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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6. 2021

김정운 교수는 왜 섬에 은둔하는가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그는 나르시시스트다. 나르시시스트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삶을 단순화시킨다. 교수직을 던지고 일본의 미술 전문대학에 입학하고, 돌아와서는 지방도시로 삶의 중심을 옮기고, 거기서도 더 고립되기 위해 섬으로 들어간 곳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섬 작업실 앞에 사람들이 구경 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 위대한 나르시시스트의 다음 행선지는 무인도가 아닐까 싶다. 교수질을 때려치우고도 행복하게 살 고 있는 김 교수는 내가 기자질을 때려치우는데 가장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다. 고독한 여행가가 될 용기를 준 그를 기억하며...


아래 인터뷰는 그가 일본에서 막 돌아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냈을 때 했던 것이다(2016년). 



시작은 ‘그리스인 조르바 흉내 내기’였다. 서평을 위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던 그는 조르바처럼 자유를 찾겠다며 교수 직함을 내려놓았다. 잠시 휴직한 것이 아니라 아예 대학에 사표를 냈다. 만 50세 되던 2012년 새해 첫날 그는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라며 모든 것을 멈추고 일본으로 갔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는 교토 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 입학해 일본화를 전공했다. 독일 박사 출신의 대학교수였던 그는 이제 자신을 전문대를 나온 백수라고 설명한다.


일본에서 4년여 시간을 보내고 귀국한 그는 ‘외로운 복음’을 설파하고 있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진한 외로움을 겪을 때 그는 조르바를 흉내 내면서 “그따위 두려움은 개나 물어가라지” 하며 버텼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로워야 자신을 알 수 있고 자기를 알아야 제대로 된 소통을 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펴낸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는 외로움에 대한 그의 철학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일본으로 떠날 당시 그는 인기 방송인이자 기업체에서 두루 모셔가는 최고 강사였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자발적 유배’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여수로 내려가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이미 여수에 살 집도 계약을 마친 상태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급변침’하게 만들었는지, 그의 외로움에 대한 철학과 행복을 들어보려고 작업실을 찾았다. 성격 급한 그가 질문을 막으며 먼저 화두를 던졌다. “잘 나가는 교수 때려치우고 왜 그랬냐고 묻지 말아 달라,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얘기다.”



왜 바보 같은 얘긴가?

생각을 해보라. 예전에 평균수명이 60~70세일 때는 교수 끝내고 바로 죽으니까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은 90~100세 시대다. 이런 시대에 교수는 정말 최악이다. 은퇴 이후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바로 교수다. 새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에서는 50세 전후에 잘린다.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때는 아직 힘이 있으니까. 그런데 교수로 은퇴할 때쯤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내가 교수를 그만둔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비겁하고 겁이 많아서 미리 도망친 것이다. 그리고 난 교수 체질도 아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사기 치는 기분이었다.


‘인간 김정운’이 정말 잘 팔리던 시점이었다. 최고 인기 방송인이자 기업체 강사였다. 인생의 정점에서 스스로 귀양을 갔다.

사실 켕기는 부분이 있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고 책을 내놓고는 나는 교수하면서 방송하고 강의하며 바쁘게 살았다. 사람들이 이걸 지적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교수여서인지 사람들이 내 얘기를 주목해서 듣는 것 같아 자존심도 상했다. 나는 굉장히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서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증명하고 자연인 처지에서 계급장 떼고 내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계급장 떼는 게 핵심인 것 같다.

40대만 하더라도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회사도 하나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50이 되니까 현실 인식이 되었다. 내가 어디까지 성취할 수 있느냐가 눈에 보였다. 주제 파악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남들이 볼 때 교수에다 TV에도 나오고 강연도 하고 책도 많이 팔리니까 성공한 삶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다 포기하고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맘만 먹으면 하루에 1000만~2000만 원도 벌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를 속이는 삶이었다. 강연하면서 자꾸 딴생각을 했다. 강의를 들을 때가 아니라 하면서도 딴생각이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이게 가능하다. 내가 너무 심심했던 거다. 그래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을 제대로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일본에 안 가고 활동을 지속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텔레비전 여기저기에 나와서 헛소리를 하고 있거나 정치권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지금 그런 거 안 하고 좋은 책 쓰면서 그림 그리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50대 남자가 타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기초생활’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을 착취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적응이 되었다.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해보면 재미있다. 시간을 최소로 들이는 요령도 생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진짜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하루가 이렇게 기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디 갔다.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가사노동 중에서 적성에 맞는 것이 있었나?

이불을 햇볕에 너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에 나올 때 이불을 널어두고 저녁때 들어가서 걷으면 뽀송뽀송해서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조그만 그릇들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초도 사 모았는데 촛불 켜고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림 공부 말고 또 무엇을 했나?

처음엔 한국 인터넷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컴퓨터를 끈 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랬더니 사람이 정말 생산적이 되더라. 



한국을 떠나니 무엇이 가장 좋았나?

인간관계가 스트레스였다. 남들은 재밌게 잘 지낼 사람으로 보는데,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한다. 50에 내가 한 가장 큰 결심은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난다’는 것이었다. 이건 다른 사람들한테도 해주고 싶은 얘기다. 오늘 저녁 만나는 사람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인가, 그 사람을 만나면 정말 기쁘고 즐거운가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고 싶다. 쉰이 되니 확신이 들었다. 아니라는 거다. 일본에 간 이유가 그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오니까 부르는 곳도 많고 다시 번잡해진다. 그래서 여수에 내려가려는 것이다.


다들 혼자가 될까 봐 불안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책에는 이런 우리 사회를 ‘고독 저항 사회’라고 규정했더라.

