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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ul 04. 2021

노잼도시 청주의 불온한 여행법

청주 여행의 키워드, '중심부의 주변성'


청주는 ‘3대 노잼도시(다른 두 곳은 울산과 대전?)’로 꼽히는 곳이다. 이 노잼 도시에 자주 갈 일이 있었다. 청주 원도심 역사문화벨트 조성 자문회의를 오가며 청주를 재밌게 여행하는 법을 고민해 보았다. 


현대 청주(인)의 지배적 심상은 대략 세 가지 정도다. 하나, 교육도시. 둘, 의뭉스러운 사람들. 셋, 노잼도시. 불온한 청주 여행법은 이 세 가지 심상을 죄다 반전시키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다.


교육도시/충절의 도시에서 '반역의 도시'로. 

의뭉스러운 사람들은 그것을 읽어내는 재미로. 

노잼도시는 새로운 재미를 그려낼 수 있는 백지도시로. 


여기서 주안점을 둔 것이 '중심부의 주변성'이다. 청주에서 느낀 것은 '중심부의 주변성'이었다. 대한민국 특히 남한의 중심부에 위치하지만 청주는 늘 주변적인 도시였다. 광주나 대구가 '주변부의 중심성'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라면 청주는 그 반대다. 


'중심부의 주변성'이 청주 사람들의 의뭉스러움을 만들어 낸 배경이 아닐까 싶다. 중심이라는 인식도 있고 중심이 되려는 욕망도 있지만 그러기엔 뭔가 부족한 상태에서 택한 전략적 조심스러움? 


첫 의문은 왜 충청병사 관사가 청주목사 관사의 목을 누르듯이 배치되었을까 하는 부분에서 생겼다. 일반적인 인상과 다르게 청주는 반란의 도시였다. 이괄 정여립 홍경래 등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모반 사건으로 꼽히는 이인좌의 난이 청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인좌의 고향이며 처음 발호한 곳이 청주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주동자가 청주 출신이고 청주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인좌의 난은 '영남 선비들의 난'으로 해석되고 영남 차별의 근거가 되었다는 부분이다. 모든 난은 주동자 중심으로 정의되는데 이인좌의 난은 다소 예외였다. 그 부분이 조선 사회에서 청주가 갖는 위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에게 청주는 괘씸하지만 내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인좌의 난 이후 청주목에서 서원현으로 살짝 격하하기도 하지만 청주는 이내 지위를 회복한다. 호남과 영남을 내치고 수도권과 기호지방 선비 중심으로 조정을 구성했기 때문일까? 왕은 청주를 버릴 수 없었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역사를 전공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이후 조선 중기 청주는 반란의 본향이었다. 1748년에 이지서가, 1763에 이인좌의 난 주동자 중 한 명인 신천영의 조카 신정관이 제주에서, 1804년에 한유의 후손 한해우가 난을 일으켰다. 보은에서 역모가 있을 때 청주 사람 신필재가, 옥천에서 역모가 있을 때 청주 사람 조철이 함께 했다. 


반란의 아우라가 남긴 청주의 두 걸출한 인물로는 단재 신채호와 벽초 홍명희를 꼽을 수 있다. 아나키스트 신채호와 홍명희가 그린 임꺽정에게서 반란의 박력이 느껴진다. 청주는 절대 노잼도시가 될 수 없는 곳이다. 


청주는 노잼도시의 탈을 쓴 핵잼 도시다. 반역의 도시 청주와 '중심부의 주변성'으로 청주인의 의뭉스러움도 설명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중심부에 끼워주는 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하고, 풍부한 개김의 추억이 그들에게 본심을 숨기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반역은 현대에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괄 정여립 홍경래 등 조선시대 반역자들은 현대에 재평가되었다. 현대에 욕먹는 반역은 별로 없다. 모순 타파의 몸부림으로 읽힌다. 다시 생각해보면, 충절의 고장은 출세에 목맨 고장이라 할 수 있다. 


반란의 본향 청주 여행법은 간단하다. 청주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는데 역사문화 공간은 대부분 동쪽에 집중되어 있다. 청주향교에서 내려와 육거리 시장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보면 청주의 근대(조선) 근현대(일제) 현대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청주향교 대로를 막아서며 일제강점기 들어선 충청북도청과 향교 옆에 건방지게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도지사 관사(이것도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곳, 지금은 시민 문화시설로 바뀜)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청주목사와 충청병사 관사가 있던 곳을 지나면 청주시청이 나온다. 이 도심축에 역사문화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 


외곽에 있는 상당산성은 청주를 조망하기 좋을 것이고, 정동북토성은 석양의 실루엣을 감상하기 좋을 것이고, 연초창을 개조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분관에서는 청주인의 문화예술 역량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수암골을 비롯해 도심을 내려다보는 산 언저리는 산책하기에 좋을 것이다. 


청주에 회의 세 번 가보고 과잉 해석한 것일 수도 있는데, 암튼 이 가설을 가지고 청주여행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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