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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우라 고리유 Jan 28. 2024

제50화, "원하는 만큼 욕했습니다. 콩나물에게요"

욕을 하지 않으면 화병에 걸려 죽으실 거예요.

 아마 욕을 상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욕을 하지 않으려고 하죠. 하다못해 비속어도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잖아요. 엄연하게 존재하는 명확한 비속어 '존나' 를'준내' 혹은 '욘나' 아니면 '졸라'로 바꾸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런 것만큼 터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지요.


 그런데요. 욕은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욕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종목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해해도 말이지요. 만약 욕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면 참 끔찍하지 않을까요. 맥락에서 조금 비껴나간 것 같기도 하는데요. 일본에서는 제일 심한 욕이 '빠가'라고 알 수 있습니다. 바보 보다 더 심한 욕이 없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극동아시아의 자랑스러운 반도인 대한민국은 어떠합니까. 너무나 화려하고, 복잡해서 마치 르누아르 그림처럼 휘황찬란하지요. 욕설 분야에서 말입니다.


 각설하면요. 욕은 사용하면 좋습니다. 물론 경우를 잘 봐야 하지요. 저는 그래서 요리할 때 욕을 합니다. 일종의 칭찬욕인데요. 욕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건전한 방식 같아요. 콩나물을 예로 들어볼게요.


 오늘은 콩나물 무침을 했습니다. 슈퍼에서 2000원짜리 콩나물 한 봉을 샀어요. 집에서 물로 헹구는데 씨발 콩나물이 너무 탱글탱글한 것입니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콩나물이 제게 왔는데 어찌나 귀엽던지요. 아기자기 발걸음도 못 뗀 콩나물을 보았는데, 존나 귀엽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요리를 존나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못하면 이렇게 싱싱한 어린 콩나물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뜨거운 물에 데칠 떼부터 주방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새끼들이 가진 탱글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데치려면 항시 살펴야 했어요. 근데 이 십쌔끼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거예요. 한 손 가득이던 씹쌔끼들이 뜨거운 물에 데쳐지니까 그만 사그라들더라고요. 목이 따인건지 뒈진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어요. 살짝 측은해지더라고요. 존나 슬프진 않고요.

 애들이 다 뒈졌을무렵, 소금이랑 간장을 쳤어요. 그리고선 조금 더 지켜봤죠. 불을 줄이고, 물이 졸 때까지 기다렸어요.


 어느덧 이 새끼들이 다 죽은 것 같아요. 이젠 탱글함이 사라졌어요. 존나 아쉬웠어요. 이제는 처음 봉지에서 봤을 그 싱그러움이 사라진 것 같더라고요. 존나 슬펐어요.


 하지만, 한 줄기 씹어먹어 보니 존나 기뻤어요. 곧바로요. 너무 맛있더라고요. 왜 싱싱한 콩나물로 무쳐야 하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다 뒈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탱글함이 있더라고요. 씹쌔끼들. 귀엽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리가 끝난 후부턴 야무지게 씹어줬습니다. 준내 맛있더라고요.


 어서 오너라 씹쌔끼들아. 모든 영양분을 다 토해낸 다음에 내 똥이 되어라. 그럼 내가 너희들을 방생해 주리라,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핥아먹을 계획입니다.



보셨죠? 여러분들? 욕은 이렇게 하면 즐겁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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