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 젊은이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by 김쫑

‘60살 젊은이.’ 남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그렇게 부른다. 100세 인생을 말하는 요즘 시대에 60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에 딱 좋은 나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호적상의 나이와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뿐.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 시작하여 30년의 직장생활을 마쳤을 때 느끼는 공허감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퇴직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남은 인생에서는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활동을 하며 살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러다 퇴직을 하고 하루아침에 바뀐 생활리듬은 나의 정신 상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생각은 단순해지고, 잡생각이 많아지면 머릿속이 얽히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막연히 생각했던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나 자신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었고 주변의 환경 그리고 새로운 미래에 대해 내가 무지하다는 걸 느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는 젊어서부터 내가 품었던 꿈이었다. 나는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실현의 시작을 코이카로 정하고 해외봉사단원에 지원했다. 2년 동안 봉사하며 나의 인생을 다시 설계해보기로 했다.

나의 파견지는 캄보디아 서부의 작은 도시 시소폰. 파견기관은 민쩨이대학교. 국립대학교지만 시설은 열악했다. 한국어과 교사로 부임한 나는 학생들의 눈높이로 생활하고 봉사하며 배우자고 결심했다. 문화시설이 부족하다고 꿈마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학생들의 꿈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생활 습관을 캄보디아에 맞췄다. 먹고 자는 것, 교통수단, 화장실문화 등 생활 속의 불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의 이런 생활은 캄보디아 학생들의 일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학생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한국어과 학생들이 BTS를 좋아하는 것을 보며 뿌듯함도 느꼈다. 사실 나는 그들보다 BTS를 더 몰랐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하며 서서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 가치와 보람을 느끼는 생활은 나의 새로운 시작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봉사의 시간이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캄보디아는 열대몬순기후로 일 년 내내 덥다. 연평균 온도가 28도며 특히 우기에는 한낮의 온도가 33도를 넘는 데 이런 날씨가 여섯 달 지속된다. 더운 날씨에 체력을 유지해야 봉사단원의 2년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 캄보디아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나는 학교까지 뛰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불편한 교통수단을 두발로 해결하며 건강도 유지할 목적이었다. 캄보디아의 더위에 매일 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까지 7km를 뛰어가면 흠뻑 젖은 옷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달리며 나는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1년 정도의 이런 생활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의미 있는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 발이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한번 걸어보자.’ 태국 국경에서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까지는 420km. 우리의 신체는 극한 상태가 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다. 머리를 비우고 앞날의 꿈을 채우고 싶었다. 하루 평균 42km로 10일간 걷는 일정이다. 이른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오전은 빠르게 걷고 한낮 더위에는 천천히 걸었다. 걸으며 다양한 캄보디아를 만난 것은 도전으로 얻은 덤이었다. 자연을 눈에 담으며 두 발은 걷지만 머릿속으로는 나의 미래를 그렸다. 5일 차는 바탐방 몽르쎄이에서 뽀삿까지 가는 58km. 잠자리 때문에 무리한 계획을 짰던 그날이다. 그날 아침 5시에 일어난 나는 오늘 하루를 이겨낸다면 앞으로 어떤 두려움도 갖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낮의 더위에도 걸었다. 그래야 밤 7시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km를 넘기며 나의 몸은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다. 배낭이 마치 큰 돌덩이처럼 나를 짓눌렀다. 해는 넘어가고 짖은 어둠에 한 치 앞도 안 보였다. 저 멀리 민가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는 마치 여우 울음소리 같아 섬뜩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때 나는 외쳤다 ‘60살 젊은이! 걸어! 계속 걸어!’ 그 순간 나는 나를 믿고 싶었다. 한계를 뛰어넘는 또 다른 나의 능력이 내 안에 있다고 정말로 믿고 싶었다. 그날 나는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하며 기다시피 걸어 밤 9시를 넘겨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소 60살은 젊은이라고 외쳤던 나는 그날 그걸 증명하고 싶었다. 나무 침상에 앉자마자 배낭을 벗어던진 나는 그대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다. 도전이 험난할수록 얻는 자신감은 크다. 꿈속에서 나는 다시 6일 차 걷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코이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캄보디아의 2년은 내가 60살 젊은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시간이었다. 코이카 해외봉사를 통해 새롭게 시작한 나의 두 번째 인생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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