외로우면 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남으면 내가 부적응자인가, 스스로 의심한다. 혼자 밥을 먹으면 왕따가 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지 않고 자꾸 관계로 도피하려 한다. 사실 외로워서 생긴 문제라기보다 관계에서 생긴 문제가 훨씬 많다.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 줄 알고 배려하고 참았는데 살아보니 시간 낭비였다.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 나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는 게 좋다. 지금 인간관계가 60~70까지 갈 것 같은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 일본에서 돌아와 보니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5명이 안 되더라. 나름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랬다. 인간관계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반면 일본은 ‘고독 순응 사회’라고 했다.

일본은 모든 사회구조가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맞춰져 있었다. 혼자 죽을 사람들을 위해 장례 시스템도 완비되어 있다. 우리도 이게 되어야 100세 시대를 견딜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고독을 먼저 겪어보니까 고독은 저항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SNS 이용 패턴을 보면 중년 이용자들은 자꾸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내 삶의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관심을 얻으려고 관심을 주면서 관심을 구걸한다. 트위터 리트윗을 하고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나한테도 관심을 보여달라는 호소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보면 우울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러 갔는데 만날 허접하고 뻔한 소리, 화장실 격언 같은 얘기만 서로 전달하고 있었다. 내 관심사, 내 콘텐츠, 내가 추구하는 바를 얘기해야 한다. 그러면 SNS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성을 내는, ‘고약한 노인네 증후군’이 한국 사회에 있다고 했다.

나부터 그 증세가 있었다. 모든 게 못마땅했다. 극도의 소외감 때문에 남이 나를 못 알아볼까 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잘 나갔던 시절만 얘기한다. 나를 좀 알아달라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일본에서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으니까 내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를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조영남하고 노래를 부르고 CF도 찍었다고 자랑하고 있더라. 한심했다.


한국 남자들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성취를 알아주고 그에 걸맞게 대접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자기 확인의 방법이 잘못되었다. 한국 남자들의 사회적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명함을 주고받는 것을 보라. 받기 전에는 둘 다 표정이 민숭민숭하다. 그런데 받고 나면 표정이 바뀌는데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더 많이 웃는다. 멀리서도 알 수 있다. 권력관계에서 밀려난 사람이 웃음을 지어야 한다는 게 불행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가 남의 성취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사회도 아닌 것 같다. 이런 한국 사회를 ‘시기 사회’라고 평가했다.

압축 성장의 후유증이다. 부의 축적 과정에 동의를 못하니 남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만 시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랑 많이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쫓아오는 것을 보고도 시기한다. 이를 ‘간격 시기심’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만연한 나라다. 이 시기심과 질투심은 적대감과 분노로 쉽게 바뀐다. 내 적대감과 분노의 배후에 정당화할 수 없는 시기심과 질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성찰은 없고 ‘감정 전염’만 나타난다. 나도 시기하고 너도 시기하니 모두가 시기한다. 모두가 분노하는 것이니 그게 옳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연예인을 향한 집단적 린치가 주로 그렇다.


그래서인지 성취를 이룬 사람도 상처가 많은 것 같다. 주변에 잘 나가는 남자들이 많은데, 어떤 상처들이 있었나?

다들 외로움이 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자기 주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자기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들어한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마음의 상처가 많다. 성공하려고 얼마나 미친 듯이 달렸겠나. 그러다 진짜 미친다. 성공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정상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한창 잘 나갈 때 일본에 가겠다고 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환영했다. 왜? 내가 집에 오면 만날 짜증만 냈기 때문이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 사람은 알았다.


그러다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되면 상처를 더 크게 입는 것 같다.

한국 사회는 불안정해서 정말 한 번에 훅 간다. 일단 훅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그런데 잘 나가던 친구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빠른 속도로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줄 몰랐나? 몰랐을 것이다. 잘 나가는 사람도 그런데 열심히 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더 그럴 것이다. 존재 자체가 외로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친구 중에 사업에 굉장히 성공한 친구가 있다. 비 오는 날이면 허름한 단골 카페에 가서 온종일 책을 읽으며 하염없이 창 밖을 보고 온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과 마주 대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관계 속에서 존재를 확인할 수 없으면 참담해진다. 그나마 일찍 겪으면 낫다. 늙어서 겪으면 헤어 나오질 못한다. 미리미리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면 어떤 이점이 있나?

자기 성찰은 외로움에서 온다. 외로운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주말에 반나절이라도 혼자 있어볼 필요가 있다. 전화기·텔레비전·SNS 다 꺼놓고.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지 않으면 정상이다. 하지만 아마 다들 못 견딜 것이다. 일본에 처음 가서 아무것도 안 하니까 미칠 것 같더라. 그 시간을 잘 견뎌야 성찰이 가능하다. 성찰은 내 안의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찰을 해야 소통이 가능하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외로우면 정말 불안할 것 같은데.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을 공부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몰입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사람은 몰입할 때 재미를 느낀다. 관심의 대상이 있어야 재미가 있다. 공부의 주제, 즉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친구들 중에 ‘너는 네 맘대로 인생을 사는 게 부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너는 뭘 좋아하는데?’라고 물어보면 답을 못한다.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도 아니다. 공부만큼 돈이 적게 드는 것도 없다. 지금 내가 행복한 것도 공부하는 것이 있어서다. 그것을 정리해서 책으로 펴낼 생각을 하니까 설렌다.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되면 세상을 좀 더 관조할 수 있나?

자기 객관화는 철저하게 외로운 시간을 담보하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유머다. 우리의 장례식은 엄숙하기만 하다. 서양 장례식은 엄숙하지만 유머가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추도사에서도 유머가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망자를 객관화해서 오히려 더 깊이 추모하고 더 깊이 그리워하게 한다. 자기 자신을 또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추려면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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