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시사저널 파업 때 자신을 배우 김의성이라고 밝힌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술 한 잔 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이태원에 불려 나갔고 맛난 저녁을 얻어먹었다. 자신도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대기업 횡포에 쫄딱 망했지만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안 쓰러워 밥 한 번 사고 싶었다고 했다. 그 후로 인연이 이어졌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뵈었는데, '대한민국 아재를 있는 그대로만 연기하면 훌륭한 악역이 된다'는 얘기가 나와서 내친김에 이경영 배우와 함께 인터뷰를 제안했다. 흔쾌히 응해주셔서 대한민국 주류가 우리 사회에 어떤 악역을 맡고 있는지를 그들의 악역론을 통해 들어보았다. 흥미로운 인터뷰였다. 여기에 조금 다듬어서 옮긴다.
‘충무로 노예’는 배우 이경영씨(55·사진 오른쪽)의 요즘 별명이다. 한 해 평균 7~8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그는 영화계의 소문난 다작왕이다. 올여름 흥행 돌풍을 일으킨 〈암살〉을 비롯해 추석에 개봉한 〈서부전선〉, 그리고 〈치외법권〉 〈뷰티 인사이드〉 〈협녀, 칼의 기억〉 〈소수의견〉 〈은밀한 유혹〉 〈허삼관〉 등에 출연했다. 하도 출연작이 많아서 ‘이경영 쿼터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배우 김의성씨(50·사진 왼쪽) 역시 이경영 못지않은 다작 배우다. 2011년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으로 영화계에 복귀한 이후 〈건축학개론〉 〈남영동 1985〉 〈관상〉 〈암살〉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다작 클럽’에 가입했다. 이경영씨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배우인 데 비해 그는 각종 영화 관련 행사에도 두루 참여한다. 김의성씨는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 발언하는 ‘소셜테이너’다.
두 배우가 맡는 역은 주로 조연이다. 하지만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주기 때문에 늘 주목받는다. 이들의 특징은 선한 배역을 맡았을 때보다 악역을 할 때 더 돋보인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그 이유가 자신들이 대한민국 기성세대의 모습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모순이 집약되고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기성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관객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만드는 역할.
영화에서는 ‘불통의 기성세대’를 보여주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가장 소통을 많이 하는 중견 배우다. 젊은 배우 그리고 젊은 스태프들과 격의 없이 지낸다. 얼마 전 김의성씨는 SNS에 친분 있는 젊은 배우들에 대한 인물평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잘못된 기성세대를 대변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 대한 생각도 들어보았다
한국형 여름 블록버스터가 안착한 느낌이다. 지난해 〈명량〉과 〈해적〉이 크게 흥행한 데 이어 올해도 〈암살〉과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예전에는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한국 영화는 주로 명절에 개봉했는데 이제는 여름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한다. 한국 영화가 큰 장을 형성하는 동안 현장에 함께한 분들이라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이경영(이하 이):김의성씨와 나는 촬영 현장에서 연령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어제 한 영화제 시상식에 갔는데 원로 촬영감독님들이 계셔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한 분을 안아드리자 그분이 ‘이제 경영이만 남았어, 경영이만 남았어’ 말씀하시는데 뭉클하더라. 그분들하고 작업했던 배우들 중에 누가 남았나 생각해보니, 정말 거의 없었다.
영화계가 일부러 세대교체를 하려는 것도 아닌 듯한데, 세대교체가 너무 빠른 것 같다. 10년 전 한국 영화계는 ‘강우석 천하’였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김의성(이하 김):영화 제작이 디지털화되면서 영화를 찍는 게 쉬워졌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긴 한데, 누군가 자기 얘기를 만들겠다고 하면 기술적으로 도와주는 장치나 사람들이 많아서 영화를 만든다는 거 자체가 덜 무서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영화를 하기가 더 좋아졌다.
둘 다 10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다. 촬영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달라진 게 많았나?
이:영화 작업이 더 세분화되었다. 전문적으로.
김:없던 직종도 많이 생겼다. 이를테면 데이터 담당이라든지.
이:예전에는 러프필름이라고 촬영된 화면을 편집실에 가서 보곤 했다.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김:그게 권력이었으니까. 그때는 촬영감독만 봤다. 지금은 현장에 가면 모니터 20개쯤은 있다. 누구나 다 지금 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지금은 감독들이 작품 하기가 편리하지만, 그 편리하다는 건 그만큼 자기가 가진 재능을 다 오픈시켜야 하는 거라 사실 더 큰 책임감이 따른다. 실력 차이가 분명해지니까.
