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쿠시마(屋久島) 원시림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나가노 현의 아카사와 자연휴양림(赤沢自然休養林)을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도 시대부터 막부 차원에서 관리했다는 아카사와 휴양림은 매우 웅장했다. 근대 이후의 일본 정부 역시 이 숲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러지고 썩은 편백나무가 그대로 방치되면서 숲의 일부로 편입되어 새로운 나무의 숙주가 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산은 바위가 이정표인데 일본은 나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규슈 올레의 다케오 코스에서 만난 녹나무 ‘다케오노오쿠스’와 ‘가와고노오쿠스’는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나무다. 두 나무의 연령은 무려 3000년에 이른다. 다케오 신사에 있는 ‘다케오노오쿠스’에는 금줄이 둘려 있다. ‘가와고노오쿠스’는 500여 년 전 벼락을 맞아 나무 기둥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다케오노오쿠스'처럼 신물(神物)로 숭배된다.
이런 풍경들에 압도당한 나에게 누군가 야쿠시마 원시림에 대해 속삭였다. 아카사와 숲보다 더 자연 그대로인 곳이 있다고. 그곳에 가면 ‘다케오노오쿠스’와 ‘가와고노오쿠스’의 곱절 넘게 살아온 수령 7200년의 ‘조몬스기(조몬 삼나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야쿠시마 원시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무대가 된 곳이라고도 했다.
야쿠시마 원시림을 가로지르는 종주는 보통 요도가와 등산로 입구(1400m)에서 시작한다. 하나노에고 습지(1630m)를 지나 미야노우라다케 정상(1936m)을 거친 다음 신다카쓰카 산장(1500m)이나 다카쓰카 산장에서 1박을 한다. 이튿날 수령 7200년 된 조몬스기(1400m)와 윌슨 그루터기(1000m)를 본 뒤 산림철도를 지나 쓰치 고개(980m)를 넘어 시라타니운수이 협곡(600m)에서 종주가 마무리된다.
2014년에 취재를 위해 갔다가 2018년 시사IN 트래블에서 '야쿠시마 트레킹'을 기획해 다시 갔는데, 내 기억력을 원망했다. 무지 힘들었다. 하루에 산길을 11㎞ 정도씩 걸어야 하고 가파른 언덕도 제법 있어서 어느 정도 등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만 추천할 만한 코스다. ‘두 발로 누리는 불편한 사치’라 할 수 있는 야쿠시마 원시림 종주는 등산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숲의 풍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조금 힘들지만 야쿠시마 종주를 권하는 이유는 이렇게 섬을 가로질러 걸어야 ‘수직 식물원’이라 불리는 야쿠시마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고산과 마찬가지로 야쿠시마 역시 고도에 따라 식생이 다른데, 아열대 기후부터 아한대 기후까지 두루 나타난다.
야쿠시마 공식 가이드북에는 고도마다 평균기온이 같은 일본 도시가 표기되어 있다. 가고시마(400m), 교토(600m), 가나자와(750m), 센다이(1400m), 아오모리(1700m) 순서인데, 정상부는 혼슈의 최북단인 시모키타 반도와 기후가 비슷해 겨울 적설량이 3~6m에 이른다. 야쿠시마를 종주하는 것만으로 일본 전역의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
야쿠시마에서는 수령 1000년 이상 된 삼나무를 ‘야쿠스기(屋久杉)’라고 부르고 1000년 미만의 삼나무는 ‘코스기(小杉, 어린 삼나무)’라고 부른다. 요도가와 등산로 입구에서 요도가와 산장에 이르는 길에서는 주로 코스기를 보게 된다. 종주 반대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곧은 삼나무가 많은데 인공으로 조림되었다는 의미다.
요도가와 산장은 등산로 입구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보통 여기서 아침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사슴 야쿠시카들이 얼쩡거리곤 한다. 4년 전에 종주할 때는 야쿠시카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일행이 많아서인지 보지 못했다. 아침을 먹고 산장을 나와 계곡을 건넜다. 계곡 물이 말할 수 없이 맑았다. 야쿠시마는 화강암이 바다에서 융기해 만들어진 섬이라 섬의 대부분이 화강암과 풍화토다. 화강암이 부서져 생긴 모래 위로 흐르는 계곡 물이라 맑았는데, 그 위로 적당히 단풍 든 활엽수가 있어서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요도가와 산장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으면 하나노에고 습지에 닿는다. 해발 1600~1700m 고지대에 습지가 있다는 것도 특이한데 그 주변을 고사목이 장식하고 있어서 더욱 신비롭다. 촉촉한 대지 위에 마른 고사목이 대비되면서도 잘 어울렸다. 보통 물이 있는 곳 근처에는 짐승이 있는데 여기서는 서로 이를 잡아주는 야쿠시마 원숭이 한 쌍을 볼 수 있었다.
