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코스 4탄
<양경만의 4.3 읽어주는 남자>

제주도 다크투어리즘 - !

by 고르라제주


청명한 하늘로 더욱 찬란히 빛나는 가을, 더욱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제주는 지금 에메랄드빛 바다는 물론 억새와 핑크뮬리가 만발하여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여행하기 좋은 가을을 맞이하고 있답니다. 고르라에서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제주의 아름다움 속 안타까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음블로그에서 '광제'로 활동하고 있는 양경만 작가와 함께 제주의 동쪽을 여행하며 4.3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 지금 시작합니다.



1. 북촌 너븐숭이



1947년 3월 1일 관덕정 발포사건이 발생한지 5개월 뒤, 벽보를 붙이던 주민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3명이 부상당하고, 1948년 4월 21일 무장대가 북촌리 선거사무소를 공격하여 선거기록을 탈취해간 사건이 벌어졌으며, 같은 해 6월16일에는 북촌 포구에서 우도지서 경찰관 2명이 무장대에게 살해되었다. 이것이 너븐숭이 학살의 시초이다.





2. 함덕 서우봉



총 418명이 희생을 당한 최대 피해마을 북촌리와 함께 인근 서우봉에는 4.3 당시 북촌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함덕마을 주민들도 숨어 지내던 천연동굴이 있다. 토벌대의 작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 1948년 12월 26일 4~5명의 여성들이 절벽위에서 총살당하는 등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아픈 현장이기도 하다.





3. 선흘리 낙선동 4.3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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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21일 선흘초등학교에 주둔해 있던 군인들에 의해 온 마을이 불타 사라지고, 며칠 뒤 피신한 주민들을 찾아내 학살은 시작되었다. 은신했다가 붙들려온 주민들이 희생된 가운데, 살아남은 주민들은 1949년 봄에 낙선동에 성을 쌓아 집단 거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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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대의 습격을 방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주민들과 무장대 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해 허허벌판에 성을 쌓아 전략촌을 구축했던 대표적인 것이 낙선동 4.3성이다. 당시 2백여 세대가 성안에서 살았으나 현재는 13호가 남아 있으며 성담위로 담쟁이가 아픈 역사를 말해주듯 무성하게 덮여있다.





4. 다랑쉬오름과 다랑쉬굴 학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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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 오름의 기슭, 구좌읍 세화리에 속해있는 중산간 마을인 다랑쉬 마을에는 4.3당시 10가구에 4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1948년 11월, 다랑쉬 마을에도 소개령이 내려졌다. 다행히 토벌대나 무장대로부터 관심을 덜 받는 곳이어서 따로 도피한 사람 없이 무사히 세화리로 피난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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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마을 주민들이 이곳 다랑쉬 인근으로 도피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다랑쉬 굴에서 아이와 여성이 포함한 11구의 시신이 불에 타 희생된 채 발견된 것이다. 피신한 채 살아가다가 군경에 발각되어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죽을 것을 알고 응하지 않자,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질식사 한 아픈 현장이다.





5. 성산일출봉과 터진목 학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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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당시 서북청년단 특별중대가 주둔한 곳이 바로 일출봉이 있는 성산리 마을이다. 서청이 성산초등학교에 주둔하면서 성산리는 죽음과 통곡의 소리가 끊이지 않은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서청특별중대에 의해 잡혀 온 성산면과 인근 구좌면 주민들은 살아 돌아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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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 특별중대에 잡혀 온 주민들을 혹독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대부분 총살당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성산리 입구에 있는 '터진목' 과 일출봉 북쪽 해안의 '우뭇개 동산' 이었다. 우뭇개에서 30명이 총살을 당하는 등, 주민들을 잡아오면 무조건 때리고 취조를 시작하여 성산 리민들은 날마다 주민들이 고문의 비명소리를 듣고 총살당한 시체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6. 표선 한모살 학살터



표선 마을 해안에 가면 넓게 펼쳐진 한모살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곳은 '당캐'라고도 하고 최근에는 '표선백사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표선면과 인근의 남원면의 주민, 무엇보다 표선면 중산간 마을의 주민들에겐 악몽의 장소이기도 하다. 4·3 당시 일대 주민들이 희생됐던 일상적인 총살장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12월18일부터 일주일간 토산리민 200여 명이 희생되는가 하면 가시리, 의귀리, 한남리, 수망리 등 인근 중산간 마을의 주민들까지 집단으로 끌려와 학살을 당한 곳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이곳에서 희생당한 이유는 표선리에 소재한 면사무소에 군부대가 상주했기 때문이다. 움막을 지어 유치장으로 활용했고, 유치장에 끌려 온 주민들의 총살장으로 이곳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70년이 지나도록 제주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제주 4.3, 제주도 곳곳에서 당시 저질렀던 무법적이고 끔찍한 학살의 현장들이 그때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데요. 지금도 유해들이 끝없이 발굴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 4.3의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기억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제주도 여행코스 <양경만의 4.3 읽어주는 남자>

{ 1탄: https://bit.ly/2MChC1A

2탄: https://bit.ly/2MOWysv

3탄: https://bit.ly/2R6lmf2 }



예비사회적기업 '고르라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