김:좋아진 게 많지만 안타까운 것들도 있다. ‘무비 매직’이랄까,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느끼는, 마법 같은 순간이 사라진 것 같다. 옛날에는 필름으로 찍어서 이게 정말 소중하고 잘못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들이 있어서 뭔가 나왔을 때 그 순간이 너무나 짜릿했다. 그걸 다 같이 느꼈는데 지금은 그런 걸 느끼기보다는 그냥 적당히 좋은 순간들을 많이 모아서 편집실로 보내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적인 짜릿한 맛은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중견 감독 중에 현장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이나 홍상수·김기덕·임권택 감독, 이 정도 빼고는 없는 것 같다.
이:자본 논리가 제일 큰 것 같다. 말로는 예술영화를 논하지만, 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김:관객도 많이 변했다. 좋게 말하면 관객들이 솔직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졌다고 할까? 영화를 통해서 뭔가 생각할 거리를 찾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걸 딱 얻고 소비하는 형식이다.
이:놀이기구 같은 현상이다. 우리가 놀이기구를 타면서 철학적인 걸 원하진 않지 않나. 관객들의 기호가 그쪽으로 쏠려 있으니까 상업적으로 그 기호에 맞추기 위해 영화도 영악해졌다.
그 부분이 흥미롭다. 그렇게 영화계가 세대교체가 되고 사람들이 바뀌었는데 두 분은 역으로 쓸모가 열렸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내가 내 얘기를 하기는 그렇고…. 배우 김의성을 봤을 때 다른 사람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잘 모른다. 모르니까 여러 가지 역할의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김:그런 면에서는 경영이형이야말로 독보적인 것 같다. 나는 이 나이에, 이런 얼굴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서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이런’이 뭐냐고 물으면 복잡하고 긴 얘기가 되겠지만, 그냥 없으니까. 일종의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공급은 제한되어 있는데 수요가 많으니까.
이:둘이 같이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우리가 보기보다 열정적이다. 작업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어서 감독들이 좋게 보는 것 같다.
김:감독뿐만 아니라 스태프 하고도 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스태프들은 나이가 20대, 많으면 30대 초반인데 나이 든 배우 중에는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사실 많다. 스스로 닫거나 아니면 그 친구들이 싫어하거나. 사실 영화사 대표도 자기 영화 현장에 잘 안 간다. 가면 스태프들이 어려워하고 쭈뼛쭈뼛 피하니까. 대체로 우리는 철이 없어서 젊은 친구들이 부담 없이 대한다. 젊은 친구들에게 쓰윽 기대고 장난도 치고. 경영이형은 현장에 가면 항상 삼촌으로 불린다.
영화 촬영 현장에선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관계를 잘 맺는 노하우가 궁금하다.
김:촬영 현장에서 50대 남자배우라는 건 절대 강자라는 의미다. 물론 아주 작은 역을 맡은 배우들은 그렇지 않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역할도 비중이 있으며 남자라면 그렇다. 배우라는 존재는 현장의 계급에서 벗어난 신 같은 존재인데 거기다 나이도 많지, 그럼 거의 깡패 같은 강자라고 보면 된다. 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인데, 그때 이른바 갑질을 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우린 갑질을 모르지.
김:그래도 노력이 필요하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 특히 여자 스태프한테 편하게 대한다고 하는 게 지금의 개념으로는 성희롱이 될 수도 있고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거리를 두고 점잔을 떨기 시작하면 한없이 멀어진다. 그럴 때 절묘한 거리를 찾고, 서로 편함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답이 정해진 질문일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다작을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좋아서. 그리고 갚아야 할 빚이 좀 많아서. 사실 별로 할 일이 없다. 정말 영화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집, 촬영장, 족발집, 이게 전부다. 내가 힘들었을 때 다시 나를 맞아준 곳이 여기였기 때문에 그 이유가 가장 크다. 너무 소모된다는 주변 의견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았던 배려에 대해서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체력적으로는 힘들다.
김:나는 경영이형이랑 이유가 다르다. 형은 거절을 못해서 그렇다. 거절률이 3~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이:정말 상황이 안 되어서 ‘안 되겠다’ 하고 가려고 하면 ‘저희랑은 족발 안 드시나요’ 해서 같이 족발 먹고 술 마시게 되면 ‘아이고, 알았어’ 하고 동의하게 된다.