사슴 2만 마리, 원숭이 2만 마리, 사람 2만 명(실제로는 1만4000명 정도)이 산다는 야쿠시마에서는 사슴과 원숭이를 종종 볼 수 있다. 역설이 있다. 사람이 많이 움직이면 사슴과 원숭이를 볼 가능성이 낮아진다. 반대로 혼자 혹은 소규모로 움직이면 이들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 숲의 주인인 사슴과 원숭이는 조용히 서서 혹은 앉아서 끙끙대며 산길을 걷는 인간을 관찰한다.
하나노에고 습지를 지나 바위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산길을 오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부의 초지가 드러난다. 사람 키 높이의 조릿대 사이로 등산로가 나 있는데 곱슬머리를 가르는 가르마처럼 말끔하게 뻗어 있다. 조릿대 언덕 위에는 마치 이정표처럼 특이한 바위들이 있다. 두부를 잘라놓은 모양을 한 ‘두부 바위’가 유명하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온 제국군의 얼굴을 닮은 바위도 있다.
하나노에고에서 두 시간 정도 걸으면 한라산보다 조금 낮은 미야노우라다케 정상(1936m)에 서서 사방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야쿠시마는 산악성 섬으로 꼽힌다. 1000m 이상 되는 산을 오쿠다케(奥岳)라 부르고 외곽의 500m 전후의 산을 마에다케(前岳)라고 부른다. 남서쪽 방향을 보면 오쿠다케가 전형적인 악산의 능선을 보여준다. 반면 동북쪽으로는 높은 산이 없어서 마에다케의 산등성이 사이로 바다를 볼 수 있다.
야쿠시마 정상부의 관람 포인트는 구름이다. 야쿠시마의 북서쪽 사면은 푄 현상 때문에 늘 구름이 끼는 곳으로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촉촉하다. 1년 강수량이 1만㎜에 육박한다. 정상부에서 구름의 실시간 이동을 볼 수 있다. 미야노우라다케를 둘러싼 오쿠다케가 구름이 끼었을 때는 중국 장가계를 닮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구름이 걷히면 뉴질랜드 남섬을 연상시킬 만큼 짙은 초록의 초지와 바위를 볼 수 있다.
정상부에서 조몬스기로 내려오는 길에는 고도에 따른 식생 변화를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조릿대가 끝나는 지대에서 시작되는 나무는 랄리구라스다. 일본에서는 만병초(만병을 고칠 수 있는 식물)로 알려져 있는 이 나무는 네팔의 국화이기도 하다. 이 랄리구라스 줄기 사이로 등산로가 터널처럼 나 있어서 제주도 곶자왈을 연상시킨다.
랄리구라스 지대를 지나면 야쿠스기가 나오기 전에 등나무과 나무들이 주로 자라는 지대를 지나게 된다. 고도가 더 낮은 야쿠스기 지대에서는 이 등나무과 나무들이 삼나무 사이에 마치 기생식물처럼 자란다. 이 높이에서는 이들이 주역으로, 고도에 따라 숲의 주연과 조연이 바뀌는 모습이 재미있다. 등나무 숲이 삼나무 숲으로 바뀔 무렵 신다카쓰카 산장이 나타난다. 1박2일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묵거나 30분 거리의 다카쓰카 산장에 여정을 푼다.
다음 날 일정은 신령스러운 삼나무 조몬스기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다카쓰카 산장에서 1시간 정도 내려오면 드디어 조몬스기가 나온다. 조몬스기를 둘러싸고 부챗살 모양으로 전망 데크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여러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다. 전날 종주를 할 때는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 10명도 안 되었는데(종주자 중에는 외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많다), 조몬스기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당일 코스로 조몬스기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일 코스라도 조몬스기를 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품을 들여야 한다. 왕복 22㎞ 거리라 9~10시간 정도 걸린다. 당일 왕복 코스는 주로 산림철도를 따라 걷지만 마지막에 급경사로 500m 정도를 올라가야 하므로 만만치 않다. 야쿠시마 가이드들은 조몬스기 종주 시 올라갈 때 하는 말과 올 때 하는 말이 다르다. 갈 때는 여든 살 먹은 노인들도 가는 곳이라며 쉽다고 사람들을 격려한다. 내려올 때는 관람객들의 성취를 격려한다. 후지산을 등산할 때(약 2만8000걸음)보다 조몬스기를 보고 올 때(약 3만8000걸음) 더 많은 거리를 걷게 된다며 치하한다.
