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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3. 2021

바다와 구름 사이의 오솔길, 흑산도 트레킹

흑산도에서 기억해야 할 이름 김이수, 문순득 그리고 장창대

주) 2019년에 썼던 답사 후기다. 흑산도에서 기억해야 할 이름은 김이수와 문순득과 장창대라고 썼는데, 장창대에 관한 영화(<자산어보>)는 만들어졌다. 이제 김이수와 문순득이 남았다. 



흑산도 동백나무 숲길을 걷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많이 본 동백나무 숲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강진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에 본 숲과 많이 닮았다. 그랬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는 같은 이유로 유배당했고 비슷한 풍경의 동백나무 숲길을 걸었을 것이다. 


동백나무 숲길이 시작된 마을의 이름은 소사리였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라는 설명이 달린 마을이다. 섬에서는 드문 풍경이다. 예전에 소사리마을 사람들은 항구 마을에 땔감을 가져가서 팔고 쌀과 생필품을 구입해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소사리마을을 가로질러 소사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후박나무 군락과 동백나무 군락 그리고 구실잣밤나무 군락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사철 짙푸른 상록수로 덮여 있기 때문에 ‘산이 검게 보이는 섬’이라는 뜻의 ‘흑산도(黑山島)’로 불리게 되었다.


소사천은 말 그대로 개천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섬에서 이런 개천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섬에서는 물이 귀하다. 개천을 따라 올라가는 계곡길이 제법 깊다. 동백나무 숲이 울창한데 햇볕을 받으려고 경쟁하듯 서로 웃자라서 키만 컸다. 고개까지 오르는 내내 하늘을 보지 못했다. 긴 나무 동굴을 지나는 동안 향토사학자 이영일 선생은 황칠나무 등 흑산도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알려주었다.


계곡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숲에서 내려오는 남자와 마주쳤다. 군 점퍼를 입고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영일 선생은 대뜸 신원부터 물었다. 흑산도 주민이라고 했다. 이영일 선생은 “흑산도에는 풍란을 불법 채집하는 사람이 많아 확인해보았다. 산에서 장화 신은 것을 보니 흑산도 사람이 맞는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힘들게 고개를 오르니 분기점이 나왔다. 왼쪽(남쪽)으로 가면 깃대봉(382m)과 문암산(405m), 오른쪽(북쪽)은 칠락산(302m) 방향인데 우리는 오른쪽으로 꺾었다. 깃대봉과 문암산 쪽이 더 탐이 났지만 이 선생은 그쪽으로는 등산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힘들다고 했다. 분기점에서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잠시 빠지는 길이 나오는데 ‘공돌바위’ 가는 길이다. 장사가 공기놀이를 하다 얹어놓았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로 전망이 일품이다.



깃대봉과 문암산 너머에는 정약전과 면암 최익현이 유배당했던 사리마을이 있다. 사리마을은 흑산항에서도 산 넘고 물 건너야 닿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이다. 흑산도 하면 유배지이고, 유배지 하면 정약전과 최익현의 이름을 들먹인다. 최익현은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당했다. 그런데 이것이 흑산도를 기억하는 옳은 방식일까. 정약전의 이름으로 혹은 최익현의 이름으로 흑산도를 기억하는 방식은 육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흑산도와 섬의 시선으로 보면 다른 이름이 나온다. 바로 문순득과 장창대, 그리고 김이수이다.


문순득은 정약전이 흑산도에 들어오기 전 거쳤던 우이도에서 만난 홍어 장사꾼이다. 그는 흑산도 부근 태도(상태도·하태도)에 홍어를 구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필리핀까지 표류하고 3년 2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다이내믹한 표류 경험을 정약전이 받아 적은 책이 바로 〈표해시말〉이다.


흑산도에 딸린 섬 대둔도에서 살던 장창대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쓰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청년이다. 사리마을에서 서당을 열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약전은 물고기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막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때 장창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민들 대부분은 자기가 잡아온 물고기의 이름과 특성을 제대로 몰랐는데, 청년 장창대는 막힘없이 술술 설명해주었다. 장창대의 도움으로 정약전은 흑산도 주변의 물고기 155종에 대한 명칭·분포·형태·습성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다음은 김이수다. 소설가 김훈이 〈흑산〉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 조사차 흑산도를 방문했을 때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곳이 바로 김이수 묘역이었다. 장창대와 마찬가지로 대둔도 출신인 김이수는 한지 재료인 닥나무에 매기는 세금 때문에 흑산도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자 한양에 가서 임금에게 격쟁을 올려 이를 시정하도록 했다. 김이수 묘역을 찾은 김훈은 엎드려 절하며 예를 표했다고 한다.