김:같이 〈남영동 1985〉 할 때, 그때 형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우리 둘이 내년에 여섯 개만 하자’ 그런 농담을 했다. 그리고 막 웃었다. ‘무슨 영화를 여섯 편이나 해?’ 하면서. 그런데 지금 그것보다 더 하고 있다. 나는 영화 하는 게 좋다. 현장에 나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함께 만들어내는 일이 좋다. 경영이형도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현장에 가면 천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이:제일 깨어 있는 시간이고.
영화계에 복귀하고 나서 티핑포인트가 되었던 작품을 꼽는다면?
이:분명 어떤 기점이 되는 영화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 〈남영동 1985〉이었고. 그게 어떤 건지 모르는 내 안의 에너지들이 다 나와서 신기했다. 그 작품 이후에 영화들을 만나도 두려움이 줄어들고 두려움을 즐기게 된 것 같다.
김:나는 〈남영동 1985〉 때는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충분히 영화를 즐기지 못한 것 같다. 형이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이:촬영 내내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계속 있었다.
김:그때는 일상이 고문이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고문하고, 점심 먹고 고문하고, 저녁 먹고 좀 더 고문하다 자고. 매일 그랬다.
이:뭔가 진짜를 하려고 하니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누군가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해야 하니까.
둘 다 몰입형 배우다. 한 영화에 집중하고 비워내고 또 집중하고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거 같다.
이:나는 채워 넣고 비워내고 하는 이런 개념이 사실 없다. 사람들이 나를 복잡하게 보는데 단순하다. 여기 집중하다가 바로 다음으로 가면 거기에 집중을 한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전에 집중했던 것들은 사라진다.
김:연기라는 게 없던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빠져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걸 꺼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내 샘이 마르지 않으면 그냥 꺼내서 보여주면 된다. 내 안에 다 있다. 후진 것도 있고 꽤 괜찮은 면도 있고, 겁도 있고 용감한 면도 있고, 그 자리에서 그냥 내가 용감하게 나가면 되는 문제다.
이:시나리오 안에 기본적으로 다 있다. 시나리오라는 아주 좋은 텍스트가 있기 때문에 감독이 원하는 방향을 잘 캐치하는 게 중요하다. 그때마다 만들어내고 옮겨 다니고 그러면 우리는 진작 죽었을 것이다.
두 분이 맡은 배역은 2대1 정도로 악역이 선한 역보다 많은 것 같다.
이:우리가 악역을 맡는 건 어떻게 보면 기성세대들이 반성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너네 세대에 이런 인물이 많았다.’ 영화에서 ‘우리가 저 세대와 달라야 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할 때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김:영화에서 주연이 아닌 경우 40~50대 대한민국 남자 캐릭터에 착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 나쁜 캐릭터들이 40~50대 대한민국 남성의 대부분인 것이다.
이:그렇다. 작가들도 주인공 그룹이 진실을 찾든 정의를 찾든 뭔가 싸움을 붙여야 되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기성세대가 그 대상이 된다. 그래서 악역을 할 때 ‘그래 이게 우리 어른들의 표상이라면 더 세게 가자’ 이런 면도 있다.
촉매처럼 영화에서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역할이라 감독들도 그런 걸 기대하고 관객들도 그 느낌을 즐기는 것 같다.
이:생각을 안 해봤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우리가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배우인 것 같다.
김:그런데 한편으로는 ‘더 가고 싶다’라는 욕심도 마음속에는 조금 있다. 조금 더 중요해지고 싶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배우로서의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꽤 있는데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물론 경영이형은 큰 전성기가 있었지만 배우의 역량을 발휘하는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전성기가 오고 거기서부터 아주 느슨한 곡선으로 내려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조연이라면 ‘절제의 미학’도 필요하지 않은가?
이:이 나이가 되면 수위, ‘여기까지가 내가 해야 될 역할이다’라는 걸 알게 된다. 그걸 넘어서버리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작품 밸런스를 해친다. 그 적정 수위는 현장에서 소통하다 보면 알게 된다. 이게 나만의 것이라면 더 가보고 싶을 텐데, 지나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런 조연의 자세는 우리 사회의 많은 중년에게 도움이 되는 모형일 것 같다. 앞에서 주도하지 않고 옆에서 적당하게 한마디 거들어주면서 프로젝트를 잘 가게 하는 역할.
이:우리가 출장 서비스를 할까?(웃음)
김: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타악 파트에 나이 많은 사람이 가만히 서 있다가 심벌즈 같은 거 탁 치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이:뭔가 은근히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우리 나이에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내친김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김:까불지 말고 젊은이들과 잘 지내라, 그 얘기를 해주고 싶다(웃음). 그리고 잘 버텨서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