조몬스기와 같은 야쿠스기들이 수천 년 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야쿠시마가 척박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화강암 풍화토 지역이어서 영양분이 많지 않아 자라는 것이 더뎠다. 그래서 야쿠스기는 다른 지역 삼나무에 비해 나이테가 촘촘하다. 보통 일본 다른 지역의 삼나무는 500년 정도 자라는데 이곳에선 1000년 넘는 야쿠스기가 많다. 얇은 흙 표면에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해 뿌리가 지표면을 뚫고 나와 굳건하게 뻗어 있다.
조몬스기에서 윌슨 그루터기까지 내려오는 길에는 조그만 골짜기들이 많다. 골짜기에는 박스를 쌓아놓은 것처럼 바위가 포개져 있는데 이끼에 둘러싸여 있어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트롤을 연상시킨다. 윌슨 그루터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초지의 대불전 건축을 위해 잘라간 삼나무 자리에 생겼다. 야쿠스기를 세계에 알린 미국인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 박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루터기 안이 비어 있어서 들어갈 수 있다. 마치 큰 방안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루터기 안에서 하늘을 찍으면 그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데 하트 모양이 나오게도 촬영할 수 있다.
윌슨 그루터기에서 더 내려오면 산림철도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한 시간 정도는 평지를 걸을 수 있다. 일본 산의 장점은 골이 깊다는 것이다. 숲이 우거져 나무들이 머금은 물도 많고 강수량도 풍부해서 계곡물도 많은 편이다. 산림철도를 따라 걸으면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산림철도 길에서는 꼭 봐야 할 야쿠스기가 있다. 바로 삼대목(三代木)이다. 삼나무가 죽은 자리에서 썩은 삼나무를 숙주 삼아 그 삼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워 자란다. 그리고 이 삼나무가 벌목된 뒤에는 그루터기에 이끼가 끼고 그 삼나무의 씨앗이 거기서 자라 삼대목이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은 야쿠시마 숲에서 ‘끝났어도 끝난 것이 아니다’로 바뀐다.
야쿠시마 종주의 백미인 시라타니운수이 협곡(白谷雲水峡)을 보기 위해서는 구소가와 갈림길에서 쓰치 고개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1박2일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260m 정도의 언덕을 올라가게 하는 것이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다. ‘흰 골짜기와 구름, 물이 어우러진 협곡’에서 이끼 광장을 보지 않고는 야쿠시마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쓰치 고개 언덕 위에 가면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지만 다이코이와 바위에 꼭 들러야 한다. 〈원령 공주〉에서 늑대 엄마가 휴식을 취한 곳으로, 인간 또한 힐링할 수 있다. 야쿠시마 주봉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종주하며 걸어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볼 수 있다.
쓰치 고개에서 시라타니 산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걸어야 한다. 야쿠시마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끼의 광장’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야쿠시마의 이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령 공주〉에 나오는 숲의 신 ‘시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늠름한 야쿠시카가 이 ‘이끼의 광장’에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이끼를 표현할 때 ‘이끼가 끼다’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정상적인 생태계 작동이 안 되어서 정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야쿠시마에서 이끼는 다른 의미다. 이끼는 생명의 시작이다. 이끼가 수분을 머금고 흙을 붙들어서 새로운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 숲의 부활을 돕는다. 즉 생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여기서는 ‘이끼가 자란다’고 해야 맞다.
사실 야쿠시마 숲은 역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 숲을 배경으로 한 〈원령 공주〉를 자연을 파괴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을 그렸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인간과 자연을 선악 구도로 나누지 않고 단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쟁투하는 것을 묘사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야쿠시마 원시림을 직접 걸어보면 후자의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느낄 것이다. 화강암과 이끼와 물과 나무가 얽히고설켜 서로의 생명을 붙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원령 공주〉에서 선함에도 악함이 있고 악함에도 선함이 있으며 다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야쿠시마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삼나무를 벌목할 수 있게 막부에 건의한 스님도 숭배하지만, 원시림을 보호하기 위해 벌목을 중단시킨 환경운동가도 칭송한다. 시대에 따라 정의가 바뀐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야쿠시마 숲은 그런 역설이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