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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5. 2021

몽골 초원 걸으며 호연지기 풀장착, 몽골올레 답사기

'칭기즈퀸' 서명숙 제주올레이사장이 몽골올레를 놓을 때 동참했다


‘칭기즈퀸.’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의 새로운 별명이다. 새로 개장한 몽골올레를 걸어본 올레꾼들은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고향에 평화의 길을 놓았다는 의미로 이런 별명을 지어주었다. 몽골올레 개장식이 2017년 6월 몽골올레 현장에서 열렸다. 제주올레 이름을 붙인 트레일 코스는 규슈올레(2012년 개장)에 이어 몽골올레가 두 번째다. 이 역사적인 여행에 동행했었다.


서명숙 이사장이 규슈올레를 개장할 때도 동행했는데 그때 함께 갔던 제주의 자원봉사자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귤 품종 개량을 위해 규슈에 농업 답사를 많이 왔었다. 그때마다 도둑 취급을 받으며 묘목을 훔쳐가지 않나 소지품 검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로열티를 받고 우리 이름을 붙이고 노하우를 전수하러 왔다니 꿈만 같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몽골올레는 몽골 여행자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초원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몽골에 트레일 코스가 없어 그동안 많은 여행자들이 아쉬워했다. 아이러니이기도 한데 사실이 그랬다. 몽골 사람들은 주로 말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트레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안은주 제주올레재단 이사는 “몽골올레 탐사팀이 길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외국 여성 트레커들을 만났다. 언덕이 너무 많아 헷갈리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들을 게르(몽골식 텐트)에 데려다주며 몽골올레의 필요성을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그 여행자들이 걸었던 곳은 칭기즈칸 어워(둥그렇게 쌓아 올린 돌탑)가 있는 곳으로 이번에 몽골올레 2코스가 놓인 곳이다.



제주올레재단은 올해 몽골올레를 출범시키며 두 코스를 열었다. 첫 번째는 복드항산 코스(14.5㎞), 두 번째는 칭기즈산 코스(11㎞)다. 복드항산은 시베리아 숲의 남쪽 마지노선으로 몽골에서는 신성한 산으로 여겨진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까워 차를 타고 30분 정도만 가면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복드항산 남쪽 구릉지대의 마을 두 곳으로 올레길이 조성되었다. 멋진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마을길을 걸으며 사람 사는 풍경을 보라는 제주올레의 원칙은 몽골올레에도 적용되었다.


복드항산 코스를 조성할 때 제주올레 팀은 길 표식에 애를 먹었다. 제주올레는 간세(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모양)·화살표·리본 등으로 길을 표시하는데, 몽골 초원에는 리본을 묶을 나무, 화살표를 그릴 담벼락, 바위 등이 없었다. 그래서 수를 낸 것이 몽골의 어워처럼 조그만 돌탑을 쌓고 거기에 깃발을 꽂는 방식이다. 길을 걷는 사람이 돌을 보태면 표식이 더 단단해진다.



복드항산 코스는 하늘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하늘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제주에서 오름을 올라본 사람들은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제주의 오름에서 포토샵으로 나무를 지우고 푸른색을 황갈색으로 바꾸면 바로 복드항산 코스가 된다. 초반부에 제주의 오름과 같은 언덕 4개를 연속해서 오르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땅과 하늘이 맞닿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갈과 짧은 풀밖에 없어 황량해 보였는데 걸어보니 메뚜기 천지였다. 발을 디딜 때마다 수십 마리가 팔짝 뛰었다.


4개 언덕을 지나면 게르 숙영지로 향하는 초원길이 나온다. 게르 10여 채가 있는 숙영지에서는 용변을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후반부 코스는 예전 군부대 자리 옆으로 지나가는데 군 훈련장 잔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금 황폐해 보이기도 하지만 몽골을 경험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도착 지점에 다다르면 마을 하나를 가로지르게 되어 있어서 몽골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맑은 얼굴의 몽골 아이들이 여행자들에게 밝은 인사를 하며 피로를 씻어준다.



몽골올레 2코스인 칭기즈산 코스에서는 압도적인 풍광을 경험할 수 있다. 몽골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칭기즈산은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칭기즈산 코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테를지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툴 강을 따라 평원을 걷는 길이다. 후반부는 칭기즈칸 어워가 있는 칭기즈산 기슭을 넘는 코스다. 칭기즈산도 복드항산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별로 없는데 툴 강을 따라서는 자작나무와 버들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볼 수 있다.


칭기즈산 코스의 전반부 풍경은 툴 강이 좌우한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바닥이 몽돌이라 물이 맑다.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있어 길이 지루하지 않다. 강 건너편에서 고삐 없는 말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데 말들의 모습이 그대로 강에 비쳤다. 더할 수 없이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양, 염소, 소, 야크 등 다양한 동물의 방목장도 지나게 된다. 평원을 지나는 동안 몽골 유목민의 전형적인 생활 모습도 볼 수 있다. 휴양 온 몽골인들이 게르에서 야크치즈나 마유주를 구입해 가는 모습도 보았다.



점심 도시락을 먹기 좋은 툴 강의 징검다리 휴식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언덕이 나오기 시작한다. 칭기즈산 코스의 언덕은 복드항산 코스의 언덕과 다르다. 비슷한 높이의 언덕이 반복되었던 복드항산과 달리 이곳은 언덕을 넘으면 더 높은 언덕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낮은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높은 언덕이 언덕을 넘으면 나온다는 것이었다. 더 높은 언덕에 오르면 조망도 좋아져서 낮은 언덕에서는 낮은 언덕밖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더 높은 언덕과 웅장한 산을 허락했다. 이렇게 네 번 언덕을 넘게 된다.



칭기즈산 언덕에는 두 개의 어워가 있다. 세 번째 언덕 위의 어워에는 검은 말총으로 장식한 깃대가 꽂혀 있다. 이 어워는 전쟁을 상징한다. 전쟁에 나가기 전 몽골의 장수들은 이 어워에 제사 지내며 승리를 기원했다. 네 번째 언덕 위의 어워는 흰 말총으로 꾸민 깃대로 장식되어 있다. 이 어워는 평화를 상징한다. 호전적이었던 몽골인들이 전쟁보다 평화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칭기즈산은 네 번째 언덕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올레꾼들은 이 언덕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하고 내려가게 된다. 지대가 높아 상승기류를 탈 수 있는 이곳에서 매를 훈련하는 몽골인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날은 없었다. 언덕을 넘어가면 독특한 모양의 남근석이 나오는데 여기를 돌아 내려오면 칭기즈산 코스의 종점이 나온다.



몽골올레 개장 이후 칭기즈산 코스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몽골에 봉사단체들도 많이 가는데 귀국 전 꼭 들르는 곳이 테를지 공원이기 때문이다. 의료 봉사를 온 가수 이정씨와 열린의사회에서 진료 봉사를 마치고 이 길을 걸었고, 단체 연수를 온 아쇼카 재단 관계자들과 펠로(Fellow)들도 이 코스를 체험했다.  


제주올레는 길 관리법을 비롯해서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서명숙 이사장은 “코스 유지와 보수뿐 아니라 제주올레 기념품인 간세 인형(못 쓰는 조각 천을 이용해 만든 인형) 제작법과 여행자센터 운영 노하우 등 자립형 생태여행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 발발로 제주올레의 몽골올레 사업이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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