문순득과 장창대와 김이수. 흑산도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정약전이나 최익현에 앞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흑산도에서 이들의 이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정약전이 사리마을에 만들었던 ‘사촌서당’을 복원했고, 최익현이 진리마을에 ‘일신당’이라는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한 것을 기려 유허비를 세웠다. 하지만 김이수 묘역 말고 문순득과 장창대의 이름은 보지 못했다.


고갯마루에서 칠락산까지 향하는 길은 내내 능선길이다. 능선길에 이르면 키 큰 교목은 별로 없고 키 낮은 관목이 대부분이어서 시야가 시원하게 열린다. ‘큰재’에 가까워지면 제법 가파른 바위를 만나게 된다. 바위 위에 오르면 양옆으로 호위무사처럼 늘어선 섬이 보인다. 왼쪽(서쪽)은 대장도, 오른쪽(동쪽)은 영산도다. 이들 섬과 북쪽의 다물도·대둔도를 아울러 ‘흑산군도’라 부른다. 이영일 선생은 대장도에 있는 습지가 국내 습지 중 손꼽히는 곳이라며 꼭 가보라고 권했다.


흑산도에도 다양한 해식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시스택·파식대·해식동·해식애 등 해식 지형이 흑산도에 두루 나타난다. 시스택(sea stack)은 암석해안에서 침식에 강한 부분만 떨어져 남아 생긴 작은 바위섬을 말하는데, 예리마을 북동쪽에 소설 〈어린 왕자〉의 보아뱀(혹은 중절모)을 닮은 시스택이 있다. 사리마을 남동해안 입구에는 여러 개의 시스택이 열을 지어 ‘칠 형제 바위’라 불린다.


파식대(wavecut platform)는 파도에 해변 암반의 표면이 깎이면서 생긴 평평한 침식면을 말하는데, 예리마을 동쪽 암석해안 돌출부에 이런 지형이 두루 보인다. 해식애(sea cliff)는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급한 절벽으로 파도가 강한 암석해안에서 잘 발달한다. 흑산도에는 대봉산 남쪽 해안에 자라목처럼 형성된 해식애가 있다. 해식동(sea cave)은 해식애가 파도의 침식을 받아 붕괴하거나 풍화되어 생긴 동굴이다. 진리마을 북쪽 해안에 마치 홍예문처럼 형성된 해식동이 있다.



흑산도 트레킹 코스는 보통 큰재에서 오른쪽(동쪽)으로 꺾어 칠락산 봉우리들을 타고 샘골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위쪽(북쪽) 마리재로 넘어갔다. 마리재에서 찻길로 내려오면 소설가 김훈이 참배했던 김이수 묘역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상라산 쪽으로 가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를 만난다.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 흑산도의 경관을 독차지하며 걸었는데, 노래비를 기점으로 흑산도 여행은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는 흑산도에 관광을 오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다. 관광버스 10여 대가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관광객 수백 명이 우르르 내렸다. 관광객들은 노래비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바로 옆의 상라산전망대도 올라보지 않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흑산도의 관광산업은 이런 식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관광객들이 외면한 상라산전망대에 오르면 흑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동쪽으로는 다물도와 대둔도가 보인다. 흑산항처럼 큰 만이 형성된 대둔도는 어업이 활발하다. 상라산전망대에서는 흑산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흑산항은 섬 지역의 만으로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가 어항급’ 항구다.



위도·연평도와 함께 3대 조기 파시(바다 위에 형성된 어시장)가 열렸던 흑산도는 풍요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흑산도 사람들은 파시가 서면 “파수가 들었다”라고 말하는데 파시가 열릴 땐 섬에 돈이 넘쳐났다. 섬에 유흥업소만 40~50곳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유흥음식점으로 등록된 곳이 7개 있다. 이 유흥업소는 그대로 흑산도에 놀러 온 관광객들이 활용한다.


전성기 때 흑산도에서는 1~4월 조기 파시, 2~5월 고래 파시, 6~10월 고등어 파시가 열렸다. 거의 1년 내내 파시가 형성된 셈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래 파시도 유명했다. 기록에 따르면 흑산도 예리마을의 고래 판장에서 해체된 고래가 1300여 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파시 가운데 조기 파시가 가장 컸다. 흑산도는 조기가 들어오는 첫 번째 길목이다. 파시가 열릴 때는 어선 3000~4000척이 흑산항에 운집했다. 지금은 흑산도 전체 어선이 400척 정도다(이 중 10여 척은 무동력선).


