해가는 강원도 농촌의 모습을 점점 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호저면 장현교를 건너 섬강을 발길 아래 두고 섬강 둑길을 걸었다. 섬강은 길이 73km로 한강에서 흘러간 강물이 팔당, 양평의 남한강과 만나서 한줄기 강물은 충주방향으로 내려가고, 한줄기 강물은 여주에서 갈라져 강원도 원주, 횡성의 섬강 줄기로 이어진다. 섬강은 강원도의 젖줄인 셈이다. 섬강의 섬은 두꺼비 섬 자인데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나온다고 하니 섬강으로 불려진지는 아주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