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24일 차 2017. 7. 3 강원도 양양군 하조대해수욕장 – 강원도 속초시 속초항 (28.7km)
1,000km 배낭도보 국토종횡단 24일의 마지막 날. 23일간 나는 총 972.5km를 걸었다. 처음 시작할 땐 언제 그 먼 거리를 걸을까? 그리고 내가 해낼 수는 있을까? 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마지막 날의 아침은 덤덤했다. 아니 차분했다. 나는 자고 있는 후배를 깨워 호텔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 동해안의 아침 날씨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비 온 뒤 청명, 그 자체였다. 꼭 한번 동해안 해안도로를 걸어보고 싶었다는 후배도 날씨까지 쾌청하니 기대감에 흥분되는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마지막 일정도 3일전 변경한 계획에 의해 27.5km로 줄어든 거리라 아침 시간은 여유로웠다.
호텔의 아침은 꽤나 풍성했다. 24일간의 국토종횡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호화 뷔페였다. 작은 호텔이지만 굉장히 세련된 아침 메뉴로 후배와 나는 맘껏 아침 시간을 즐겼다. 우리는 어제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며 속초에서 맞을 대망의 피날레를 얘기했다.
우리 둘은 오전 10시가 넘어 느긋하게 하조대해수욕장을 떠나 속초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호텔 안에서 보던 거와 달리 햇살은 따가웠다. 3,4km를 같이 걷다가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동호해변을 조금 못미쳐 후배를 두고 혼자 뛰기 시작했다. 후배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 후배는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이 배낭에 이것저것 잔뜩 담고 있었다. 뛸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보따리 맨 그 모습이고.
동호해변에서 낙산대교까지는 약 10km. 나는 쉬지 않고 낙산대교까지 단숨에 달렸다. 낙산대교 앞에 펼쳐진 설악산의 풍경은 산을 그대로 액자에 담아 옮겨 놓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낙산대교를 건너 길가에 앉아 후배를 기다리며 운무 속에서 춤추는 설악산을 바라봤다. 설악산은 구름을 따라 움직이며 다양한 춤사위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산이 움직이는 걸 처음 봤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낙산대교에 30분 뒤쯤 후배가 도착했다. 시간을 보자니 후배는 뛰지는 못했지만 무척이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 듯했다. 하지만 힘들어하기보다는 이렇게 걸어보니 좋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둘이 걷다 보면 혼자 걸으며 느낄 수 있는 감상, 나만의 자유분방함을 누리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둘이 걸으면 확실히 걷는 게 수월하다. 서로 의지하고 말동무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국토종횡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곤 했다. ‘왜 혼자서 다니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외롭고 심심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다면 가끔은 혼자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나와 후배는 다시 친구가 되어 낙산대교에서 우측으로 돌아 낙산해수욕장으로 걸었다. 우리는 낙산사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 둘이 있으니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만큼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었다. 낙산사에서 한참을 쉬다 일어나는데 후배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오전에 내가 달려온 길을 빠르게 걸어오느라 무리한 게 틀림없었다. 간단한 마사지로 뭉친 다리 근육을 풀어주고 우린 다시 걸었다. 배낭은 내가 대신 맸다. 별거 아닌 작은 것이라도 남을 배려한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같이 걸으며 후배의 보폭이나 속도도 배려해 주었다. 함께 걸으며 얘기 나누다 보니 걸음걸이가 가벼워졌는지 후배는 이후론 아무 탈 없이 잘 걸었다. 우리는 걸으며 얘기하고, 얘기하며 걸었다. 오늘 걷는 게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후배의 말에 오히려 나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더 고마웠다.
속초 하면 대포항이다. 평일 오전의 대포항은 주말 대포항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한적한 모습이었다. 대포항 안으로 돌아 들어간 우리는 수많은 횟집 간판에 망설여졌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기도 했지만 시간이 오후 세시가 넘었으니 점심을 그냥 건너뛴 격이었다. 동행하며 힘든 줄 모르고 나와 후배는 22km를 그렇게 걸어왔다.
우리는 오늘 아침 하조대해수욕장을 떠나오며 피날레를 잠깐 얘기했다. 하지만 피날레는 둘이 마지막 날을 걷는 거로 충분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속초항에서 마침표를 찍은 후 아바이마을에 가서 순댓국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참아야 했다. 이곳에서 속초항까지는 약 7km. 우리는 대포항을 구경삼아 안쪽으로 들어가 한 바퀴 돌아 뒷길로 나와 속초해수욕장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속초해수욕장을 지나쳐 아바이마을로 들어섰다. 아바이마을의 갯배가 보였다. 갯배는 오래전 청호대교가 생기기 전 사용했던 뗏목 수준의 바지선이다. 와이어를 끌어당기는 동력으로 이동하는데 이 배가 없으면 50m 정도 되는 거리를 5km 넘게 빙 돌아가야 했다. 이북에서 내려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간 아바이마을은 내가 걸은 1,000km의 도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아바이들은 아직도 청년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후배는 아바이마을을 지나 청호대교를 건너 속초항으로 걸었다. 속초항 속초해양수산사무서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24일간 1,000km 국토종횡단의 대장정이 끝났다. 오늘 걸은 거리는 27.5km, 24일간 총 걸은 거리는 1,015.3km. 시간은 2017년 7월 3일 오후 4시 26분.
다시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열도 잠시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번 국토종횡단 1,000km 배낭도보 도전을 통해 얻고자 한 게 무언가 잠시 생각했다. 역시 난 아무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또 걸을 것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단, 58살을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도전을 두려워한다. 처해진 환경 때문이라고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전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 58살은 청년은 1,000km를 도전하기로 맘먹고 24일간 걸었다.
이제 나는 한 시간 뒤 서울 집으로 돌아간다. 속초항에서의 피날레는 의외로 소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