요즘 흑산도의 주력 어종은 뭐니 뭐니 해도 홍어다. 홍어는 사시사철 잡을 수 있지만 2~3월에 가장 많이 잡히고 이때 잡히는 홍어가 제일 맛있다. 홍어는 흔한 생선이었지만 남획으로 고갈되어 이제는 비싼 생선이 되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어획량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했다.


흑산도에 오면 평소 홍어를 안 먹던 사람들도 홍어에 도전하는데, 흑산도에서는 다른 해산물도 맛있다. 이번 흑산도행에서는 우럭미역국과 장어간국 그리고 꽃게무침을 먹었는데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별미였다. 요즘은 흑산도 앞바다에서도 전복 양식을 해서 싸고 질 좋은 전복을 구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선한 홍어를 가장 맛있게 먹은 곳은 흑산도가 아니라 ‘총리 밥상’으로 유명한 목포 오거리식당이었다.



상라산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산허리를 둘러싼 상라산성(반월성)을 볼 수 있다. 상라산성은 통일신라 때에 장보고가 세운 성으로 알려져 있다. 완도에 청해진을 구축하고 난 뒤 서해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막고 중간 요충지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에 산성을 쌓았다. 흑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리마을의 고인돌과 패총 유적이 선사 시대부터 이 섬에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상라산성에서 진리마을까지 내려오는 길은 ‘흑산’이 아니라 ‘은산’이다. 동백나무 잎이 봄 햇살을 반사해 은빛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상라산 전망대 입구에서 진리마을까지 멋진 동백나무 원시림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에 산책로는 없고 찻길만 있다.


진리마을에 내려오면 난데없는 새 공원이 나온다. 진리마을과 내영산도·외영산도를 잇는 방파제 입구 쪽에 있는데 황량했다. 몇몇 작품은 목이 잘려 있었고 몇몇 작품은 넘어져 있었다. 태풍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적인 분탕질로 보였다. 작품 밑에 쓰인 작가 이름을 보니 대부분이 외국 작가였는데, 과연 그들이 흑산도가 어디에 있는 섬인지 알고나 작품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로 만든 ‘새 대가리’들을 보면서 이곳에 새 공원을 만든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잠시 궁금했다.


자료를 보니 흑산도에는 44과 195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법정보호종(멸종위기 1급)으로는 매와 흰꼬리수리 두 종이 있다. 이영일 선생은 이 새 관련 다큐멘터리가 흑산도에서 제작되기도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밖에 말똥가리·물수리·벌매·비둘기조롱이·새홀리기·솔개·잿빛개구리매·조롱이·참매·큰말똥가리·큰덤불해오라기·큰기러기 등 멸종위기 2급 종도 있다. 긴꼬리사막딱새와 가면올빼미는 흑산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되었다.



진리마을에 있는 배낭기미해변은 흑산도에서 가장 넓은 해변이다. 자갈 해변과 모래 해변이 섞이고 수심이 완만해서 해수욕하기에 좋다. 물속을 보니 미역·톳 등 해조류가 널려 있었다. 해송 아래 나무 데크도 설치해두어 캠핑을 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안전요원을 구할 수 없어서 해수욕장으로는 개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리마을을 지나 만을 거슬러 올라가면 흑산항이 있는 예리마을이 나온다. 예리마을 북동쪽 대봉산이 있는 곳이 흑산공항이 들어설 곳이다. 대봉산 쪽으로는 인가가 없다(기상관측소가 한 곳 있다). 완만한 언덕이 많아 초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흑산도 사람들은 주로 이곳에서 소를 기른다. 온화한 날씨 덕택에 겨울에도 소를 산에서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외양간이 없다. 흑산도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여주는 섬으로 여름철 평균기온은 23℃ 내외, 겨울철 평균기온은 0℃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연교차가 적은 곳으로 꼽힌다.


 흑산도에서 요즘 핫한 이슈는 흑산공항 사업 재개 여부다. 제3차 도서종합개발 10개년 사업(2008~2017년)의 대상 섬이었던 흑산도에 지역 주민과 관광객의 교통 불편을 해소한다며 정부가 총연장 1200m 규모의 소형 공항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아직 논쟁 중인데, 주민들은 대체로 찬성한다. 만약 공항이 건설된다면 흑산도를 포함한 흑산군도의 섬을 좀 더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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