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유난히 바빠진 곳이 있다. 법원이다. 한국처럼 일사불란하지 못한 독일은 뒤늦게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규정을 부랴부랴 세웠다. 감염자 경로를 추적할 수 없어 외출 자제령과 2인 초과 접촉 금지 규정이 세워졌다. 마스크 착용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마스크 착용도 의무 규정이 됐다.
동시에 독일 법원에는 가처분 신청이 쏟아졌다. 코로나19 방역 규정이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독일에서는 3월 말이 되어서야 전국적으로 동일한 외출 및 접촉 자제 규정이 세워졌다. 당시 베를린의 한 변호사는 이 규정이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특히 긴급한 법률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약이 될 수 있고, 변호사 상담 등을 받기 위해서는 경찰에 사유를 공개해야 하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베를린 행정법원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코로나 방역 규정은 다수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규정이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1.5m 최소거리 유지, 다주택자의 이동, 예배 금지 등 다양한 안건에 대해 가처분신청이 들어왔다. 대부분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4월 말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대중교통이나 상점 이용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불이행시 벌금이 부과된다. 이후 법원은 또다시 바빠졌다. 5월 18일 기준 베를린에서만 한 달도 안 돼서 가처분신청 100건 이상이 접수됐다. 마스크 의무 규정이 독일 기본법에 보장된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학생들이 학교를 가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쇼핑을 허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데모를 해야한다는 이유로 독일 전역에서 수백 건의 소장이 법원에 제출됐다. 대부분 기각됐지만 인용된 건도 있다.
독일 백화점 카데베(KaDeWe)는 코로나19 완화 규정이 800제곱미터 이하의 상점만 문을 열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법원을 찾았다. 4월 30일 베를린 행정법원은 카데베의 손을 들어줬고, 카데베와 다른 대형 백화점들이 모두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타게스슈피겔은 법원의 인용 결정을 보도하면서 “법치국가가 기능한다는 것을, 동시에 그 법은 유동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5월 15일 학교 수업 재개를 앞둔 라이프치히에서는 한 학부모가 행정법원에 소장을 냈다. 학교별로, 학년별로 방역 기준이 달랐는데, 고학년과 달리 저학년 학급에서는 최소거리 유지가 의무가 아닌 것을 문제 삼았다. 이번에는 방역이 허술하다는 이유다. 행정법원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고, 작센주는 결국 고등행정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등교 의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자녀가 등교할지 말지를 당분간 학부모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아직 끝이 아니다. 5월 26일 베를린 행정법원은 방역 규정 위반 시 부과되는 벌금이 일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베를린에서는 마스크 착용 및 사회적 거리, 위생 조치를 준수하지 않을시 적게는 10유로 많게는 5000유로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이 중 법원이 위헌적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사회적 거리두기’ 및 ‘접촉 제한’ 위반 벌금이다. 법원은 명백하게 판단이 가능한 마스크 착용 등과는 달리 사회적 거리두기나 접촉 제한 규정은 개인이 판단하기 명확하지 않으며, 따라서 필요한 것보다 기본권 제한이 더 많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에 따라서 위 두 가지 사안에 대한 벌금은 이제 부과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코로나19 방역을 둘러싼 소송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법률 잡지까지 창간됐다. 독일 법률 부문 전문 출판사인 ‘C.H. Beck’은 5월부터 격주로 코로나 관련 소송과 그 배경을 다루는 잡지 “COVuR”을 발행했다. ‘코로나와 법(COVID19 und Recht)’의 약칭이다. 말 그대로 사사건건 ‘시비’다. 하지만 이 무수한 시도와 토론과 자정작용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가벼이 넘길 수 없듯이, 보이지 않는 인간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헌법 또한 가벼이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K-방역 소식이 들려온다. ‘안심밴드’란 이름을 붙인 전자팔찌를 내놓더니, 이제는 가는 곳마다 QR코드를 찍어 사람들의 출입기록을 저장한다. 신체에 직접 닿는 전자팔찌는 비판이 심해 이름도 바꾸고, 무단이탈자의 경우만 동의를 받아 착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QR코드는 편리성만 부각될 뿐 토론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일방적이고 강력한 조치에 환호와 지지가 들려온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모바일 기기 사용 수준과 기술이 뛰어나고 자부심도 강하다. K-방역의 혁혁한 공로자다. 이제는 스마트폰 속에 사는 내 삶의 권리에 대해서도 한 번쯤 살펴보면 어떨까. 단호한 K-방역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모든 조치를 ‘시비’ 없이 따르는 나의 모습이다.
2020.06.06 미디어오늘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